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원라인' 진구의 '쿨워터향'..곧 '진한 사람냄새'

한해선 기자 2017. 3. 2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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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과도하게 악 쓸 필요 없다. 배우 진구가 삶과 연기를 대하는 방식이다. 2003년 데뷔작 ‘올인’ 때 얄짤없이 딱 보름간, 지난해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두 번째 반짝 인기를 누렸다는 그. “1년이 지나고 거품이 빠진 것도 그 나름대로 좋다.”며 자체독설을 서슴지 않는, ‘쿨워터향’ 진하게 풍기는 배우.

배우 진구 /사진=NEW

15년간 터득한 연기 노하우 덕인지 29일 개봉하는 영화 ‘원라인’에서 장 과장으로 변신한 진구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진짜’ 같아서 장 과장을 보고 있는 건지, 진구 자체를 보고 있는 건지 순간 착각이 들 정도다. 그만큼 진구의 역대 필모그래피 중 가장 싱크로율이 흡사한 캐릭터다. ‘베테랑 사기꾼’이라는 점만 빼고는 능글능글하면서 한편으론 의리와 선(善)을 지킬 줄 아는 매력적인 면이 닮아있다.

27일 서울경제스타와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진구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원라인’ 대본만 봤을 때는 사실 매력을 잘 못 느꼈어요. 감독님께 저를 설득해달라고 했죠. 감독님께서 돈보다 사람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고 하시더라고요. 장 과장 캐릭터는 그냥 저처럼 능글맞게 연기하면 된대요. 내면을 안 보여줄 것처럼 하면서 보여주면 된다고요. 제가 평소 말할 때 목소리도 낮고 손도 많이 쓰는데 그런 면을 그대로 보여줬어요. 장 과장은 사기꾼 같으면서 사기꾼 같지 않다고. 인간답지 않은 일을 인간답게 하는 걸 보여주려고 연기했어요.”라는 첫 마디만 봐도 솔직함 그 자체다.

“너무 편하게 연기해서 ‘이렇게 편해도 되나?’, ‘내가 샛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두렵긴 했어요. 감독님께서 매 촬영마다 저에게 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해주시더라고요. 믿고 편안하게 샛길로 가고 있었죠. 심지가 굳은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 과장은 실제 은행에서 일 하다가 ‘장석구’라는 이름에서 본래의 장 씨 성을 그대로 쓰면서 사기를 치잖아요. 전사(前事)로는 은행 일을 하면서 회의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유독 장 과장이 ‘도와준다’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진짜 그러려고 작업대출을 시작했을 거 같아요.”

‘원라인’은 평범한 대학생 민재(임시완)가 전설의 베테랑 사기꾼 장 과장(진구)을 만나 모든 것을 속여 은행 돈을 빼내는 신종 범죄 사기단 원라인을 결성, ‘작업 대출’계의 샛별로 거듭나는 민재와 원라인 멤버들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 오락 영화다. 임시완을 비롯해 박병은, 이동휘, 김선영 등을 아우르는 리더 장 과장은 서민 대출을 도와준다는 거창한 거짓 명목을 내세워 신종 사기를 저지른다. 하지만 장 과장은 보통의 사기꾼과는 사뭇 다르다. 그 속에서 나름의 정(情)을 내비치기 때문이다. 정 많은 면모가 진구와 더불어 양경모 감독과도 닮아있어 흥미롭다.

“감독님이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와도 된다고 해서 심지어 대본도 안 보고 즉석에서 촬영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첫 테이크에서 무조건 오케이 해주셔서 감사하죠. 감독님과 호흡이 너무 좋았어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일지라도 눈빛만 보면 이해하겠더라고요. 칭찬도 모두에게 잘 해주시고. 특히 제 취향이었던 게, 배우들마다 개개인의 디렉션을 다르게 주셨다는 거예요. 소심한 배우, 유쾌한 배우 등 모두에게 맞춰 다르게 디렉션을 주셨죠. 상업 영화 입봉작이신데도 그걸 바로 아시더라고요. 주조연 배우 수에 맞춰 무려 14개의 디렉션을 주셨어요. 저는 ‘방목형’ 이었어요.”

배우 진구 /사진=NEW

굳이 대본을 안 봤던 이유를 물으니 “대본을 연구는 하는데, 제가 연구한 부분이 감독님과 안 맞을 때 실망감이 들더라고요. 맨날 오답만 내는 것보다 함께 하면서 터득해 나가는 게 나은 것 같아요. 그런 정답을 잘 알려주는 분이 좋은 감독인 것 같아요.”라고 현장에서 깨우치는 리얼한 연기를 강조하며 감독과의 끊임없는 호흡을 강조한다.

‘원라인’에서는 감독뿐만 아니라 출연진에게서도 얻은 부분이 상당하다. 극중에서나 현장에서나 리더의 입장이었음에도 ‘돋보임’보다 ‘묻어남’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동휘랑 (박)종환 배우의 재발견이었죠.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라 방심했는데 이 정도였어?’라고 생각하면서 놀랐어요. ‘마더’ 때부터 깨달은 건데, 김혜자 선생님, 원빈 씨 등 열연하시는 분들과 함께하면 확실히 제 짐이 줄어들더라고요. 움직임도 좀 더 자유로워지고 연기하기도 편하고. 그런 모습을 관객 분들도 좋아하시고. 그런 부담감이 덜한 작품이 흥행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조심스레 ‘원라인’의 흥행을 점쳐본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출연진이 흥미로운 캐릭터를 열연하며 제 역할을 충실히 한다. 베테랑 사기꾼 석구부터 순진한 대학생 외모에 천재 사기꾼 기질을 드러내는 민재, 야심가득 행동파 박실장(박병은), S대 출신 위조전문가 송차장(이동휘), 개인정보의 달인 홍 대리(김선영), 민 대리의 행동파 건달 기태(박종환), 미모의 뇌섹녀 해선(왕지원), ‘한 땀 한 땀’ 수작업의 달인(박유환)까지 모두 사기를 위해 ‘열일’ 한다.

