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박근혜 정부'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금준경 기자 2017. 3. 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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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활동가, “박근혜 정부, 권력기관 동원하는 가장 나쁜 방식으로 정보인권 침해”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이런 건 다뤄야 하지 않을까요.” “이해하는 데 도움 될 만한 자료 같이 보냅니다.” 잊을만하면 텔레그램이 울린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활동가다. 관련 자료가 10건이 넘을 때도 있다.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워 한 두번 읽어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장여경 활동가는 1998년 정보인권 시민단체인 진보네트워크센터를 만들고 ‘정보인권’분야에서 20년째 활동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실에서 장 활동가를 만났다. 그는 박근혜 정부를 “가장 나쁜 방식으로 정보인권을 침해했다”고 평가하면서 “정보인권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독립기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활동가는 최근 4차산업혁명을 슬로건으로 내건 대선주자들을 향해 “박근혜식 4차산업혁명이 돼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다양한 분야에서 박근혜 정부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정보인권 관점에서 이 정부는 어땠나.

“가장 나쁜 방식으로 정보인권을 침해했다. 국가기관의 감시권력 오남용을 가장 많이 했기 때문이다. 검찰, 경찰에 국정원까지 동원하지 않았나. 그 감시들은 모두 적법했나? 국정원 해킹프로그램 논란은 아직도 의혹이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이 이 프로그램을 국내에 들여와서 사용을 하는데 국회도 모르고 법원도 모르고 대한민국 아무도 몰랐다. 국정원이 또 다른 장비를 들여와도 우리는 모를 것이다.”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사진=금준경 기자.

- 카카오톡 사이버 사찰 논란도 뜨거웠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카카오톡 감청 문제에 굉장히 민감했다. 정부가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한 뒤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카톡 같은 메신저를 마음대로 열어봤다. 2015년 4월16일 세월호 집회에서 100여명이 연행됐는데, 60명 이상의 휴대전화가 압수수색 됐다. 집회 나간 게 무슨 대역죄라고 압수수색까지 하나.”

- 민간에서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국가권력이 저런 태도였는데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규제프리존법이나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논의가 대표적이다. 지금 기업은 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창조경제센터를 전국에 지어 이익을 보고, ‘규제프리존법’을 통해 지역별로 각 기업이 원하는 방식의 규제완화를 받으려고 했다. 우리는 기업이 피해자라고 보지 않고 뇌물을 받았다고 생각해 고발한 상태다.”

- 최근 여야 주자들이 4차산업혁명을 화두로 내세우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우려가 크다. ‘박근혜식 4차산업혁명’이라면 곤란하다. 박근혜식 빅데이터 정책을 돌아보자. 2016년 5월18일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개인정보 보호가 너무 강하다며 동의절차를 약화시키고, 활용도를 높이겠다고 발언했다. 빅데이터 산업을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활성화하겠다는 거다. 아직 구체적이지 않아 평가하기 힘들지만 대선주자들의 정책은 이것과는 달라야 한다. 국민의 정보인권을 담보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소비자, 이용자 권리 보호와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을 위험하게 만든다.”

- 대선주자들이 구체적인 4차산업혁명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경제 활성화’에 방점이 찍혀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 사례를 보면 4차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함께 나온다. 인공지능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빅데이터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민이다. 한국에서는? 돈을 버는 장밋빛 전망만 이야기 한다. 누가 집권할지 모르겠지만 새 정부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변화를 기대하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한다.”

- 한국의 빅데이터 산업 규제나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한 수준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한국의 개인정보보호가 강하다는 건 거짓말이다. 대조적인 사례로 개인정보보호법이 없는 미국이 거론되고 있지만 오바마 정부 이후 소비자 보호위반 법률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해 지난해 10월 연방통신법이 개정됐고,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옵트인’(사용자 동의를 구해야만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도입됐다. 이런 흐름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의 개인정보 판매가 어렵나? 쉬우니까 홈플러스가 1mm크기 글씨 약관으로 동의를 받아 개인정보를 팔고도 죄가 없다고 나왔다. 유럽은 이 같은 ‘형식적 동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사진=금준경 기자.

- 비식별화 조치를 하지 않으면 산업 활성화가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그게 박근혜식 빅데이터 개인정보 거래 활성화의 문제다. 일일이 개인정보주체의 동의를 받는 게 성가시니 간단한 가공으로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추정한다’는 비식별화 개념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비식별화는 안전한가? 2015년 하버드대가 ‘한국인 주민번호해체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며 한국 비식별화 정보를 풀었다. 4차산업혁명 시대는 인공지능이 더 쉽게 비식별화를 풀 수 있지 않겠나. 이거 안 하면 산업 못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내버스 노선을 짤 때 ‘익명화’(비식별화와 달리 개인정보가 드러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정보) 데이터를 활용했다.”

