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사드용지 요구, 누가 거절할 수 있나"..'샌드백' 롯데

손일선,박은진 입력 2017. 3. 27. 17:45 수정 2017. 3.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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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면초가 롯데 (上) ◆

롯데그룹 창립 50주년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룹의 숙원사업이던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그랜드 오픈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야말로 겹경사다. 하지만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축하하는 목소리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유는 외부에 있다. 대한민국 최대 안보 현안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가 재계 5위인 롯데그룹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사드 용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은 전방위적인 보복을 벌이고 있고, 롯데그룹의 중국 사업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더 큰 문제는 국내에도 우군이 없다는 점이다. 국가 안보를 위해 사드 용지 제공이란 큰 결단을 내렸지만 정부는 손 놓고 있다.

# 지난 4일 중국 선양과 상하이에 위치한 롯데마트 매장 4곳에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소방법 위반에 따른 '1개월 영업정지' 통보였다. 사드 용지를 제공한 한국 기업 롯데를 향한 '정밀타격'형 보복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3주 뒤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중국 롯데마트 매장이 67곳으로 늘어나며 우후죽순 셔터를 내렸고, 격렬해지는 매장 앞 시위 등으로 10곳 이상이 자체적으로 휴점을 결정했다. 중국 내 매장의 90%가 사실상 문을 닫았다.

# 중국 롯데마트 4곳이 영업정지를 당한 날 광주에서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날 촛불집회 참석자 중 일부는 오후 8시께 롯데백화점 광주점까지 가두행진을 했다. 이들은 롯데백화점 정문 앞에서 "롯데는 사드 용지 제공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사드 배치 용지 제공 즉각 중단'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정치권에서는 롯데의 배임과 뇌물 제공 가능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롯데가 사드 후폭풍으로 중국과 한국에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우선 사드 배치에 민감한 중국 당국이 롯데를 십자가에 올려놓고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중국의 보복 행보 중 상당 부분이 사드 용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을 타깃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시설이 대표적인 예다.

중국에서 99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롯데마트는 대부분 매장이 문을 닫으면서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한 달간 문을 닫는다고 가정하면 연간 1000억원 이상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영업정지 한 달까지는 직원들에게 임금 100%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중국발 '롯데 때리기'는 최근 다른 계열사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롯데제과와 미국의 유명 초콜릿 회사 허시가 합작해 세운 중국 내 초콜릿 공장이 생산중단 명령을 받았다. 미국과의 합작사까지 '롯데'라는 간판 탓에 중국에서 보복을 당한 것이다. 롯데 식품 계열사들이 만든 제품이 다른 대형 유통매장 진열대에서 철수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또 선양에 건설 중인 중국판 롯데월드 사업 공사도 잠정 중단된 상태다. 3조원이 투자된 대규모 사업인 만큼 사업이 지체되면 롯데에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을 통해 롯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롯데 관련 사이트에 대한 중국 해커들의 무차별적인 공격도 진행되고 있다.

롯데를 직접 타깃으로 한 조치는 아니지만 중국 정부가 한국 관광을 전면 금지시킨 것도 롯데를 압박하고 있다. 롯데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관광·면세사업이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의 보복으로 고충을 겪고 있다고 해서 국내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한 영웅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전방위적 검찰 조사를 받은 데 이어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여전히 검찰 수사선상에 롯데그룹이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년 사이 9개월 가까이 출국금지 상태다. 사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할 기회조차 차단당한 것이다.

신 회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하면서 "지난 1월 중국 방문이 허용됐더라면 이런 긴장을 풀 수 있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사드 용지 제공과 관련해 롯데의 억울함보다는 정치적 이슈로서의 이용가치를 더 중시하는 모양새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롯데의 성주CC와 군이 소유한 경기 남양주 토지를 맞바꾸는 방식은 현금으로 골프장을 매입할 경우 국회의 예산 심의 의결 절차에 따른 통제를 피하려는 꼼수"라고 꼬집으며 롯데의 배임과 뇌물 제공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처럼 사면초가에 빠진 롯데그룹은 정부에 공식적인 SOS 요청을 했지만 모든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는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가 안보 정책에 협력한 롯데가 중국과 국내에서 샌드백 신세가 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은 정말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며 "정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중에 어떤 기업이 정부를 믿고 선뜻 정책에 협조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손일선 기자 /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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