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현장] "공사 차질" "어장 초토화"..해법 못 찾는 남해안 모래전쟁

박찬준 2017. 3. 27.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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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 못 찾는 남해안 바닷모래 채취 연장 갈등.. "산란기 고등어 일본쪽 회유" "동남권 건설공사 차질 우려"
남해안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바닷모래 채취를 둘러싸고 수산업계와 정부, 건설업계 간 갈등이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08년 경남 통영시 욕지도 동남쪽 70㎞ 일대 EEZ에서 2010년까지 부산신항만을 건설하는 국책사업용으로 바닷모래 3520만㎥ 채취를 허가했다가 2012년 12월까지로 기간을 연장했다. 이 계획은 다시 변경을 거듭하면서 애초 국책사업용에서 민간용으로 확대됐고, 기간도 2017년 2월까지 연장되면서 6055만㎥(누적량)가 채취됐다. 게다가 국토교통부는 바닷모래 채취를 2020년 8월까지로 다섯 번째 연장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채취량(누적량)은 1억827만7000㎥에 달하게 된다. 이에 그동안 쌓였던 어민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해상과 육상에서 전국적인 대규모 집단시위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해수부·국토부, 바닷모래 채취에 엇갈린 입장

해양수산부는 내년부터 EEZ 바닷모래 채취를 국책용으로 한정한다고 지난 20일 발표했다.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바닷모래 채취가 불가피할 경우 차기 해역 이용 협의 시부터는 바닷모래 사용을 국책용으로 한정하고 채취 물량도 일본 등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최소한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책은 앞서 지난달 말 정부가 당장 급한 골재난을 해소하고자 올해 3월부터 내년 2월 말까지 남해 바닷모래 650만㎥를 추가로 채취할 수 있게 허가하면서 어민들이 강하게 반발한 데다 국회에서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미 확정된 모래 채취기간이 끝난 뒤부터 시행돼 남해 EEZ는 내년 3월부터, 서해 EEZ는 2019년 1월1일부터 적용된다.


바닷모래 채취허가권을 가진 국토부는 해수부 발표에 난감한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EEZ 모래를 국책용으로만 쓴다는 내용은 우리와 명확하게 협의된 사안이 아니고, 육상 골재 등으로 바닷모래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며 “올해 채취 물량과 관련해 해수부와 계속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650만㎥의 남해 EEZ 모래 채취 물량이 이달 초 고시됐지만 해수부가 까다로운 채취 조건을 내세워 수자원공사는 아직 채취업자 모집 공고도 내지 못하고 있다.

◆어류 산란장 파괴… 수산업계 총궐기

‘남해EEZ바닷모래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전국 수협은 지난 15일 어선 4만척과 어민 10여만명이 참가한 총궐기대회를 전국 연안과 황·포구 등지에서 동시에 전개했다. 국립해양조사원이 지난해 남해안 EEZ 골재채취단지 내 3-8광구의 해저지형을 조사한 결과 바닷모래 채취 시 깊이 5 이내에서 균등하게 채취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대부분 10 이상의 깊은 웅덩이가 형성돼 어장 환경이 훼손돼 어업이 불가능해졌다. 어민들은 “남해안 EEZ 해역의 골재 채취 웅덩이 크기가 폭 1.5∼1.9㎞나 되는 등 어류 산란장인 모래밭이 완전히 사라진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바다 생태계 파괴 대책은 뒷전으로 미룬 채 골재 단가 급등을 걱정하는 골재업계와 건설업계 편들기에 급급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15일 부산항 남항에서 어선 수백척이 ‘바닷모래 채취 결사반대’, ‘그만 파라, 수산물 계속 먹고 싶다’ 등이 적힌 현수막을 뱃전에 내걸고 해상시위를 벌이기 위해 남해 EEZ로 출항하고 있다.
수협중앙회 제공

정연송(57·대형기선저인망수협조합장) 대책위원장은 “욕지도 앞바다의 산란장 파괴로 최근 산란기 고등어가 회유로를 변경해 일본 쪽 EEZ로 이동하면서 어장 손실이 현실화했다”며 “이는 일본 선망의 한국 EEZ 내 어획량이 2008년도 대비 10% 이하로 대폭 줄었다는 국립해양조사원의 연구 결과에서 확인된 만큼 바닷모래 채취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바닷모래 채취 허가연장 전반에 대한 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할 방침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국토부가 애초 국책사업용으로만 쓰기로 했던 바닷모래를 2010년 8월 민수용으로 공급하기로 결정한 직후인 그해 12월 국토부 출신 인사가 골재협회 상임부회장으로 취임해 그 배경에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책용 한정에 건설업계도 불만

건설업계는 해수부의 바닷모래 국책용 한정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올해 정부가 남해 EEZ 모래 추가 채취 물량을 축소하면서 가뜩이나 물량 부족이 심화하고 있는데, 앞으로 민간사업에 남해 모래를 사용하지 못하면 공사 중단 사태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올해 추가 채취가 허가된 모래 물량이 650만㎥로 지난해 채취량(1167만㎥)의 55% 수준”이며 “최근 동남권에서 늘어난 건설물량을 감안할 때 이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내년부터 남해 바닷모래를 국책사업에만 쓰겠다면 민간건설에 필요한 모래는 서해 등 다른 지역에서 조달하거나 산림 골재를 써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골재난이 심각해지면서 동남권 지역 건설공사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바닷모래 채취가 산란장을 훼손하고 어장을 파괴한다는 어민들의 주장은 명확한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발표한 2016년 연근해어업 생산량 동향보고서에서 수산자원 감소의 원인을 어린 물고기 남획, 중국어선 불법조업 등을 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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