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미래]⑥ 금융혁신 '산넘어 산'..정부 규제 많고 은행은 너무 보수적

김형민 기자 2017. 3.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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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사업을 하는 벤처기업의 A 대표는 2013년 창업하면서 겪은 황당한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한다. A 대표는 당시 창업 지원을 받기 위해 중소기업청을 찾았다. 중기청 관계자는 “금융업은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시행령에 따라 지원 업종에서 제외된다”는 답을 들었다. A 대표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금융업’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받기 위해 금융위원회를 찾았다.

중국 선전 텐센트 본사/블룸버그 제공

그러나 금융위는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하고 기획재정부로 판단을 넘겼다. 기획재정부는 판단을 한국은행으로 넘겼다. 한국은행은 다시 A 대표를 금융위로 돌려 보냈다. 결국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금융업이 아니다’는 금융위 유권해석을 받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중기청은 금융위의 유권해석을 받고도 A 대표에게 “통계청의 '한국표준산업분류(KISC)'에서 금융업이 아닌 분류를 받아 와야 한다”고 했다.

A 대표는 “통계청도 비트코인이 무슨 업종인지 몰라 수개월을 고민하다 결국 ‘기타 업종’으로 분류했다”며 “핀테크 기업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로 사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가 이런 기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금융서비스의 발전을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벽은 정부 규제다. 핀테크 업체는 물론 대형 금융사들도 신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도입하려다 정부 규제에 번번히 좌절한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활용한 금융혁신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모바일 시대에 금융산업 규제만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금융사의 혁신적 경영이 가능하게 하고 시대 변화에 맞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핀테크 활성화 위해 규제 확 풀어주는 중국

"금융규제를 완전히 개방하는 중국에 우린 이미 뒤처졌다"

핀테크 업계는 최근 중국을 부러워하고 있다. 금융관련 신기술 개발에 앞서 규제부터 걱정하는 우리와 다른 자유로운 환경에서, 중국 핀테크 업계는 거침없이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핀테크 관련 거래금액은 지난해 약 497조원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성장했다. 지난 5년간 중국 모바일 결제액 연평균 증가율은 201.6%다. 개인간 거래(P2P) 대출금액도 연평균 527.8% 증가해 5년간 약 250배 증가했다.

중국의 핀테크 산업 발전 움직임은 무서울 정도라는 것이 국내 핀테크 업계의 분석이다. 중국이 이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규제완화'를 꼽는다.

중국의 초기 핀테크 업무는 지급결제 서비스로 시작했고 최근에 들어 대출, 투자 중개, 개인자산관리, 보험 등 전통적인 금융업무로 침투하고 있다.

서봉교 동덕여대 교수는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온라인 지급결제서비스를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은행만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며 "중국 정부가 예외 규정을 통해 비금융사의 온라인 지급결제서비스를 허용하면서 핀테크 산업을 크게 육성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중국은 더 나아가 비금융사의 자기자본을 통해 소액대출회사 설립을 허용했다. 알리페이를 성공시킨 알리바바가 이 같은 중국 정부의 규제 완화로 금융서비스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펀드법'을 개정했다. 펀드법 개정으로 비금융회사가 자산운용사를 소유하고 자신의 플랫폼을 통해 자산운용 금융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국내 금융산업과 비교해 보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조선일보DB

국내는 아직 출범조차 하지 못한 인터넷전문은행을 중국은 지난 2014년에 시작했다. 텐센트가 그 주인공이다. 텐센트는 SNS관련 IT기업으로, 2014년 12월 위뱅크를 설립했고 모바일 소액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2015년 6월 설립된 알라바바의 마이뱅크는 출범 1년만에 누적 대출금 8조2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급성장 추세에 있다.

◆ 인터넷 전문은행 4월 출범…은산분리 벽에 막혀 반쪽짜리 전락

국내는 지난 2015년 11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허용했다. 이중 케이뱅크는 다음달 정식출범을 앞두고 있고 카카오뱅크 역시 상반기 안에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반쪽짜리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법 16조 2항은 '비금융주력자의 은행주식보유제한 규정'을 담고 있다. 해당 규제는 비금융주력자가 전체 은행 의결권 주식의 4%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비금융회사의 증자나 투자 등이 제한돼 사업을 키울 수 없다.

금융위원회 주도로 비금융주력자도 금융관련 회사 주식 보유를 절반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국회 계류 중이며 실제 법안통과 가능성은 미지수다.

이밖에 핀테크 관련 자산운용업, 비금융회사의 대출업, 지급결제 서비스 등 핀테크 전 영역에서 규제에 둘러싸인 우리와 달리 중국은 대부분의 규제를 개방하거나 없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산분리를 완화하면 대기업이 은행을 사금고화한다는 우려는 자금이 모자라던 시절의 오래된 이야기”라며 “은산분리는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은행 ‘보신주의’에 “금융혁신은 먼나라 이야기”

핀테크 기업들 사이에는 “산을 넘으면 호랑이를 만난다”는 표현이 있다. 정부가 규제(산)를 풀어줘도 대형 은행(호랑이)들이 신기술 도입을 꺼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국내 은행의 보신주의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은행들의 보신주의는 단기 성과 위주의 영업 형태에서 비롯된다. 은행권은 연공서열 중심의 보상관리 체계로 생산성은 떨어지는 반면 다른 산업에 비해 고임금 구조만 고착화됐다. 또 주인이 없는 특수한 지배구조 때문에 CEO들은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단기 성과에 집착한다. 순이자 마진(NIM)이 줄어드는 등 위기 상황에 처한 은행들이 활로를 찾지 않고 기존 금융 영업 형태를 고수하는 이유다.

실제 자체 핀테크 연구센터를 운영하는 한 시중은행은 실적이 부진하자 최근 센터장을 경질했다. 현재 이 센터는 센터장 없이 운영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금융사들이 핀테크 업체와 공동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핵심 성과 지표(KPI)에 반영되니 형식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AI나 빅데이터 같은 신기술이 당장 실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 관심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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