모바일 시대에.. 여전히 신용카드 긁는 한국

김신영 기자 2017. 3. 2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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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인도의 상인들이 위기에 몰렸다. 정부가 돈세탁 방지를 내세워 500루피(100루피=약 1700원)·1000루피짜리 옛 지폐 사용을 중단하는 등 '현금 없는 사회'를 밀어붙이자 현금 장사에 의존해온 소상공인들이 비상이 걸린 것이다. 신용카드 가맹점 신청은 엄두도 못 내는 영세한 상인들이 생계를 위해 몰려간 곳은 휴대전화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금융과 정보기술의 결합) 회사 '페이TM'이었다. 페이TM은 기존의 신용카드 결제 망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휴대폰을 통해 돈거래를 하는 시스템이다. 전화번호와 은행 계좌만 있으면 10분 만에 거래를 틀 수 있다. 인도 화폐 개혁 이후 3개월 동안 페이TM 가입자 수는 2000만명이 늘었고, 지난해 결제 건수는 전년 대비 4배 수준인 20억 건으로 폭증했다.

한국이 신용카드 수수료, 공인인증서 등 플라스틱 신용카드를 기반으로 한 결제 시스템에 발이 묶인 사이에, 세계 각국에서 휴대폰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결제 시스템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인도·케냐 등 "신용카드 건너뛰고 스마트폰으로 직행"

결제 전문 글로벌 회사인 '월드페이' 분석 결과, 기존의 신용·체크카드 결제 망을 사용할 필요가 없이 휴대폰을 중심으로 직(直)결제를 하는 결제 방법을 뜻하는 '대체 결제 수단(alternative payment method·APM)'은 지난해 전 세계 결제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늘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이 비율은 5% 수준이었다.

APM의 확산 속도는 신용카드 기반 시설이 취약했던 신흥국이 도드라지게 빠르지만, 선진국도 핀테크 스타트업이 다수 생겨나고 페이스북 같은 IT(정보기술) '공룡'까지 결제 시장에 뛰어들어 결제 방식이 다양해지는 추세다.

인도 페이TM의 결제 점유율은 2015년 1.5%에서 지난해 8.0%로 늘었고, 중국 전체 결제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알리페이·위챗페이 등 스마트폰 결제 사용자는 지난해 8억명(중국 인구는 약 13억7000만명)을 넘어섰다. 그동안 금융 불모지로 여겨졌던 아프리카는 아예 은행을 뛰어넘고, 휴대폰이 은행 자리를 꿰찼다. 케냐 국민의 절반이 쓰고 있는 휴대폰 기반 은행'엠페사'는 물건값 결제, 공과금 납부는 물론 채권 구입 등으로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노르웨이의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이메일 내용 등 빅데이터를 분석해 카드 없는 사람들이 상품을 구매할 때도 2주 정도 시차를 두고 돈을 통장에서 빼가는 후불 결제 옵션을 도입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 북유럽 전자상거래의 약 10%가 '클라르나'를 통해 이뤄졌다. 미국도 전자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을 활용, 이베이·아마존 등 온·오프라인 쇼핑몰에서 결제가 가능하도록 한 '코인베이스', 은행 계좌조차 없는 이들이 휴대폰을 통해 편의점에서 공과금·청구서를 결제할 수 있도록 한 '페이니어미' 등 다양한 결제 방식이 확산 중이다.

◇한국은 신용카드 쏠림…"소비자 선택권 제한"

대체 결제 수단이 호응을 얻는 이유는 금융 거래 비용이 기존의 신용카드에 비해 매우 저렴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사 등에 가맹점이 많게는 1.5% 수수료를 내야 하고, 사용자는 신용카드 회비 등을 별도로 내야 하는 기존 신용카드에 비해 이런 '직거래' 방식은 금융 비용이 매우 낮다. 예컨대 페이TM은 한 달에 5만 루피(뭄바이 자전거 택시 기사의 한 달 매출은 3만 루피 정도) 이하만 거래하는 작은 가맹점에는 아무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한국은 출범을 앞둔 인터넷 전문은행들이 신용카드 결제 망을 탈피한 대체 결제 수단을 선보이기 위해 준비 중이나, 플라스틱 카드 점유율이 워낙 높아서 확산이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많다. 알리페이·페이TM과 가장 가까운 모델로 카카오와 금융결제원이 2014년 함께 만들었던 뱅크월렛카카오는 신용카드를 낀 간편 결제 서비스가 잇달아 나오면서 지난해 11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월드페이 분석 결과, 지난해 '디지털 지갑'('알리페이'처럼 현금을 충전해놓은 가상의 지갑에서 돈을 주고받는 서비스) 등 한국의 대체 결제 수단 비율은 약 5%로 조사 대상국(61개 나라) 평균인 31%에 크게 못 미쳤다. 반면 신용·체크카드 결제 비율은 71%로 61개 나라 중 3위에 올랐다. 금융계 관계자는 "한국 금융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그만큼 제한돼 있다는 뜻"이라며 "인터넷 전문은행 역시 카드사를 계열사로 둔 은행들이 견제하고 있어 획기적인 결제 서비스를 내놓기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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