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조기대선의 숨은 실력자 '정치컨설턴트'

김태은 이건희 김민우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2017. 3. 2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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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머니투데이 김태은 이건희 김민우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the300]종합]

한국에 '정치컨설팅'은 없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한국의 정치컨설팅 산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정치컨설팅이 태동한 것은 민주화 이후인 198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관련 법률 미비, 정치컨설팅 산업의 의식 부재 등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젼병민의 '동숭동팀'에서 여의도 정치컨설턴트까지 =김영삼 대통령은 1992년 대선 전부터 당의 공식기구와는 별도로 비밀 사조직을 구성해 집권 후 국정개혁 청사진을 그린다. 정책구상과 캠페인의 구분이 모호한 시절이었지만 정책은 ‘동숭동팀’ 캠페인은 ‘광화문팀’이 주로 맡아서 했다. 동숭동팀에는 선거기획과 정책연구를 1990년 6월에 설립된 전병민씨의 임팩트코리아가 중심에 있었다. 이 팀을 정치컨설팅의 시초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물론 1948년 직선제의 시작과 함께 한국 정치컨설팅이 태동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동숭동팀은 정치·행정, 경제, 사회·문화 등 3개그룹으로 나눠 집권전략과 집권 후 내각인선을 포함한 개혁정책을 구상했다. 금융실명제, 통합선거법 등도 다 동숭동팀이 구상한 기획이라는게 정설이다. 동숭동팀을 이끈 전병민씨는 40대의 젊은나이로 YS 초기 내각에 신설된 정책수석으로 발탁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수석전략가였던 셈이다. YS의 차남인 김현철씨가 주축이 된 ‘광화문팀’은 대선 일정을 조정하고 언론대응을 전담했다. 동숭동팀이 세운 캠페인 전략을 광화문팀이 전면에 나서 수행했다. YS집권 후 동숭동팀과 광화문팀의 일원들 대다수는 정책 연속성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내각에 들어간다.

이후 전략과 캠페인을 수립하는 컨설턴트는 사실상 자취를 감춘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연우기획, 민기획, 파이론, 코마콤 등 대통령직선제, 지방자치제 부활 등의 시대적 변화에 맞게 정치기획사들이 대거 성장했다. 1991년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된 지 30년만에 광역 및 기초의회 의원선거가 부활되자 정치기획사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치컨설턴트들은 1990년대를 ‘정치홍보기획사’ 전성시대라고 정의한다.

당시 정치홍보기획사를 운영하던 한 정치 컨설턴트는 “처음 출마자들이 회사로 몰려드는데 돈은 많지만 선거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며 “하루에 기초의원에 출마하려는 사람 수십명씩 홍보해주고 그랬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당시 기획사들은 사실상 선거홍보물을 인쇄하던 인쇄소 내지는 홍보기획사였지 엄밀한 의미의 정치 컨설팅회사로 보기는 힘들다는 게 정치컨설턴트들의 시각이다.

여의도에 ‘정치컨설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 김헌태 상상정치센터 센터장, 이재술 인뱅크코리아 대표, 김윤재 변호사,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등 정치권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치 컨설턴트들이 대거 출연한다. 분류하자면 정치컨설턴트 1.5세대 내지 2세대 쯤 된다.

김 대표는 여론조사와 현실정치를 넘나들며 정치컨설팅 위상을 한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정치컨설팅 협회 회원인 김 변호사는 국내 정치컨설턴트로는 보기드물게 미국에서 굵직한 선거를 경험했다. 국내에서는 2012년 경기 성남 분당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손학규 후보를 도왔고 같은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후보의 전략을 맡아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유 대표 역시 지금은 정치컨설팅을 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각 캠프에서 그에게 자문을 구할정도로 정치권에서 ‘모셔가려는 컨설턴트’중 하나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센터장, 이강원 한국갈등문제연구소장 등은 정치컨설턴트 3세대다. 빅데이터를 통한 전략분석·수립 등 뉴미디어를 통한 선거 전략수립에 능하다.

