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편지

2017. 3. 2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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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Daughters

<관능적인 삶> <유혹의 학교>작가 이서희가 두 딸에게 보내는 편지

지난 8월이었지. 네가 생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게 말이야. 그때 엄마는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막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 바로 답을 보내고 싶었는데, 웬일인지 휴대폰이 말을 듣지 않았어. 초조해진 엄마는 줄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단다. 딸 둘을 낳아 키우면서 바랐던 몇 가지 중에, 너희가 한 뼘 올라 크는 성장의 순간, 어지럽고 알 수 없는 혼돈의 순간, 되도록 곁을 지켜주고 싶은 게 있었거든. 그런데 엄마는 첫 생리라는 뿌듯하고도 혼란스러운 시간에 네 곁에 없었던 거야. 예감은 있었는데, 그래서 네 옆에 꼭 붙어 있고 싶었는데, 그만 그 순간을 놓쳐버렸어. 매년 여름을 한국에서 보내지만, 지난여름의 너는 아찔한 속도로 성장하는 게 보였단다. 하루가 다르게 부쩍 자라 얼마 전까지는 엄마의 코까지 따라붙었던 네 키가 엄마의 이마를 넘나들게 됐을 때, 엄마 역시 뿌듯하면서도 현기증이 났지. 조만간, 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너와 함께 지나갈 또 다르게 눈부실 날과 더불어 네가 홀로 누릴 기쁨과 고난이 어지럽게 머릿속에 펼쳐졌으니까. 너희들을 열흘 먼저 보내고 엄마는 친구들과 북해도 여행을 갔어. 마지막 남은 일정을 소화하러 한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편의점 진열대 한구석을 차지하는 생리대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너를 떠올렸단다. 어쩌면, 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야.

집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켰지. 바로 네게 문자를 보냈어. 아빠 집에 있을 네가 어떻게 첫 생리를 처리했는지 걱정됐지. 그래도 엄마는 의연한 척 네게 말했어.

“축하해. 생리를 하게 된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생리대는 구했니?”

“응. 신디의 서랍에서 훔쳤지. 하하.”

엄마와 아빠의 오랜 별거와 이혼 과정을 함께 잘 보내준 너희들은 아빠의 새 여자친구 신디와도 금세 좋은 사이가 됐지. 아빠가 그녀와 함께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야. 그녀가 멋지고 다정한 친구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부끄럽게도 엄마는 그녀에게 네 첫 생리의 순간을 빼앗기지 않은 게 조금은 다행이었어. 그러면서도 속상했지. 네 곁에 누가 있든,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길 엄마는 바라니까 말이야. 그래도 엄마 눈앞에 그려지는 건, 장난기 많고 쾌활한, 그러면서도 속 깊고 신중한 너의 나른한 미소였단다. 눈에 가득 고였던 눈물 방울이 툭 굵게 떨어진 뒤 나도 모르게 환하게 웃음을 지었어. 참으로 너다운 행동과 대답이라서. 아직 아무에게도 말 안 한 거냐고 묻자 네가 말했어. 엄마에게 알리기까지 비밀로 하고 싶었다고. 게다가 첫 생리대를 훔치는 일은 스릴 있고 재미있는 일이었다고. 생리대를 착용하는 법은 유튜브를 참조했다며, 웃음 가득한 이모티콘을 보낸 네가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워 엄마는 또 웃으면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 곧 네가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으니 금세 그쳐야만 했지만. 오후의 햇빛과 함께 집에 돌아온 너희들은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엄마, 라고 외치고 있었지. 엄마, 엄마, 엄마라는 말이 밖에서 들리자마자 바로 문을 연 내 품으로 우르르 안기는 너희들이 얼마나 벅차게 반가웠는지 몰라.

엄마는 잠시 후 네 손을 잡고 엄마의 화장실에 들어갔어. 네게 주려고 오래전부터 준비해 놓은 파우치를 쥐어 주었지. 그 안에는 미제 일제 한국제 프랑스제의 생리대가 사이즈별로 들어 있었지. 세계를 넘나들며 자라나는 너희들에게 알맞은 생리대 컬렉션이라고나 할까. 그리고는 네게 말했어. 기억나?

“언제든지 훔쳐 가.”

엄마의 화장실, 맨 왼쪽 캐비닛을 가리키면서 말이야. 그 안에는 우리가 함께 쓸 생리대가 가득 들어 있었으니까. 지금도 역시.

다음날 너는 내게 엄마의 생리주기와 날짜를 물었지. 생리 시작일을 계산해 주는 스마트폰 앱이 있다며 그걸 깔았다고 보여주면서 말이야. 그 안에는 이제 엄마와 네 주기가 사이좋게 들어 있고 나는 우리가 동지가 된 것처럼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그리고 나도 너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단다. 여성으로 함께 살아가고 연대하고 지지하는 사이로 말이야. 그리고 동지의 사이를 돈독히 하는 기분으로, 엄마는 네게 엄마로서의 당부보다 엄마가 너를 두고 하는 다짐에 대해 써보고 싶어.

