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우상화

입력 2017. 3. 27. 17:35 수정 2017. 3. 2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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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은 인식 오류의 원인으로 '4개의 우상(偶像)'을 꼽았다.

인간의 입장에서만 자연을 보는 종족(種族)의 우상, 개인적인 편견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동굴(洞窟)의 우상, 다른 사람 말만 듣고 그럴 것이라고 지레 믿는 시장(市場)의 우상, 권위나 전통을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극장(劇場)의 우상이 그것이다.

우상숭배란 사람이나 사물을 신처럼 숭배하면서 '스스로 그렇게 믿는 것'이고, 우상화는 '어떤 대상을 그렇게 믿도록 세뇌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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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베이컨은 인식 오류의 원인으로 ‘4개의 우상(偶像)’을 꼽았다. 인간의 입장에서만 자연을 보는 종족(種族)의 우상, 개인적인 편견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동굴(洞窟)의 우상, 다른 사람 말만 듣고 그럴 것이라고 지레 믿는 시장(市場)의 우상, 권위나 전통을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극장(劇場)의 우상이 그것이다. 모두 다 눈을 멀게 하는 청맹(靑盲)의 덫이다.

우상숭배란 사람이나 사물을 신처럼 숭배하면서 ‘스스로 그렇게 믿는 것’이고, 우상화는 ‘어떤 대상을 그렇게 믿도록 세뇌시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일이다. 이에 반기를 들면 신성모독으로 처벌하니 더 고약하다. 북한은 다른 공산국가들조차 조롱거리로 삼을 만큼 심한 우상화 국가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이름을 굵은 볼드체로 쓰지 않으면 아오지로 끌려가는 세상이다. 올해는 백두산에 3대 부자 칭송비까지 세운다고 한다. 동상이 하도 많아서 ‘거대 동상 기술’을 수출할 정도다.

옛 소련의 레닌과 스탈린의 우상화도 심각했고, 공산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우상화 또한 악명이 높았다. 한때 ‘중앙아시아의 북한’으로 불린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초대 대통령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의 ‘창조 신화’까지 교과서에 실렸다. 황금으로 된 동상이 전국을 뒤덮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베트남의 호찌민 찬양과 반혁명 처형 사례도 널려 있다. 나중엔 사이공이라는 도시 이름마저 호찌민 시로 바뀌었다.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이 철없는 청소년들을 앞세워 ‘셀프 우상화’에 앞장섰다. 호칭도 ‘위대한 지도자이며 최고 군 사령관이며 위대한 선생님이며 위대한 조타수’ 등으로 부르게 했다. 북한의 3부자와 막상막하다. 중국 전역의 동상들은 개혁개방 이후 사라졌지만, 지금도 그때를 아쉬워하는 인민이 많은 걸 보면 ‘우상 세뇌’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만하다. 그런데 시진핑 집권 이후 우상화 움직임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중국 관영방송 CCTV는 최근 다큐멘터리에서 시진핑 주석이 16세 때 밀 100㎏을 메고 어깨도 바꾸지 않고 5㎞ 산길을 갔다는 일화 등을 전하고 있다.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사상’을 당장과 헌법에 넣고 1인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여론전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취임 전부터 “(하방 때) 비 내리고 바람 불면 동굴 속에서 풀 베고 누웠고 저녁엔 가축을 보러 갔다”고 자랑하던 그다. 시진핑 배지까지 등장했다. 어디서든 우상은 눈뜬장님을 낳고 그들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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