◇여의도에 정치컨설텅은 없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과 활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컨설턴트 산업은 아직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정치컨설턴트들은 그 이유로 ‘오세훈법’과 ‘정치계 분위기’를 꼽는다. 오세훈 법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차떼기’기로 상징되는 불법 정치자금을 통한 정경유착 등 후진적 정치문화를 개혁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정치자금법’을 말한다. 새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 투명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현실과 괴리가 커진 것이다. 정치 관련 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컨설팅의 댓가로 금액을 지불하기보다는 집권 후 ‘자리나누기’식으로 보상하는게 일반화 됐다. 정치컨설팅의 영역이 캠페인, 전략수립, 메시지, SNS, 빅데이터 분석, 여론조사 등 세분화·전문화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 컨설팅의 영역은 여전히 모호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선거에는 외부의 정치컨설턴트나 수석전략가를 영입하기보다는 동료 국회의원들이 업무를 나눠서 맡는다. 여론조사와 홍보물작성 등을 패키지로 묶어 비용을 지불하는 1990년대 ‘홍보기획사식’ 정치 컨설팅이 여전히 보편화 돼있다.

이렇다보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자리나누기’는 특정 세력의 ‘패권’으로 귀결되기 가능성이 크고 선거 때 도와준 이들에게 보상하다보니 전문성과 상관없는 자리에 인사를 하는 ‘낙하산인사’를 하거나 없는 자리를 억지로 만들기도 하는 기형적 구조를 만든다. 컨설턴트들이 전문적인 분석가, 전략가로 남길 원해도 정치권에서는 자기사람이 되라고 강요하기는 상황도 컨설팅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

정치컨설턴트들은 이같은 상황이 정치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수십억원을 주고 외국인 감독을 데려와도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질 대통령과 정치인에게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다”며 “돈을 벌 방법을 연구하는 기업 연구소는 많아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싱크탱크는 찾아보기 힘든 나라”라고 지적했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는 “보상의 수단이 ‘자리’ 등으로 한정되다보니 시장의 투명성은 더 낮아지고 있다”며 “전략컨설팅 시장이 커지고 외주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의 '엑설로드·문재인의 '마크 펜'…주목받는 정치컨설턴트는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미국 대선에선 정치컨설턴트가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처럼 따라붙지만 우리에겐 아직 낯설다. ‘선거 전문가’보다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이 선거를 주도하는 정치 문화 탓이 크다. 캠프에서 후보를 돕더라도 여론조사 지원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최근 조금씩 변화가 감지된다. 유력 대선 후보 캠프에 ‘선거 전략가’가 들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캠프엔 참여정부 여론조사비서관 출신 이근형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가 있다. 국내 최고의 선거 전문가이자 정치 컨설턴트로 손꼽히는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캠프를 돕는다.