어릴 적부터 참 오래도록 엄마는 스스로의 재능을 의심하고 살았어.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 때도, 피아노를 치고 싶었을 때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묻고 또 물었어. 내게 충분한 재능이 있을까. 나는 과연 그것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괜한 시간 낭비는 아닐까.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지지하고 조용히 물러서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런데 문득, 너희들이 내게 와서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어. 온몸을 던져, 좁은 출구를 거쳐 세상에 나온 너희들이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그리고 온몸과 마음으로 자라나는 너희들을 지켜보며 느꼈던 경이로움을 되살리면서 말이야. 너희들은 이유를 묻지 않고 찾아와서 목적을 질문하지 않고 성장해 왔지. 키가 크고 골격이 자라나고 기쁨과 슬픔을 아는 것에 대해 재능이 있는지를 묻지 않고 말이야. 그리고 엄마 또한 그렇게 자라났는데, 글쎄 그만 까맣게 잊고 살았던 것 같아. 너희도 엄마도 모두, 태어나고 자라는데 참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 그리고 우리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셈이고. 하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재능이 무작정 당연한 건 아니란다. 재능이란 발휘하고 잘 사용할 때 만발하니까. 발휘하면 할수록 더 좋아지니까. 그래서 엄마는, 피아노를 잘 치고 그림을 잘 그리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기보다 삶을 살아가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단다.

돌이켜보면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살았어. 어떻게 피어나고 만발하고 스러지는가를. 그리고 삶을 향하지 않은 재능이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삶 속에서 빛을 잃는 것을 보았어. 그렇게 엄마는 깨달았던 것 같아. 모든 재능을 포용하는 재능은 결국 삶을 사는 재능이라고. 그리고 삶을 사는 재능이 뛰어난 건, 현재를 누리되 삶 전체를 향한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 순간을 즐기고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사로잡고 또 순간에 사로잡히면서 생을 향한 감각을 예감하고 발현하고 또 기억하는 것, 마치 씨앗이 새싹과 줄기와 꽃과 가지와 열매를 예감하듯이, 싹으로도 줄기로도 가지로도 또 꽃으로도 충만하되 열매의 풍요로움을 기다릴 줄 아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물론 열매의 순간에도 씨앗의 묵묵함을 기억하는 것, 이 모든 감각을 삶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또 있지. 재능이 숨어들어 웅크린 듯 느낄 때, 그 존재조차 증명하지 못하는 듯 보일 때, 의심하기보다 어떻게 그 순간을 지나가는가에 집중하는 편이 좋다는 거야. 상처와 시련의 힘을 믿을 줄 아는 묵묵함과도 같지. 삶을 다루는 재능이란 시련을 다루는 능력까지 포괄하거든. 상처의 깊이를 바닥까지 누리고 그를 통해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그 풍요로 나와 내 삶을 인간의 깊이로 끌어내릴 수 있다면, 기쁨과 행복을 다루는 능력까지 높아질 거라고 믿어. 기쁨의 순간을 의심과 두려움으로 제한하지 않고 함께 비상할 줄 알게 된달까. 이렇게 깊이와 높이를 체득하면서 엄마는 또 권태를 지나가는 능력 또한 잘 익히려고 해. 종종 우리를 가장 지치게 하는 것은 권태니까. 권태는 조금씩 힘을 잃게 하고 스러지게 만들기도 하니까. 엄마가 지금까지 깨달은 권태를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독과 대면하되 연대를 잊지 않는 거란다. 고독과 친해지되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창조하고 누리는 거야. 마치 너와 내가 그런 것처럼. 이 같은 관계가 하나나 둘이 아닌, 셋이 되고 열이 된다면, 그리고 관계 속에 포괄할 수 있는 이들이 좀 더 깊이를 갖고 확장될 수 있다면, 엄마의 삶만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삶들을 포용할 수 있다면, 엄마의 삶은 더 풍요롭게 만발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면 말이야, 삶을 살아가는 재능에는 삶을 응원하는 일 또한 포함되거든. 삶은 응원받아 마땅한 거고. 그래서 엄마는 삶의 연대를 통해 타인의 삶을 응원하고 또 응원받으려고 해. 이렇게 엄마는 너희에게 응원을 보낼 거야. 엄마의 삶으로, 엄마의 살아가는 재능을 너희 앞에 펼쳐 보이면서. 그게 바로 너희들의 삶을 가장 기쁘게 응원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내 아이들아, 너희들도 너희들의 삶으로써 엄마의 삶을 응원해 줄래? 삶을 살아가는 재능을 만개하면서 말이야. 그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면서 말이야.

writer 이서희

photo GETTY IMAGES/IMAZINS

digital designer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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