아이돌그룹 제국의아이들에서 이제는 배우로서의 역량을 펼치고 있는 임시완의 연기를 평가해 달라고 하자 “(임)시완이가 계속 제 옆에서 뭘 해서 귀여워요. 시완이가 연기할 때 좀 더 편해지기를 원해요. 너무 치열하면 금세 지치거든요.”라고 과열의 부작용을 염려했다. “저도 데뷔 초에 쓸데없는 고민 많이 하고 연기에 전혀 도움 안 되는 공부도 많이 했죠. 빛도 차단하고 세상과 소통을 단절해보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까지의 감독님들이 가장 큰 스승들이었어요. 오히려 저는 후배들에게 많이 배우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메소드 연기과는 아니예요. 합리화를 하지 못하면 연기를 못 해요. 거짓말을 못해서 그게 다 티 나요. 정당화가 안 되면 아무리 작품과 감독님이 좋아도 정중히 거절을 하죠. 저는 일터가 재미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편해야 감정신이 잘 나와요. 시나리오가 술술 잘 읽혀야 제가 작품을 해요. 안 그러면 ‘뻥’이 되잖아요. 돈과 시간을 할애 해주는 분들에게 ‘뻥’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결례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면 ‘마더’가 가장 잘 읽혔어요. ‘26년’, ‘쎄시봉’, ‘비열한 거리’도 잘 읽혔고요. ‘원라인’이 의외로 잘 안 읽혔는데, 감독님이 저의 ‘책 읽어주는 남자’였죠. 제 생각 이상으로 영화가 잘 나온 것 같아 좋네요.”

배우 진구 /사진=NEW

진구와 만나니 지난해 국내를 포함해 아시아권까지 신드롬이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낯선 땅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삶의 가치를 담아낸 휴먼 멜로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진구는 특전사 선임상사 서대영 역을 맡아 반듯함과 진중한 카리스마, 그 가운데도 윤명주(김지원)와의 애틋한 로맨스까지 ‘상남자’의 전형을 선보였다. 유시진(송중기)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권까지 번진 인기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행복하죠. 연기를 하는 사람에게 크게 ‘인간성이 좋다’, ‘연기를 잘 한다’, ‘미남이다’라는 칭찬이 있을텐데 세 가지를 다 누려본 거잖아요. 저는 ‘올인’으로 데뷔했을 때 처음에 한 번, ‘태후’ 때 한 번 이룬 것 같아요. 천천히 살다보면 또 올 거 같기도 하고.(웃음) 없어도 괜찮아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의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은 거죠.”

“사실 ‘올인’ 때는 인기 있던 시절이 보름밖에 없었어요. 처음에 인기가 짧았기 때문에 그렇게 얻은 인기가 잊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이후로 오디션에서 수도 없이 낙방하면서 이 바닥의 무서움을 알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무명시절이 저에게 약이 된 것 같아요. 그게 없었으면 연기도 더럽게 못 했을 거예요.(웃음)”

그러다가 찾아온 기사회생의 계기는 ‘비열한 거리’ 때였다. 지칠 대로 지쳐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오디션을 보긴 했지만, 전라도에 사는 친구네에 가서 직접 사투리도 배울 만큼 노력을 게을리 하진 않았다. “오디션을 보는데 제 사투리가 너무 어색한 거예요. 또 떨어질 것 같은 슬픈 예감에 정말 기운이 빠진 채 연기했어요. 근데 붙은 거 있죠. 그 작품이 잘 되고 종수가 각인이 돼서 이후로는 오디션을 안 보고 작품에 캐스팅됐어요. 욕심 부린다고 얻어지는 게 없더라고요. 15년 동안 이쪽 일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에요. 바라지 않던 선물이 참 고맙더라고요. 항상 감사하면서 사는 게 좋은 거 같아요.”

현재 진구는 과거에 체득한 살아있는 교훈 덕인지 ‘사람’을 참 좋아한다. 현장에서도 어우러짐을 기반으로 삼는 그가 ‘원라인’ 장 과장과 실로 일치한다. 인터뷰 중간 구수하고 차지게 툭 내뱉은 비속어가 어찌나 정감 가는지. 이 ‘쿨워터향’이 배우 진구에게는 ‘사람냄새’와도 일맥상통하다.

“제가 후배 때 선배에게 받고 싶었던 걸 지금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어서 좋아요. 저는 처음부터 인기스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기가 없는 친구, 있는 친구 모두에게 상담해줄 수 있고 친근해질 수 있죠. 자기가 배고프고 돈 못 버는 것에 익숙해져야 조바심이 안 나는 것 같아요. 지금 사는 삶에 편안함을 느껴야 오래살 수 있죠. 지금도 수많은 식솔이 있습니다. 단역 연기자들까지 하면 30명 정도 있겠네요. 일요일마다 농구를 해요. 운동도 하고 술 먹고 고민 얘기도 하고. 결혼, 육아 상담도 하고요.(웃음) 제 존재도 힘이 되겠지만, 저에게도 그들이 엄청 큰 존재예요. 와이프도 포함해서요. 꿋꿋이 살아가려고요. 요즘엔 잠자리에 누우면 너무 뿌듯해요. 자만하고 방심할 때쯤 그런 친구들이 나타나줘서 참 고마워요.”

배우 진구 /사진=NEW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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