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X파일]은 누구를 위한 방송인가

아이즈 ize 글 서지연 2017. 3. 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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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서지연

채널A [먹거리 X파일] 258회 ‘대왕카스텔라 열풍의 두 얼굴!’ 편이 방송된 다음 날, 항상 긴 줄이 서 있던 버스 정류장 근처 대왕카스테라 매장은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 몇 블록 더 걸어가자 개업 화분이 놓인 또 다른 대왕카스테라 매장에는 ‘저희 매장은 방송에 나온 업체와 무관하며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12일 방송에서 [먹거리 X파일]은 시청자 제보 글, 어린아이를 키우는 주부를 비추며 ‘대왕카스테라의 기름기’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제작진은 세 곳의 매장에 잠입해 대왕카스테라가 만들어지는 공정을 취재하면서 이들이 신선하고 좋은 재료만을 사용한다는 홍보문구와는 달리 안 좋은 재료를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방송에 등장한 대왕카스테라는 액상 달걀과 화학첨가물, 그리고 다량의 식용유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제작진은 제과전문가 3인으로부터 “밀가루 양에 비해 많은 양의 기름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원가 절감을 위해 버터 대신 기름을 쓰는 것 같다”는 의견을 받았다. 이어 대왕카스테라와 7종의 관능검사를 하면서 조각을 떼서 기름종이에 문질러 기름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방송에서 제과장이 직접 카스테라를 만드는 모습은 [먹거리 X파일]이 주장하는 좋은 음식의 기준을 제시하는 듯했다. 오직 좋은 재료만으로도 카스테라를 만들 수 있었고, 그래서 식용유를 쓴 카스테라는 문제 있는 음식이 됐다. 그러나 방송 다음 날 서울대학교 식품비즈니스학과 문정훈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식용유는 빵을 만들 때 주로 쓰이는 유지 중 하나다. 풍미가 좋은 버터를 쓰면 좋겠지만, 그러면 가격이 맞지를 않고 탄력을 내기 어렵다”며 “제빵 시 식용유를 넣는 것은 부도덕하다라는 프레임으로 방송을 만들면 소비자들을 매우 오도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식용유를 사용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방송 직후 대왕카스테라 업체들이 홈페이지에 레시피 전문을 공개하며 ‘일부 업체의 경우’라는 것을 입증했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대신 전문가들이 대왕카스테라에 쓰이는 식용유의 양을 보고 놀라는 모습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리고 대왕카스테라 업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폐업을 하고 있다.

[먹거리 X파일]은 2012년 방송을 시작한 후 많은 업종의 식당들을 문제삼았다. 대왕카스테라나 지난 2014년 119회에 방송된 벌집 아이스크림처럼, 경우에 따라 한 업종 전체가 흔들릴 만큼 파급력도 엄청나다.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끼치는 식당을 고발하고, 양심적인 식당을 찾는 것이 공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먹거리 X파일]이 겨냥하는 식당은 대부분 규모가 작은 자영업장이나 관련 프랜차이즈다. 제작진은 MSG, 식용유 등을 쓰는 업체에 대해서 자주 비판하지만, 그것을 만드는 대기업을 문제삼는 일은 없었다. [먹거리 X파일]의 연출 자체가 상대적으로 소규모 식당을 파헤치기 좋은 형식이다. 문제 업소로 지적되는 곳은 급박한 음악과 함께 희뿌연 화면으로 등장하고, 영문을 알 리 없는 종업원은 모자이크 처리된 상태에서 실언을 내뱉는다. 대왕카스테라를 비롯해 반론의 여지가 많은 업체라 할지라도 이런 연출을 통해 이미 ‘악의 소굴’처럼 묘사된 후다. [먹거리 X파일]이 정말 ‘나쁜 식당’을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왕카스테라의 사례처럼 [먹거리 X파일]은 ‘나쁜 식당’ 하나를 찾는 사이 수많은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

무엇보다 [먹거리 X파일]이 ‘좋은 식당’과 ‘나쁜 식당’을 가리는 기준은 일반 시민이 먹는 먹거리의 기준을 왜곡한다. 대왕카스테라와 제과장의 카스테라는 종류부터 공정, 시간, 판매처, 가격은 물론 이를 구매하는 소비자까지 완벽히 다르다. 웬만한 기술자가 아니고서는 ‘좋은 재료’인 달걀과 밀가루, 유유만으로 카스테라를 만들 수는 없다. 이런 카스테라는 당연히 비싸고, 대량으로 만들기도 쉽지 않다.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되는 곳의 음식들은 자연식에 가까우며, 이런 식당들은 업주가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이윤보다 철학을 추구하지 않으면 운영하기 어렵다. 물론 그런 곳은 보기 드문 좋은 식당이다.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식당이 그런 음식을 내놓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나쁜 식당’일 수는 없다. 식용유를 많이 쓴다는 것 자체를 문제삼은 대왕카스테라 편은 [먹거리 X파일]의 문제가 더 심각해졌음을 보여준다.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 재료를, ‘기름’은 나쁘고 그것이 많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문제처럼 묘사한다. 여기에는 식용유를 사용하는 것이 합당한지, 식용유를 사용하지 않으면 가격은 일반 카스테라의 절반, 크기는 두 배가 넘는 대왕카스테라를 팔아서 이윤을 낼 수 있는지, 더 나아가서는 카스테라가 애초에 ‘건강빵’이나 ‘영양간식’이 아닌 단맛을 즐기기 위한 케이크라는 고려까지도 모두 빠져 있다.

대왕카스테라 편 방송 다음 날,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강력하게 사과를 요청했던 한 대왕카스테라 매장 사장은 “이제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매출이 90% 가까이 줄었고 빚만 남아서 결국 폐업을 결정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물은 엎질러졌고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음식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줄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30분 남짓의 방송으로도 개인의 생계를 앗아갈 만큼 영향력은 크다. 그렇다면, 지금 [먹거리 X파일]은 누구를 위한 방송이 된 것일까.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말로는, 지금 [먹거리 X파일]의 문제를 전부 말하기에 부족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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