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보수 정당의 통합

김대중 고문 입력 2017. 3. 28. 03:11 수정 2017. 3. 2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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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친박·반박 싸움은 무의미
민주당 득세 저들 잘해서 아냐.. 보수가 분열해 갖다 바친 것
좌파의 독주·독재 견제가 이 땅 보수 우파의 나아갈 길
후보 결정보다 합당부터 논의를

요즘 대선 가도(街道)에서는 이른바 대세(大勢)라는 민주당의 문재인씨에게 대항하는 반문(反文) 연대 내지 단일화 논의가 활발하다. 혼자서는 못 이기겠으니 떼로 달려들겠다는 모양새인데, 그런 철학 없는 떼거리 전술로는 이겨도 후유증이 더 크고, 지면 문재인씨 또는 민주당을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면 문재인 또는 민주당에 대항하는 철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보수 세력의 봉합 내지 집합(集合)이어야 한다. 오늘날 정치 판도가 이렇게 순식간에 뒤바뀌게 된 배경에는 보수 정당의 분열이 있었고 그 분열의 단초는 불행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공한 것이다. 문씨와 민주당의 득세는 저들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기보다 보수 세력이 갖다 바친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지난날의 잘잘못을 따져봐야 의미가 없다. 앞으로가 문제다. 보수 분열의 원인을 제공한 요소를 하나씩 극복하고 그런 토대에서 보수가 다시 봉합해서 앞으로 있을 좌파 독주 내지 좌파 독재를 민주적 방식으로 견제하고 의회적 투쟁으로 풀어나가는 것―그것이 이 땅의 보수·우파가 나아갈 길이다.

보수 정당은 이제 '박근혜'라는 멍에에서 벗어났다. 문제의 원인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것이 어느 한쪽에는 불행이고 억울함이겠지만 보수 세력 전체로 보면 일단 기회이고 자유다. '박근혜'가 부재(不在)하는 상황에서 친박과 반박의 나눔이나 다툼은 아무 의미도 없고 실익도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정치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너무나 한가한 소리일 뿐이다.

문재인씨 또는 민주당의 '정권 교체'는 그냥 정치학 논의에서 나오는 정권 교체가 아닌 것 같다. 저들이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아니 세상의 판을 뒤엎는 '청산(淸算)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적폐' 운운하며 거기에 '분노'를 얹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정권의 교체가 아니라 가히 '나라의 교체'를 예견케 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지난 10여 년간 (이명박-박근혜) 못 해왔던 것, 보수 정치에 가로막혀 못 해왔던 것을 전면 실행하겠다는 자세로 가고 있다"고 했다. 외교 (대미·대일·대중국) 면에서, 북한과의 관계 설정에서, 그리고 안보(사드, 한·미 훈련, 주한 미군 철수) 면에서 중대하고 심각한 국면 전환이 예측되고 있다.

보수 정당이 시급히 재건돼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대선에 이기고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허망한 소리로 들린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군소 정당 놀음이나 하고 어쩌다 원내 진출이나 하면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은 몰골로는 존재 가치는커녕 이유조차 없어 보인다. 정권은 포기하더라도 의미 있는 견제 세력으로 남아야 한다. 그러려면 보수는 다시 합쳐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민주당의 독선과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명분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 소아(小我)를 버려야 한다. 대안 제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젊음이 있어야 한다. 현재 민주당 의석 수가 121이고 자유한국당이 93, 바른정당이 33이다. 두 보수 정당이 합쳐 원래의 새누리로 가면 126석이 돼 충분히 견제가 가능하다. 거기다가 39석인 국민의당의 반문 요소를 감안하면 민주당이 비록 이번 대선에서 이긴다 해도 심각한 여소야대를 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후보 결정에 앞서 합당을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두 당 사이에는 아직도 박(朴)을 엄호하거나 증오하는 지도부가 잔존한다. 자유한국당의 친박 수뇌부 몇 명 그리고 바른 정당의 반박 수뇌부 몇 명이 대의를 위해 옆으로 비키거나 뒤로 물러서 차세대 지도 세력에 서로 만날 기회를 줘야 한다. 바라건대 박 전 대통령도 나섰으면 한다. 지금 울분과 원망과 회오에 쌓여 주변을 돌아볼 여지가 없겠지만 그가 진정 보수 세력의 지도자였고 보수 정당을 키워나가는 데 기여했던 정치인이라면 자신 때문에 망가진 보수의 머신을 다시 봉합하고 재가동하는 데 역할은 해야 한다. 그것이 결자해지 정신이다.

우리는 어느 특정 정치 세력의 장기 독주도, 편파적 일방통행도 원치 않는다. 우리는 좌우의 두 날개가 서로를 보완하며 이어가는 정치를 원한다. 한 세력이 주도권을 쥐면 다른 세력이 견제권을 행사하며 균형을 잡아가 주기를 바란다. 어쩌다 정권을 잡고는 나라를 온통 뒤엎을 자유를 부여받은 것처럼 펄펄 날뛰는 것도, 정권을 빼앗기면 세상을 잃은 듯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치사해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견제 세력이 굳건하면 집권 세력이 절대로 패권적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 거꾸로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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