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문턱 높아져 11.5% 카드 대출.."1년 버틸 수 있을까"

임지선 2017. 3. 2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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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한복·이불 가게' 시장 상인의 한숨

[한겨레]

2014년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조건을 완화하고 부동산 부양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며 은행들도 자영업자 대출 확장에 열을 올렸다. 경기 고양시 일산의 상가건물 외벽에 음식점와 유흥업소 등의 간판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사진 속 상가는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음) 〈한겨레〉 자료사진

일요일 오후 경기도 ㅅ시장. 1990년대엔 1000여개 점포가 성업했던 재래시장이지만 이제는 250여곳만 드문드문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2대째 한복·이불 가게를 운영하는 옥아무개(60)씨가 가게 문을 밀고 나와 시장 뒷길에서 담뱃불을 붙였다. 고작 열걸음쯤 떨어진 길 끝에 은행 간판이 보인다. 옥씨는 간판을 볼 때마다 열흘 전 충격이 생생히 살아난다 했다.

“이제 끝났구나 싶었어요. 앞으로 1년은 버틸 수 있을까, 절벽에 서 있다는 생각만 들었죠.” 옥씨는 열흘 전 주거래 은행에서 대출을 거부당했다. 직원 두 명의 월급날을 앞두고 은행에 2천만원의 추가 대출을 요청한 참이었다. 은행 직원은 그에게 “카드론을 이용해 신용등급이 4등급으로 떨어진데다 최근 자영업자 대출 규제가 강해져 추가 대출이 어렵다”고 말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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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전부터 매출 급격히 줄어
하루 70만→20만원…작년엔 적자
신용등급 떨어지고 대출 규제 강화
한때 VIP 대접해주던 은행서 외면
카드사 찾으니 금리 4%→11.5%
주택담보대출도 원금상환 걱정 “몇년 전엔 대출 홍보 열올리더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합니다”

30년간 한 자리에서 장사하다 보니 한때는 브이아이피(VIP) 대접까지 해줬던 은행 지점이었다. 3~4년 전부터 매출 사정이 크게 나빠지더니 지난해 급기야 2000만원의 적자를 냈고 모든 게 달라졌다. 하루 70만원씩 나오던 매출이 20만원을 밑돌았다. 봄 결혼 시즌을 앞두고도 올해 들어 두달간 혼수 손님을 한 건도 잡지 못했다.

“재래시장에서 혼수 마련하는 분들은 대부분 호주머니 얇은 중산층 이하 서민들인데 확실히 그분들 소비가 줄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골들도 기본적인 침구만 사 가는 등 씀씀이가 확 줄었고요.” 여든이 넘는 옥씨 어머니와 아내까지 가게에 매달렸지만 120만원의 월세와 직원 두 명의 월급 340만원을 주기도 힘들다. “대출이 안 된다면 우선 직원부터 그만두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은행 문턱이 높아지자 옥씨는 결국 급한 마음에 신용카드사의 장기카드대출을 이용해 1700만원을 빌렸다. 금리가 11.5%로 높았다. 금리가 4%대인 은행 대출을 이용하다가 하루아침에 3배가 넘게 뛴 카드사 금리를 물게 된 셈이다. 지난 3년간 가게 운영이 어려울 때마다 대출이 하나둘 늘어갔다. 은행에서 개인사업자대출 5000만원(금리 연 4.2%)을 받았고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고 주택담보대출로 2억5000만원(금리 연 4.5%)을 빌렸다.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급하면 집 담보대출로 갈 수밖에 없어요. 주택담보대출 빌린 것도 다 가게 운영하는 데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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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씨 대출이 늘어난 시점은 전 사회적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한 시기와 비슷하다. 2014년 7월 취임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부동산 양도세 일시 면제 등을 추진한 뒤 2013~2014년 6%대 한자릿수이던 가계대출 증가율은 2015~2016년 11%대 두자릿수로 뛰어올랐다.

특히 은행권은 이 기간에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상품을 앞다퉈 내놓는 등 자영업자 대출 확대에 열을 올렸다. 옥씨가 장사하는 시장에서도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개인사업자대출 홍보활동을 나온 신용보증기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중소기업대출로 분류되는 개인사업자대출뿐만 아니라 가계대출도 쉬웠다. 이제는 모두 지난 이야기다.

28일 <한겨레>가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신용평가사인 한국신용정보(나이스)로부터 받은 2012~2016년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를 분석해 보면, 옥씨 사례는 자영업자 평균치와 매우 유사하다. 520조원에 달하는 이들의 대출을 분석한 결과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합한 자영업자 대출의 1인당 평균 금액은 약 3억2400만원에 이르렀다. 자영업자 대출총액은 2012년 이후 4년간 46.7% 증가했다.

