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만만한 나라 아니었다는 걸 세계가 알게 될 것"

과천/유석재 기자 2017. 3. 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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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실록 英譯本 낸 국편 전문가들
한문·영어 능통한 연구자 모여 2012년부터 조선왕조실록 英譯
人名 표기, 의례 용어 번역 등 기존 국역보다 어려움 많아
"영어권 독자들 읽을 생각에 벅차"

'The Veritable Records of King Sejong 1'.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김정배)가 최근 출간한 영문 서적 한 권은 앞으로 세계 한국학계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의 첫 영역본 서적인 '세종실록' 제1권이기 때문이다.

"영어권 한국학 전공자와 학생들이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실록 영역 사업을 총괄하는 이희만(56) 국편 사료연구위원이 말했다. 2005년 실록의 우리말 번역문이 인터넷에 공개된 이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영화·드라마 등의 창작 열풍이 일어났듯, 이번 영역이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리라는 기대도 생겨나게 됐다. 2012년 실록 영역 작업을 시작한 국편은 2022년까지 '세종실록'을 완역하고, 이후 나머지 실록 중에서 선별해 번역할 예정이다. '세종실록' 전체 약 380만자 중에서 현재 20% 정도인 78만자가 번역돼 인터넷에 올랐고, 그중 세종 즉위년(1418)과 이듬해까지 8만6000자 분량이 첫 책으로 나왔다. '세종실록' 전체가 책으로 나오게 되면 40권을 훌쩍 넘어선다.

한자 용어의 독음을 그대로 다는 일이 많았던 국문 번역과는 달리, 영문 번역은 뜻을 하나하나 풀어야 했다. 세종의 취임사에 나오는 "아아, 임금 자리를 바르게 하고 삼가는 자세로 통치를 시작해 종묘의 소중함을 받들겠습니다(於戲, 正位謹始, 以奉宗祧之重)"라는 문장의 경우 "Ah! I will esteem the importance of the Royal Ancestral Shrine by rectifying the throne and cautiously embarking on my reign"으로 번역했다.

번역 작업에는 한문과 영어, 역사·철학 지식에 모두 밝은 전문가가 투입됐다. 미국 유학파인 심윤정(45)·차학선(45)·이지연(46)씨 등이 번역 작업을 맡았고, 이민 2세대 김학철(26)씨와 영국에서 철학을 전공한 백은석(51)씨가 교열을 맡았다. 국편의 이희만 위원과 김범(47) 편사연구관의 주재로 10여 차례 모여 강독하고 꼼꼼하게 교정했다. 이들은 "번역하기에 무척 까다로운 시기였다"고 털어놨다. 세종이 즉위했지만 상왕 태종이 아직 건재해 '하늘에 해가 두 개 떠 있는' 특수한 때였고, 복잡한 의례(儀禮) 기사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는 같은 용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번역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판관(判官)'이란 관직명의 경우 문맥에 따라 'executive assistant(보좌관)'가 되기도 하고 'administrator(관리자)'로 표현해야 할 때도 있었다. 외국인 인명은 국적이 명나라·일본·여진 중 어디인지 일일이 파악한 뒤 발음을 따져 표기해야 했고, 원문에서 생략된 주어와 단수·복수 여부도 가려내야 했다. 한마디로 '연구 반 번역 반'인 셈이었다.

백은석씨는 "조선왕조가 결코 간단한 나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외국인들이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수한 인재 선발 제도와 법률·행정 시스템이 존재했고, 중국과 맺은 조공·책봉 관계를 조선이 주도적으로 활용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김범 연구관은 "15세기 초에 이렇게 국가 행정을 상세히 기록한 자료가 존재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시대가 뒤로 갈수록 '철학 군주 세종'의 진면목이 더욱 드러나리라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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