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라냐 백제냐' 국적논란 방이동 고분 40여년 만에 발굴한다

노형석 입력 2017. 3. 28. 16:46 수정 2017. 3.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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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옛 무덤떼는 보면 볼수록 알쏭달쏭해진다.

5~6세기 백제·신라 무덤 변천사에서 수수께끼의 고리가 되는 방이동고분군이 70년대 이래 40년 만에 처음 발굴된다.

봉토, 내부 무덤방 얼개, 유물 등을 확인할 것으로 보이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40년 가까이 풀리지 않은 신라, 백제 국적 논란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인지 학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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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박물관, 4월초 발굴조사 착수
1970년대 발굴 당시 한성백제 무덤 단정
나중에 출토된 토기 신라유물로 드러나
최근 백제석실분 잇단 발견에 백제무덤설 재부각
고고학계 해묵은 국적논란 종식될지 관심 모아져

[한겨레]

서울 송파구 방이동 산 47-4번지에 있는 방이동고분군의 일부. 1970년대 이후 강남개발로 아파트단지에 둘러싸여 섬처럼 풍경이 바뀌었다. 맨 왼쪽에 입구가 보이는 고분이 1호분, 바로 뒤에 있는 고분이 2호분이다. 그 옆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고분 2개가 3호분과 6호분. 이번에 발굴하는 고분은 조사되지 않았던 3호분이며 나머지 고분들은 70년대 조사된 바 있다.

이 옛 무덤떼는 보면 볼수록 알쏭달쏭해진다. 1500여년 전 무덤 잡은 자리는 옛 백제 도읍터 코앞인데, 나온 토기들은 죄다 신라의 유물이다. 그래서 30여년째 학자들 사이에 신라 무덤인지 백제 무덤인지를 놓고 국적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금은 아파트숲에 둘러싸여 8기의 무덤 공원이 된 서울 방이동고분군의 내력이다. 이 무덤떼는 70년대 초 한 주민이 자기 집 축대와 인접한 1호분 무덤의 돌방과 널길을 발견해 신고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뒤이어 75년 잠실 택지개발을 앞두고 문화재관리국이 1, 4, 5, 6호분 무덤을 발굴한 결과 백제, 신라 공통의 굴식돌방무덤(석실분)들이 대부분 나왔다. 조사단은 4~5세기 한성(서울)에 도읍한 초기 백제 무덤으로 점찍었다. 하지만 대부분 도굴된 상태에서 빈약하게 나온 굽다리접시, 직구호 항아리 따위의 토기 유물들이 나중에 학계의 뒤통수를 치게 된다.

학계는 출토품도 한성백제 유물로 봤는데, 아니었다. 80년대 초까지 진행된 경주의 신라고찰 황룡사터 발굴 현장에서 방이동 출토품과 똑같은 굽다리접시, 항아리들이 무더기로 나온 것이다. 방이동고분군 주인이 6세기 한강 유역에 진출한 신라인들이란 학설(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이 제시됐고, 결국 신라계 무덤이라는 통설이 힘을 얻게 됐다. 79년 사적 지정 당시 고분군 정식 명칭이 ‘방이동백제고분군’이었다가 2011년 명칭에서 백제가 빠진 건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백제설이 그냥 가라앉은 건 아니다. 최근 부근의 우면동과 하남시 감일동 등에서 한성백제의 정교한 석실무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방이동고분군 국적은 백제가 맞다는 설이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일부 학자들은 백제인들의 석실무덤을 나중에 들어온 신라인들이 재활용했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5~6세기 백제·신라 무덤 변천사에서 수수께끼의 고리가 되는 방이동고분군이 70년대 이래 40년 만에 처음 발굴된다. 한성백제박물관은 4월 첫주부터 전문가들 자문 아래 고분군의 3호분을 발굴하는 학술조사에 들어간다고 28일 밝혔다. 최근 3호분 한쪽 면 봉토가 쓸려 내려가는 이상현상이 나타나 관리자 쪽인 송파구청이 정비를 위한 조사를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3호분은 70년대 발굴되지 않았다. 봉토, 내부 무덤방 얼개, 유물 등을 확인할 것으로 보이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40년 가까이 풀리지 않은 신라, 백제 국적 논란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인지 학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최병현 교수는 “70년대엔 신라와 백제 고분의 얼개, 토기의 차이점에 대한 지식이 매우 빈약한 상태로 발굴했던 만큼 이번 조사를 통해 국적 논란에 좀더 분명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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