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젖고개' 넘지 못한 새끼 산양아

남종영 2017. 3. 2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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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아침 10시께 경북 울진군 북면 구수곡자연휴양림의 깊은 산 속.

한 등산객이 길을 가다 계곡 가에 쓰러진 어린 산양을 보았다.

뒤늦게 오는 봄눈은 다리가 짧은 산양을 종종 눈 속에 고립시키고, 피지 않은 봄나물은 산양을 굶주림에 허덕이게 한다.

울진에는 산양 보호시설이 없어서 구조된 산양은 먼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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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산양 구조 하루 만에 또 폐사
6년 동안 13마리 구조됐으나 10마리 죽어
최후의 저항 발 굴렸지만, 끝내 저세상

[한겨레]

지난 24일 경북 울진 구수곡자연휴양림 산속에서 어미를 잃은 새끼 산양이 사람을 피해 바위 위로 올라갔다. 탈진 상태에서 구조됐지만, 이튿날 아침 영양실조로 숨졌다.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 제공

지난 24일 아침 10시께 경북 울진군 북면 구수곡자연휴양림의 깊은 산 속. 한 등산객이 길을 가다 계곡 가에 쓰러진 어린 산양을 보았다. 산양은 엎드린 채 도망도 가지 않고 있었다. 인간과의 접촉을 매우 꺼려 모니터링팀도 일 년에 한두 번 볼까말까한 ‘멸종위기종’ 산양으로선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다.

등산객의 신고를 받고 모니터링팀이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건 오후 12시23분. 입구에서 걸어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첩첩산중이었다. 산양은 기력이 없어 보였다. 새끼 산양은 절벽 쪽으로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사람이 다가서자 발을 올려 ‘쿵쿵’ 땅을 찍었다. 더는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얘기였다. 모니터링팀은 담요를 던져 어린 산양을 사로잡았다. 평소 산양을 포획할 때처럼 내리막길로 몰고 그물을 던지는 거친 싸움조차 필요 없었다.

지난 24일 경북 울진 구수곡자연휴양림 산속에서 처음 발견된 새끼 산양의 모습.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 제공

일반적으로 어미 산양은 새끼를 한두 해까지 데리고 다닌다. 그런데 이 어린 새끼 산양은 왜 혼자였을까? 새끼 산양은 계곡가에 혼자 누운 채 발견됐다. 나이는 8개월 정도 되어 보였다. 몸무게를 재어보니 11㎏이었다. “지난해 태어난 새끼라면 15~16㎏은 되야 한다”고 이숙진 수의사(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가 28일 말했다.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다.

매년 2~3월, 산양은 ‘젖고개’를 넘어야 한다. 인간에게 ‘보릿고개’가 있는 것처럼, 먹을거리가 없어 젖이 부족한 어미는 새끼를 데리고 춘궁기 젖고개를 넘어야 한다. 뒤늦게 오는 봄눈은 다리가 짧은 산양을 종종 눈 속에 고립시키고, 피지 않은 봄나물은 산양을 굶주림에 허덕이게 한다.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의 김상미 국장은 매년 봄 탈진한 산양이 없는지 모니터링 한다.

“새끼가 따라오지 못하면 어미가 (새끼를) 두고 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먹이활동을 못한 어미가 이미 죽어서 새끼만 남아있을 수도 있고…”

새끼 산양은 약 180㎞ 떨어진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산양 보호시설인 설악산 종복원센터로 옮겨졌다. 신고된 지 7시간이 지났다. 울진에는 산양 보호시설이 없어서 구조된 산양은 먼 길을 가야 한다. 긴 운송시간은 겁 많은 초식동물인 산양에게 굉장한 스트레스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울진·삼척 지역에서 12마리의 산양이 구조됐지만 9마리가 이내 숨졌다.

설악산 종복원센터에 도착한 새끼 산양은 혈액검사를 받았다. 정상 체온이 39도인데, 36.3도밖에 되지 않았다. 혈당 수치도 낮았고 빈혈도 심했다. 탈진 상태로 보였다. 이숙진 수의사는 포도당 주사를 놓고,드라이기를 이용해 더운 바람을 쐬어주었다.

“밤 8시쯤 되니 체온이 정상으로 회복됐어요. 약간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어요.”

이숙진 수의사는 산양의 항문에 체온계를 삽입한 상태에서 상태를 지켜봤다. 살아난 듯한 명줄은 그러나 끊어지고 말았다. 이튿날 오전 5시58분, 새끼 산양은 저세상으로 갔다. 이숙진 수의사는 “개나 고양이와 달리 반추동물은 사람에게 잡혔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치료 과정의 스트레스도 심하다. 발견 당시부터 아주 상태가 안 좋았다”고 말했다.

설악산과 함께 국내 최대 산양 서식지인 울진·삼척에 문화재청은 올해 산양구조치료센터 건립 예산을 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수억원에 이르는 운영비를 울진군이 부담해야 해서 두 기관의 협의에 따라 미뤄질 수도 있다. 임태영 녹색연합 활동가는 “설악산에는 무인카메라 100대 이상이 설치된 것에 비해 울진·삼척에는 15~20대뿐”이라며 “구조된 뒤 치료를 위해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등 울진·삼척 산양은 체계적인 야생 보호에서 소외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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