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감독을 '최장수 사령탑'으로 만든 인내

김태석 2017. 3. 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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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감독을 '최장수 사령탑'으로 만든 인내

(베스트 일레븐)

▲ 김태석의 축구 한잔

2014 브라질 월드컵 때 홍명보호가 무너졌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플랜 B의 부재였다. 사실 그땐 플랜 A를 세우는 것도 힘들었다. 브라질 월드컵 개막 1년 전에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당시 감독이 3년 사이에 조광래·최강희 감독을 거치면서 혼란에 빠졌던 A대표팀의 전술적 틀을 단기간에 세우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올림픽보다 몇 단계 더 어려운 무대라는 홍 감독 역시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그때 홍 감독이 그나마 던질 수 있었던 유일한 수는 바로 2012 런던 올림픽 세대를 중용하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의리 축구’ 논란으로 번지면서 팀이 외부에서 뒤흔들리는 결과를 낳았고, 정작 가동하고자 했던 플랜 A도 월드컵이라는 높은 벽에 막혀 제대로 가동조차 되지 못했다. 플랜 A를 제대로 만들 수 없는 처지였으니, 플랜 B를 떠올리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당시 한국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최소 1승을 올리던 월드컵 본선에서 1무 2패로 초라한 탈락을 맛봤고, ‘구원 투수’로 올랐던 홍 감독은 이전까지 쌓았던 자신의 명성에 엄청난 상처를 안은 채 물러나야 했다. 브라질 월드컵은 한국 축구사에서 지우고 싶은 순간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품었던 전략적 인내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후, 한국 축구계는 자성의 시간을 가졌다. 나름 큰 깨달음을 얻었다. 무분별하게 A대표팀 감독을 갈아치우다가는 예선은 돌파할 수 있을진 몰라도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깨달음이다. 많은 이들이 체코와 프랑스에 다섯 골이나 내주며 무너졌던 히딩크호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남겼던 기억을 떠올렸다. A대표팀이 강해지려면 국가대표 선수들을 포함한 축구계는 물론이며 언론·팬들까지도 힘을 모아 감독이 팀을 강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우여곡절 끝에 영입된 울리 슈틸리케 현 A대표팀 감독이 부임 초기부터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까지 전폭적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물론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 후 빠르게 대표팀 내 혼선을 수습하고 나름 박수받을 만한 결과를 내놓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2015 호주 AFC 아시안컵에서 27년 만에 대회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2015년 한 해 동안 호주 아시안컵 결승 호주전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무패 전적을 달림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적은 실점을 기록한 팀 중 하나로 만들었다.

당시 A대표팀이 워낙 잘 나갔기에 비판을 제기하기가 어려웠던 탓도 있다. 하지만 그 성취감에 취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대표팀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 출범 초기 파라과이·코스타리카·뉴질랜드·자메이카 등 몇몇 팀들을 제외한 대부분 상대가 아시아권 팀이었고, 그것도 월드컵 2차 예선이라는 무대의 수준상 아시아 중·하위권 팀들이 대다수였다는 점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요컨대 진짜 승부인 최종 예선에서는 한층 높아진 무대의 수준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하였다는 얘기다.

물론 만든 결과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긴 했다. 모르고 넘어갈 문제점도 있을 수 있으니 차근차근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에서 제기되긴 했다. 하지만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데, 주어진 자리에서 충실히 잘하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을 흔드는 불편한 참견으로 비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언론뿐만 아니라, 심지어 누리꾼들도 댓글 창에 감히 A대표팀과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비판성 글귀를 남기지 못했던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비판 자체가 터부시됐다.

당시 분위기가 잘못됐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단지 슈틸리케 감독만큼 임기 내에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감독은 없었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덕분에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2017년 3월 24일부로 한국 A대표팀 역대 사령탑 중 가장 긴 재임 기간(912일, 27일 현재 915일)을 기록한 지도자가 됐다. 외부의 비판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웠기에 가능했던 재임 기간이 아니었을까? 이런 점에서 볼 때 슈틸리케 감독은 역대 한국 A대표팀 사령탑 중 누구보다 행복한 지도자였다.

그렇다면 그 재임 기간만큼이나 슈틸리케 감독은 A대표팀에서 뭔가 성과를 만들어 내놓아야 했다. 4-2-3-1포메이션이든, 활동량이 뛰어난 타깃형 스트라이커를 놓고 득점력이 뛰어난 2선 공격수를 활용해 득점하는 부분 전술이든, 어떤 방법이든 아시아 최고 수준 무대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법한 무기를 만들어놓아야만 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경기 내용을 떠나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거칠게 표현하면, 그 시간에 도대체 뭐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 위기 상황에서 주변과 소통하는 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소리아 사건을 떠나, 이번 중국전에서 상대에 따른 전술적 대처를 묻는 말에 당신들이 말해보라는 식으로 대응한 것은 감독의 자질 문제마저 의심케 하는 사건이었다.

많은 이들이 지금의 슈틸리케 감독에게 실망하는 이유는, 그 어떤 감독보다 믿고 기다려주었다는 점 때문이다. 더 씁쓸하게 하는 대목은 그토록 인내하며 바라봤음에도 불구하고, 4년을 거치며 무려 세 번이나 감독을 바꿨던 지난 브라질 월드컵 때 드러났던 문제가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플랜 A가 안 먹히면 경기 자체가 망가지는 상황, 오락가락하는 선수 선발 원칙.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한 현실이 4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는 게 더 씁쓸하다. 이런 상황을 보려고 인내한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 대단하다고는 볼 수 없는 지도자 경력을 떠올리면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월드컵에 나서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일지 모른다. 그래서 한국을 이끌고 꼭 월드컵 본선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축구는 이보다 좋지 못한 선수들로도 언제나 아시아 예선을 돌파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던 팀이었다. 이렇게 동반 침몰하는 건 슈틸리케 감독은 물론 한국 축구에도 재앙 같은 일이다. 시리아전은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입때껏 보였던 실망스러운 모습에서 벗어나 승부사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꼭 그래야만 본인의 명예는 물론 한국 축구까지 살릴 수 있다.

■ <베스트 일레븐> 창간 47주년 특별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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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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