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 굽는 핀란드 선거철

한국기자협회 입력 2017. 3. 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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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YTN 기자·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 교육 석사전공

핀란드 사람들은 소시지에 특별한 애착이 있다. 일반적으로 ‘소시지’라고 하지 않고 ‘마까라’란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를테면 한국인이 잘 아는 프랑크푸르트 소시지와는 모양과 맛이 조금 다르다. 마까라는 굵기가 오이정도에 길이 한 뼘 가량으로 별다른 야채를 첨가하지 않고 고기 자체로 맛을 낸다. 칼집을 비스듬하게 내어 주로 장작불에 구워 먹는데, 여름이고 겨울이고 야외 활동에 거의 빠지지 않는 메뉴다. 숲 속 산책로나 호숫가 통나무집에 앉아 마까라 구워 먹는 소풍이야말로 가장 소박하고 간편하게 핀란드 자연을 즐기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요새 핀란드 곳곳엔 이 ‘마까라’ 굽는 냄새가 가득하다. 오는 4월 9일 4년마다 각 지역 기초의원을 뽑는 지방선거(Municipal Election)가 열리는데, 소시지가 바로 선거운동의 ‘핵심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각 정당들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 작은 천막을 세우고 마까라를 굽는다.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선거운동 장소엔 후보자들이 나와서 주민을 만난다. 유권자들은 소시지를 먹으면서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관심 있는 공약에 대해선 후보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다. 이런 장소에는 아무래도 중장년층이 많이 모이는 편이다.

물론 주민들이 소시지 맛으로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유권자들과 후보를 실질적으로 연결하는 건 언론과 인터넷이다. 신문은 후보자 얼굴과 이름, 간단한 경력을 싣고, 투표장과 선거요령 등을 안내한다. 방송은 후보자 토론회를 열고 인터넷으로도 생중계한다. 여기에 각 언론사에서 제공하는 후보자 정보 인터넷 사이트 바아리꼬네(Vaalikone)에 접속해서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가장 비슷한 후보를 고를 수 있다. 기본적으론 한국의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큰 차이 없지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훨씬 편리하다.

유권자는 ‘바아리꼬네’ 사이트에 접속한 뒤 투표 지역을 선택한다. 그러면 교육, 주택, 복지, 세금, 생활 등으로 구분된 범주에 따라 질문이 다섯 개 나온다. 유권자들은 각 질문에 ‘아주 다름’부터 ‘아주 같음’까지 다섯 단계 척도로 답하는데, 웹사이트는 유권자 답변과 가장 일치율이 높은 후보를 ‘84% 일치’와 같은 수치로 보여준다. 별다른 로그인 절차 없이 여러 차례 해볼 수 있는데다, 각 후보의 공약과 ‘출마의 변’ 등을 간편하게 읽어볼 수 있어 비교가 쉽다. 후보자가 직접 답변한 동영상 인터뷰를 볼 수도 있다. 대부분 집이나 직장에서 편안하게 답변한 영상이다. 반려견을 안고 말하는 후보, 반팔 입고 소파에 앉아 답변하는 후보도 있다.

공영방송 YLE에서 제공한 교육 항목에선 “모든 어린이가 유치원에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지방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한 교실에 학생 수가 너무 많다” 등이, 복지 항목에선 “노인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자택 돌봄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지역 의료제도 민영화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효율성도 높다” 등이 질문으로 나왔다. 지역 현안에 맞춘 항목도 있다. 헬싱키 지역에선 “대형 이벤트나 콘서트는 소음이 좀 발생하더라도 늦게까지 허용해야 한다” “녹지를 줄여서라도 거주지를 더 넓혀야 한다” 등이 현안으로 나왔고, 북부 도시 로바니에미에서는 “지역 공연장 재건축 비용이 예상보다 높아진 이유를 조사하자” “새로운 수영장은 시내에 지어야 한다” 등이 나왔다. 전국적으로는 공영방송 YLE의 정보가 가장 풍부하지만, 지역 언론사들이 제공하는 정보들은 좀 더 구체적이란 장점이 있다.

사실 한국의 기초의원 선거를 생각하면 유권자 입장에서 아쉬움이 많다. 선관위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방대하지만 한눈에 살펴보기엔 어렵다. 후보자들이 건넨 명함 홍보물을 받긴 하는데, 빼곡한 정보는 둘째 치고 후보마다 정보가 동일하지도 않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결국 쉽고 편안하게 선거 정보를 읽고 판단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이곳의 기초의원 선거를 보면서, 선거를 ‘정치판’보다는 일상생활에 더 가깝게 만들려는 사회적 노력이 느껴진다. 나름 시끌벅적한 핀란드 선거철, 투표권은 없지만 일단 소시지 한입 맛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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