옥씨는 오는 8월부터 주택담보대출의 원금상환을 시작해야 한다. 가계대출 급증기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많은 이들이 옥씨처럼 원금상환을 곧 맞닥뜨리게 된다. 초저금리 환경에서 이자만 갚던 자영업자들에게 원금상환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죄기에 나선 탓에 대출 갈아타기나 추가 대출도 쉽지 않다. 금리도 상승기에 접어들어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관련기사보기 : 치킨집 사장님에서 ‘일수찍기’ 추락까지 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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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11.5%에 달하는 옥씨의 신용카드 대출은 당장 이달부터 원리금 상환을 해야 한다. 이달에 갚아야 하는 대출 원리금만 모두 160만원이나 된다. 옥씨는 은행을 방문해 8월 주택담보대출 원금상환일부터 어떻게든 연기해볼 참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추가 대출을 거절하던 은행 창구 직원의 얼굴이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유다.

이달 들어 옥씨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도 10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축소됐다. “요즘 정부에서 맨날 자영업자 대출이 문제라고 하잖아요. 경기 타서 위험하다고 여신 심사 강화한다고 빚 안 내어 주고 하면 자영업자들을 절벽으로 내모는 것 아닙니까? 은행 직원이 추가 대출 거부도, 마이너스 통장 한도 축소도 제가 자영업자이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금리 11%짜리 카드 대출까지 받고 나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너무 큽니다.” 옥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중산층까진 못 되어도 애들 공부시키고 밥은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제는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앞이 꽉 막혀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일요일 온종일 홀로 가게를 지켰지만 손님이 들지 않았다. 가게 앞, 시장 골목엔 ‘자영업자 환영, 영세상인 가능’이라 적힌 대부업체 광고지가 굴러다녔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하루 3번 25만원 일수 찍히는 ‘빈대떡집 사장님’의 눈물

치킨집 망하며 대부업체 찾아
200만원 대출이 1800만원으로
“막장 몰린 자영업자 지원 절실”

충북의 한 소도시에 있는 김아무개씨 빈대떡집에는 매일 오후 5시쯤 ‘일수업자’들이 찾아온다. 현재 3곳의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김씨는 매일 13만원, 6만5천원, 6만원 이렇게 모두 25만5000원을 세 명의 일수업자에게 건넨다. 하루 매출이 20만원도 나오지 않는 날이 이어져 일수가 밀리기 시작하면서 김씨는 스트레스에 가슴이 답답해질 지경이 됐다.

김씨의 추락은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던 치킨집이 6개월 만에 망하면서 시작됐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가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 문을 열었는데 바로 조류독감이 터지고 장사가 안 돼도 너무 안 됐어요.” 신용카드 대출로 돌려막기를 하다가 부부 모두 신용불량자로 내몰리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서 간판만 바꿔 빈대떡집을 이어가는 요즘, 갈아놓은 녹두는 사흘을 못 견뎌 버려지기 일쑤다. 한 명뿐이던 아르바이트생도 지난달부터 그만두게 했다. 월세 160만원짜리 가게에서 부부는 새벽 2시까지 일한다. 신용카드도 못 만드는 김씨는 가게 앞에 날마다 서너개씩 뿌려지는 대부업체 전단지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처음 200만원을 빌린 게 1800만원으로 늘어나는 동안 일수업체는 공증 수수료, 연체금을 대출 원금으로 돌리는 ‘꺾기’, 재대출 때 원금 제하기 등의 명목으로 돈을 떼갔다. 그래서 김씨는 정확한 대출 금리를 모른다.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대부업체는 필요악이에요. 금리가 너무 높지만 정말 절실할 때 빌려주니까요.”

김씨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일수대출로 내몰려 ‘자영업 막장’에 들어서는 경우는 찾기 어렵지 않다. 지난 2014년 나온 송지용(한국소비자원)·이희숙(충북대 교수)씨 논문 ‘전통시장 자영업자의 재무관리와 사금융 이용’을 보면 충북의 한 전통시장 자영업자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8%가 사금융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사금융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을 위해 성실한 세금 납부 기록 등을 소득 증빙 자료로 대체해 제도권 대출을 이용할 길을 열어주고 재무관리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은행권보다 비은행권에서 급격히 늘고 있다. 28일 한국신용정보(나이스)의 2012~2016년치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를 분석해 보면, 자영업자 대출총액은 4년간 은행권에서 44.5%, 비은행권에서 57.4% 증가했다. 그나마 불법적 고금리를 적용하는 사금융은 비은행권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허점이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는 지난 2015년 성인 502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바탕으로 국내 성인 중 33만명이 10조5천억원의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평균 대출 금리는 연 114.6%에 달했으며 이용 목적은 사업자금(42.9%), 가계생활자금(35.9%), 대출금 상환(25.2%) 순이었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최근 경제환경이 악화하면서 제도권 금융의 대출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계층이 생활자금을 구하러 금리가 높은 대부업이나 사금융을 이용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지선 류이근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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