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베니스의 상인>에서 본 똘레랑스

조우성 입력 2017. 3. 2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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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은 유쾌한 이야기 속에 '계약의 한계'에 관한 본질적 질문을 품고 있다.

안토니오는 자신의 친구인 바사니오의 청혼비용을 마련해 주기 위해 평소 수전노라고 멸시하던 고리대금업자인 유태인 샤일록으로부터 돈을 빌린다.

하지만 안토니오의 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했다는 암울한 소식이 전해졌고, 결국 안토니오는 약속된 돈 갚는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

이 조항에 비춰볼 때,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계약은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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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유쾌한 이야기 속에 ‘계약의 한계’에 관한 본질적 질문을 품고 있다.

안토니오는 자신의 친구인 바사니오의 청혼비용을 마련해 주기 위해 평소 수전노라고 멸시하던 고리대금업자인 유태인 샤일록으로부터 돈을 빌린다. 샤일록은 자신을 인간취급 하지 않던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기괴한 페널티 조항을 넣는다. 돈을 못 갚으면 너의 가슴살 1파운드를 갖겠노라고. 부자인 안토니오는 ‘내가 돈을 못 갚는다고?’라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안토니오의 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했다는 암울한 소식이 전해졌고, 결국 안토니오는 약속된 돈 갚는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 채권자 샤일록은 차용증에 근거해서 안토니에게 소송을 제기한다. 살 1파운드를 내놓으라고.

자기 때문에 친구 안토니오가 곤경에 빠진 것을 알게 된 친구 바사니오는 법정에서 사정한다.

원금의 3배, 아니 10배라도 주겠노라고. 하지만 채권자 샤일록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당초 약속대로 이행되도록 법이 힘을 실어주기를 원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이 사회의 정의 아닙니까!”라고 강조하면서. 그리고는 칼을 집어든다.

Pacta sund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법학개론을 수강했던 사람이라면 이 유명한 라틴어 법언(法諺)을 들어봤으리라. 약속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법질서의 가장 기본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서로 ‘약속’을 했을 때는 그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믿음이 상식이다. 계약의 구속력은 이 상식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믿음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어찌 이 사회가 제대로 굴러 가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샤일록은 안토니오가 약속한 대로 살 1파운드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이 법적으로 정당화될까?

계약의 효력을 다루는 법이 민법이다. 우리 민법에는 제왕적(帝王的) 조항, 즉 다른 조항의 효력을 뛰어넘는 조항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민법 제103조다.

민법 103조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당사자간의 약속이라 하더라도 그 약속이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한 것이라면 이를 무효화하겠다는 점을 선언하고 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약속’은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이 조항에 비춰볼 때,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계약은 무효다. 따라서 국가가 이러한 계약을 강제화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셰익스피어의 희곡 내용으로 돌아가 본다.

안토니오의 살을 베어 내기 위해 얼굴에 득의양양한 웃음을 띠고 접근하는 샤일록에게 안토니오의 변호사(사실은 바사니오의 약혼녀인 포샤가 변장한 것)가 소리친다.

“이 차용증에는 살 1파운드만 가진다고 되어 있지, 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소. 따라서 피는 단 1방울도 흘리게 해선 안 되오. 만약 피 1방울이라도 흘린다면 당신은 계약을 위반한 죄로 베니스 법에 따라 재산을 몰수당할 것이오.”

차용증의 내용을 확인한 재판장도 변호사의 주장에 동의한다. 당황한 샤일록. 그는 그때서야 차라리 원금의 3배라도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 재판장. 샤일록은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분한 얼굴로 재판을 끝내고 만다. 해피엔딩.

민법의 제왕적 조항인 제103조를 동원해서 차용증 자체를 무효화한 것보다는 훨씬 극적이고 인간적인 결론이다.

‘당신이 그렇게 한다고 했잖아? 그렇게 계약서에 쓰여 있잖아? 약속했으면 지켜야 하는거잖아?’라면서 상대방을 압박하는 냉혹한 ‘갑’.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똘레랑스가 스며들어 있는 것이 계약법의 근본취지임을 우리는 가끔 잊고 있다. 이를 잊거나 무시해 버린다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가슴살을 내줘야만 하는 약한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런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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