- 차기정부에서 정보인권 분야의 조직은 어떻게 개편돼야 할까.

“인권위가 독립기구여야 하는 데 다들 동의한다. 이처럼 대통령 직속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독립기구가 돼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면서 2011년 만들어졌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었나? 카드사 개인정보 대량유출사태가 벌어져도, 국정원이 민간인을 사찰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UN에서도 개인정보보호를 하고 국가기관의 검열을 감시할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간인 사찰이나 개인정보 유출사태가 벌어지면 개인정보위가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정보인권 적폐 청산을 위해서는 기구 독립이 필요하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검열도 비판해 왔는데, 이 조직은 어떻게 개편돼야 한다고 보나.

“통신심의를 폐지해야 한다. 이는 이미 UN과 국가인권위가 권고한 바 있다. 물론, 혐오발언에 대한 심의는 필요하다. 또, 요즘은 ‘가짜뉴스’라고 하는데, 실은 그 이전부터 국정원 댓글과 같은 ‘공론장의 훼손’문제가 심각했던 것도 사실이고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대처를 행정기구가 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행정기구에서 심의를 하는 나라도 거의 없다. 시민사회의 힘으로, 다양한 주체가 논의하는 심의가 필요하다. 당장 이룰 수는 없겠지만 논의를 시작해야 할 단계다.”

- 박근혜 정부 헌법재판소는 ‘정보인권’분야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나.

“헌재가 수사편의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안타깝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파업 수감자의 DNA를 채취해 국가가 데이터베이스화해 수사하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게 대표적이다. 현재 심판 중인 사건도 중대한 게 많다. ‘국정원 패킷감청’ ‘무분별한 통신자료 제공’ ‘실시간 위치추적’ ‘기지국수사’ 등이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가 무분별한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제도개선 결정을 내릴 당시 상당히 이례적으로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낸 인사가 이번에 지명된 이선애 재판관(이정미 재판관 후임) 후보자라서 걱정이 크다.”

- 현재 국회에서는 규제프리존법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차기정부 들어서도 가장 걱정이 되는 게 ‘규제프리존법’(지역별로 현행법상 규제를 종류별로 철폐하는 법, 강원도에 ‘비식별화 적용’등이 대표적)이다. 규제기관이나 국회 상임위를 우회한다는 점에서 교활한 법이다. 해당 분야 상임위인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가면 반대하는 의원들이 있는데, 이 법은 기획재정위원회 소관이기 때문에 반영되지 않는다. 기재위원들은 개인정보문제를 잘 모른다. ‘의료규제완화’도 이 법에 포함돼 있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해당 상임위와 관련 단체들이 사회적 토론을 할 수 있는데, 규제프리존법으로 묶여 사회적 토론을 봉쇄하고 있다.”

▲ 추혜선,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지난 2월1일 규제프리존특별법에 최순실 게이트가 연루됐다고 지적했다. 사진=추혜선 의원실 제공.

- 언론 공공성 부문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등 야권이 집권하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인권 분야에서는 여야의 정책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규제프리존법은 자유한국당 뿐 아니라 국민의당도 공동발의를 했고,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민주당은 자꾸 이 법을 협상 테이블에서 주고 받는 대상으로 보는 상황이라 불안하다. (지역경제발전이라는) 지역구 의원의 이해관계 같은 게 있겠지만, 거듭 강조하지만 산업을 위해 개인정보 규제를 완화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 규제는 한번 풀면 다시 만드는 ‘역진’도 불가능하다.”

- ‘이명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진보네트워크센터 상황은 어떻게 됐나.

“지금 후원회원이 700명이 좀 못 된다. 지난 10년은 시민단체가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물론, 어떤 단체들은 풍족한 시절을 보냈지만 양심적 단체들은 후원이 많이 줄었고 회원들도 위축이 된다. ‘공무원이 돼서 회원을 탈퇴해야 된다’거나 ‘내가 예전에 한 서명 지워달라’는 요청이 온다. 공포에 질린 세월이었던 것이다.”

- 끝으로 할 말이 있다면.

“언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테러방지법 국면, 규제프리존법 추진 때 온갖 신문에 동시다발적으로 ‘찬성’ 기고가 수십건씩 쏟아져 한쪽 의견만 도배가 되더라. 전문가나 기자들이 주류담론에 포섭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기자는 ‘비식별화 자료 보내준다’고 하니까 대뜸 ‘반대한다’며 거절하더라. 그 기자는 우리와 한번도 관련 이야기를 한 적 없다. 시장권력과 국가기관이 담론장을 물량공세를 통해 장악하는 시도가 있다고 본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목소리는 너무나 미약하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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