◇한국 정치컨설턴트의 '1인자', 안철수에게 간 까닭은 = "호남에서 국민의당 경선 흥행, 안철수의 압승을 통한 '반(反) 문재인 정서'의 확인…. 이를 본선으로 이어가면서 지난 총선처럼 마지막 극적 반전을 꾀하는 노림수.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은 '박성민'일 것이다." 지난 26일 국민의당 호남 경선 결과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던 때,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이 지목한 사람이 박성민 대표다. 그는 올초부터 안철수 캠프에서 전략과 메시지 등의 자문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표가 사실상 캠프의 ‘수석 전략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공식 직함을 갖고 있지 않지만 중요한 의사 결정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후보 대선출마 선언식 슬로건으로 ‘대신할 수 없는 미래’가 결정된 게 좋은 예다. 지난해 20대 총선 서울 노원병 선거 당시 안 후보가 내건 슬로건이 '대신할 수 없는 이름, 안철수'였다. 박 대표는 안 후보의 노원병 지역을 맡아 낙승을 이끌었다. 특히 선거 슬로건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대표는 범여권 대선후보들과도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깊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2014년 지방선거 승리도 그의 작품이다. 이번 대선에서 중도보수 성향 지지층을 껴안아야 하는 안 후보에게 여권 후보 선거 경험이 풍부한 박 대표가 맞춤형 전략을 내놓을 수 있다는 평이다. 박 대표가 줄곧 언론 인터뷰와 칼럼에서 이번 대선 관련 다자구도, '야야(野野) 대결'로 펼쳐질 것이라고 주장해 왔던 것과도 맞물린다. 안 후보가 다른 대선후보에 비해 전문가인 정치컨설턴트를 선호하는 것도 특징이다. 지난 2012년 진심캠프에서도 안 후보는 미국정치컨설팅협회 회원인 김윤재 변호사에게 캠프 전략 자문을 맡긴 바 있다.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여론조사의 힘, '문재인 정부'로= 이근형 대표는 더문캠 전략기획본부에서 전병헌 본부장과 공조하고 있다. 각종 데이터를 통해 여론 동향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전략 기조와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로 알려졌다. 특히 문재인 캠프가 '탄핵정국' 이후 '문재인 대세론'을 형성하고 이를 공고화하는 것에 방점을 두면서 여론조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이 대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꺾지 못한 '문재인 대세론'이 엉뚱하게도 같은당 후보인 안희정 후보의 추격으로 위협받자 '역선택’에 따른 여론조사 방식의 문제점을 부각, 의미를 반감시킨 게 대표적 사례다. 이 대표는 이미 2012년 대선에서 문 전 대표의 선거에 참여한 바 있다. 당시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시뮬레이션 조사와 컨설팅을 맡아 단일화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는 데 일조했다. 그는 일찍이 1997년 대선 당시 고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씨가 차린 선거기획사 '밝은세상'에서 'DJ DOC와 함께'라는 로고송을 만들며 선거 기획에 뛰어들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정몽준-노무현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의 주역이기도 하다. 노무현 후보 선대위에서 전략기획국장을 맡고 있던 이 대표는 설문 문구 초안 작업에 참여,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면서 여론조사 기획업무에 눈을 떴다. 이후 참여정부에서 여론조사비서관을 지냈고 2009년 윈지코리아컨설팅을 만든 후 주로 민주당 후보들의 선거를 맡아왔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민주당 출신의 동질성이 강하고 후보에 대한 이해가 높아 문 전 대표가 필요로 하는 전략과 대응을 신속하게 제시하는 편"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대통령보다 더 주목받는 미국 정치 컨설턴트들

【워싱턴=AP/뉴시스】지난 2009년 5월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TV 인터뷰를 하고 있는 데이비드 액셀로드 당시 백악관 선임고문. 영국 노동당은 18일 액셀로드를 내년 총선 선거캠페인 선임 전략고문으로 고용했다고 밝혔다. 2014.04.19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대통령 당선자와 함께 가장 주목받는 인사가 바로 선거를 승리로 이끈 정치컨설턴트다.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지만 백악관 뿐 아니라 기업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러브콜을 보내는 등 전략가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유명세를 떨쳤던 정치컨설턴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거전략을 담당했던 데이비드 액설로드다. 오바마 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인 2004년부터 '오바마 캠프'를 진두지휘했던 그는 2008년 미 대선 때 오바마의 키워드를 변화로 잡고 ‘예스 위 캔(Yes, We Can·우린 할 수 있다)’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 뿐 아니라 시카고 최초의 흑인 시장인 해럴드 워싱턴을 비롯해 디트로이트의 데니스 아처, 클리블랜드의 마이클 화이트, 워싱턴의 앤서니 윌리엄스, 휴스턴의 리 브라운 등 흑인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중책을 맡았다. ‘제2의 오바마’로 불리는 데벌 패트릭 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2006년 선거 승리도 이끌며 ‘선거의 귀재’란 별명을 얻었다.

전세계적으로 정치컨설턴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참모 딕 모리스다. 미국 아칸소주 법무장관이었던 빌 클린턴을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시켰고 1992년 대선 승리까지 이끌어냈다. 1996년 클린턴이 재선에 도전할 때에도 선거총책임자를 맡아 성공했고 멕시코 대통령 선거에서도 활약했다.

칼 로브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으로부터 "나의 설계사"라는 찬사를 들은 정치컨설턴트였다. 아버지 부시를 돕다가 아들 부시의 주지사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부시의 대통령 당선 후 백악관 참모로 입성한 후에는 ‘공동 대통령’(Co-president)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의 이변을 일으킨 공화당 정치컨설턴트 로저 스톤이 주목받았다. 로저 스톤은 1972년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을 위한 전략 컨설턴트 역할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1980년과 1984년 로널드 레이건 선거캠프를 거쳐 최근까지 공화당과 자유당 대통령 및 의원·주지사 후보 등을 위한 선거 전략을 짜 왔다. 주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김태은 이건희 김민우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shyun8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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