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받다 말고 한참 통화.. 대기환자 마냥 기다리게 해

이슬비 기자 2017. 3. 2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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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스몸비' 1300만명] [5] 병원도 스마트폰 몸살
- 시민 40% "진료중 스마트폰 사용"
일부는 의료 사고 대비한다고 치료 전과정 동영상 촬영 극성
회복실에선 게임·카톡 삼매경.. "시끄럽다" 환자끼리 다툼 빈발
의사들도 진료하다 말고 통화
- 의사들 86% "진료방해 경험"
소비자연맹 등 4개 시민단체 '진료실 내 스마트폰 끄기' 운동

지난달 말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 치대 병원 진료실. 스마트폰 벨 소리가 울리자 충치를 치료받느라 치아 본을 뜨던 50대 환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통화하기 시작했다. 레지던트 김모(29)씨가 "본뜨는데 침이 들어가면 안 되니 통화는 나중에 하시라"고 했지만 이 환자는 "급한 전화니까 잠깐이면 된다"며 10분 넘게 통화했다.

치아 본은 말랑말랑한 젤 형태의 성분을 바른 뒤 이를 굳게 해서 만드는데, 중간에 침이 많이 들어가면 본뜨기 작업이 소용없게 된다. 통화가 길어지는 바람에 김씨는 처음부터 본을 다시 떠야 했다. 김씨는 "대기 환자가 8명이나 됐는데 환자의 통화 때문에 다음 진료가 줄줄이 밀렸다"며 "이런 환자가 일주일에 2~3명씩은 있다"고 했다.

스마트폰에 빠져 남을 배려하지 않는 스몸비(스마트폰+좀비) 때문에 의료진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진료 중에 스마트폰으로 통화·문자를 주고받기는 예사이고, 게임에 정신이 팔려 치료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자 서울대 치대 병원은 2년 전부터 진료실 앞에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해주세요'라는 쪽지를 붙였다.

본지와 한국소비자원이 시민 10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꼴인 397명(39.7%)이 진료 중 스마트폰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진료 중 스마트폰을 쓰는 이유는 문자 메시지 전송(60.5%)이 가장 많았고 이어 전화(23.9%), 사진이나 동영상(2.5%), 녹음(2.5%) 등 순이었다. 의사들이 보는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의사 1093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환자가 스마트폰을 써서 진료에 방해된 적이 있다'는 응답이 85.6%(935명)에 달했다.

혹시 모를 의료 소송에 대비해 진료·치료 과정을 모두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는 환자도 늘고 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정형외과 전문의 박모(51)씨는 올해 초 발가락 괴사로 입원한 당뇨 환자 홍모(72)씨를 치료하다가 보호자와 승강이를 벌였다. 홍씨의 딸이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설명해달라'며 스마트폰을 들이댔기 때문이다. 박씨는 "기록을 남기려는 환자 심리는 이해하지만, 의사도 초상권이 있는데 최소한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인천의 한 요양병원 한의사 김모(30)씨는 요즘 환자들에게 "스마트폰 보면서 침을 맞으면 몸이 충분히 이완되지 않아서 더 아프고 효과도 떨어진다"고 주의를 준다. 환자가 한 시간가량 침을 맞으면서 카톡이나 게임을 하느라 꽂아 놓은 침이 빠지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침을 맞고 누워 있는 회복실에서 스마트폰 게임 소리와 카톡 소리 때문에 환자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진료실 내 스몸비는 환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의료진의 스마트폰 사용으로 불편을 겪었다는 환자도 꽤 있다. 임신부 구모(28)씨는 지난 1월 경기 성남시의 한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다가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 의사가 구씨 옷을 벗기고 진료하다가 통화한다며 5분 넘게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는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실습에 참가한 인하대병원 교수 등 5명이 해부용 시신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가 과태료 50만원 처분을 받았다. 2014년 말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는 의료진이 수술 도중 생일 파티를 하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논란을 빚었다.

스마트폰을 둘러싼 진료실 갈등이 늘어나자 대한의사협회(의협)와 한국소비자연맹·한국환자단체연합회·녹색건강연대·건강세상네트워크 등 네 시민단체는 지난 13일 간담회를 열고 '진료실 내 스마트폰 끄기' 등을 포함한 진료 문화 개선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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