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법안.. 사장도 근로자도 불안

성호철 기자 2017. 3.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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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 中企단체 "입법 중단을"]
- 中企 근로자들 단축에 부정적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것보다 깎이는 월급이 더 힘들어"
- 中企 업주 "문 닫아야할 판"
"구인난에 1~2명 채용도 힘든데 단축 근무 땐 수십명 뽑아야 해"
- 정치권도 한발짝 물러서
"中企 대응 시간 충분히 주고 부작용 막을 보완책 찾아야"

27일 오전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에 있는 중소기업 J사(社)의 생산 공장. 직원 10여 명이 자동차용 금속 부품을 공장 중앙의 커다란 진공로에 쉬지 않고 집어넣고 있었다. 이 안에서 부품의 표면처리가 이뤄진다. 이 회사는 작년 매출 23억원에 순이익 8500만원을 낸 중소 제조업체다. 일이 고되다 보니 국내 근로자 찾기도 힘들어 네팔 출신 외국인 노동자 4명을 고용하고 있다.

27일 오전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에 있는 한 금속 가공업체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열처리할 금속 부품을 옮겨담고 있다. 이 업체 대표는“근로시간은 줄어들고 휴일 근로 수당이 늘어나면, 적자에 허덕이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과중한 인건비 부담 때문에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이 회사 강 모 대표는 "최근 국회의 근로시간 단축 법안 추진 소식을 듣고 회사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전체 비용에서 인건비 비중이 30~35%에 이른다. 인건비 비중이 10% 안팎인 대기업과는 엄청난 격차다. 강 대표는 "근로자 19명과 함께 주6일 밤낮으로 공장을 돌려 몇 년째 불황에 견디는 중"이라며 "근로시간 단축법이 통과되면 야근도 제대로 못 할 테고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근로자의 주당(週當) 근로시간을 현재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중소기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소기업 현장을 무시한 법안 추진 탓에 근로시간 감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커녕, 중소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을 버티지 못해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소기업들 "성급한 시행은 중소기업 고사"… 근로자들도 "임금 깎일까" 불안

27일 중소기업중앙회·벤처기업협회·한국여성경제인협회·소상공인연합회·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등 15개 중소기업 단체·협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긴급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준비 안 된 근로시간 단축 입법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박성택 중기중앙회장은 "중소기업들을 고사 위기로 내모는 근로시간 단축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현실도 모른 채 정치권이 포퓰리즘 법안에 몰입한다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근로자들도 임금 감소를 우려하며 법안 추진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광주광역시 자강산업의 생산직 근로자 110여 명은 주당 60~68시간 일하고 연봉 3800만원(수당·상여금·퇴직금 포함)을 받는다. 30여 명은 외국인이다. 여기서 근로시간을 50시간 안팎으로 줄이면 연봉은 3200만원 정도로 떨어진다. 민남규 자강산업 회장은 "생산직 근로자들이 근로 단축 추진 소식을 듣고 연봉이 줄어들까 봐 불안해한다"면서 "갑자기 월급 20%가 깎이면 누가 좋아하겠냐"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기존 공장 직원의 근로시간 감소만큼 중소기업이 추가로 생산직 직원을 고용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근로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고용이 늘 것으로 기대하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라는 주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중소기업이 고용 공고를 내고도 채우지 못하는 부족 인력이 8만명에 달한다. 특히 지방 공장들은 고질적인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것. 주보원 삼흥열처리 대표는 "지원자가 없어 한두명 채용하기도 힘든 판에 단축 근무 하려면 50명을 한꺼번에 고용해야 한다"며 "우리 같은 중소 제조기업들은 이 법이 통과되면 거의 다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시행 시기 연기하고 특별 연장 근로 허용해달라"는 중기업계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는 근로시간 단축안을 논의했지만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대선을 앞두고 중소기업계가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한발 물러선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계에서는 대선 후 노동계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정부가 들어서면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 힘을 더 받을 것으로 우려한다.

중소기업계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점진적으로 시행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당 52시간 근로하더라도 노사가 합의할 경우 주당 8시간 특별 연장 근로를 허용하고, 시행 시기를 세분해 고용 인원이 적은 기업일수록 충분히 대비할 시간을 달라는 입장이다. 한무경 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은 "근로시간 단축을 하더라도 중소기업에 대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부작용을 막을 보완책을 서로 고민하면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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