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는 사법정의의 출발점
[경향신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사필귀정이다.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도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나타났듯이 국정농단의 ‘몸통’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는 불가피하다. 일부 친박 세력은 불구속을 주장했지만, 14개의 중대 범죄 혐의를 받고 있으면서도 반성은커녕 수사 방해와 증거인멸에 골몰하는 피의자에게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자비를 베풀 수는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중형을 면하기 어렵다. 최순실씨와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고 수백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현대차 등 재벌로부터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으로 774억원을 강제로 모금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 최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탄압했다. 최씨 딸 정유라씨를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의 사직을 강요하고, 포스코나 KT 등에 압력을 넣어 사익을 챙겼다. 삼성 외 SK·롯데·CJ 총수들과도 사면 등을 대가로 검은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은 지금껏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6초간 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고 한 29자 발언이 전부였다.
검찰의 영장 청구는 안타깝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막강한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케 하거나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였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동안 다수의 증거가 수집됐지만 대부분의 범죄 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등 향후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상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이 2년여 전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다면 지금과 같은 불행한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박 전 대통령 영장 청구를 계기로 검찰은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오명을 벗고 시민의 신뢰를 받는 공권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무엇보다 국정농단을 비호하고 검찰을 사유화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검찰 내 ‘우병우 라인’에 대한 엄정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
공은 이제 법원으로 넘어갔다. 영장을 심사하는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나 특정 세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기 바란다. 참담하고 착잡하지만 전대미문의 이번 사태가 정의를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의 뿌리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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