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해병대 팔각모

유용원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2017. 3. 2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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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국방부 출입 기자단 일원으로 권영해 당시 국방장관과 함께 백령도 해병대 부대를 간 적이 있다. 백령도가 중요한 곳이기는 했지만 국방장관이 직접 찾은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권 장관은 백령도 해병대 간부들의 관사를 둘러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20㎡(8~9평) 될까 말까 한 크기에 지은 지 30년이 다 돼 물이 새거나 난방이 제대로 안 되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간부 숙소는 권 장관이 다녀간 뒤에야 달라졌다.

▶'귀신 잡는 해병'이란 신화에도 해병대는 군내에서 가장 '춥고 배고픈' 군대로 꼽혀왔다. 예산 배정이나 각종 사업 우선순위에서 해군 내에서조차 발언권이 약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런 해병대를 강군(强軍),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군대로 지탱해온 것이 독특한 해병대 문화와 전통이다. 그중 상징적인 것이 빨간 명찰과 팔각모, 짧게 깎는 상륙 돌격형 두발, '세무(섀미) 워커'라고 하는 전투화 등이다.

▶해병대 신병들은 훈련소 수료식에서 오른쪽 가슴에 빨간 명찰을 달면서 모두 눈물을 흘린다. 빨간 명찰은 비로소 해병대의 일원이 됐음을 알리는 징표이다. 2011년 해병대 2사단 총기 난사 사건 때 가혹 행위를 한 병사에게 내린 강력한 조치 중 하나가 '빨간 명찰 회수'였다. 빨간색은 피와 정열·용기를, 그 안에 이름을 새긴 황금색은 신성함을 담고 있다.

▶팔각모는 미 해군과 해병대 작업모에서 유래했다. 우리 해병대에서 완전히 각(角)이 잡힌 형태가 됐다. 임전무퇴(臨戰無退) 등 화랑도 세속오계를 지키고 욕심·향락·허식(虛飾) 세 가지를 삼가라는 팔계(八戒)의 뜻이 있다. 팔각은 '온 세상'을 가리키는 팔극(八極)의 뜻도 담고 있다. '지구상 어디든지 가서 싸우면 승리하라'는 명령이다. 최근 군 당국이 해군 전투모를 이 팔각모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군과 해병대 장병들의 일체감을 강화하려는 취지라고 한다.

▶이에 대해 해병대 예비역 등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전직 해병대 사령관은 "복식 통일로 일체감을 이룬다는 생각이라면 육·해·공 3군 복장을 통일해야 할 것"이라며 "한마디로 코미디 같은 발상"이라고 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때 북한군 포탄이 옆에서 터져 철모에 불이 붙고 얼굴에 화상을 입은 줄도 모르고 대응 사격을 한 해병대 병사 사진이 국민 가슴을 찡하게 한 적이 있다. 해병대 특유의 정신은 우리 군에 필요한 것이다. 군 당국이 무엇을 하든 해병대 사기를 훼손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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