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정부가 '부산 소녀상'이전 요구할 명분은 있나?

나신하 2017. 3. 2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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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규 주일 한국대사가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 이행을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그것도 한국의 차기 정권을 지목하면서. 주재국이 아닌 본국의 차기 정권을 겨냥해 특정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다. 부산 소녀상은 이전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일본대사가 소녀상에 반발해 귀임하지 않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일본이 아닌 한국을 향해 일갈하는 주일 한국대사]


3월 25일자 아사히 신문은 1면과 4면에 걸쳐 이준규 대사와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 제목은 '한일 합의는 차기 정권도 준수를', '소녀상 이전이 바람직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대통령이 돼도 합의를 지키는 것이 올바른 길'이며, '부산 총영사관 앞의 소녀상은 국제적 예양과 관습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이전이 바람직 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관계자의 동의 없는 이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앞서, 3월 19일 도쿄신문 기사에도 비슷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신문에 따르면, 이 대사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어떤 정권이 등장하더라도 합의를 확실이 지키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했다. 또 '부산 소녀상 설치로 한일 관계가 어려워져서 유감'이라고 언급했다.

부산 소녀상은 고위 관료가 앞장서서 이전의 필요성을 말할 만한 사안일까?

[합의 이행 요구의 허상...소녀상 이전은 의무가 아니다 ]

2015년 12월 당시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정부 사이의 위안부 합의는 '합의의 대표성', '합의 내용의 적절성', '합의 이행의 실효성' 등으로 끊임 없이 재협상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져 있던 소녀상은 '위안부 합의'의 근본적 한계를 끊임없이 일깨웠다. 일본 정부는 '돈을 줬으니, 소녀상 이전하라'는 식으로 합의 이행을 내세웠다. 한국 정부는 소녀상 이전은 '돈'과는 무관하며 합의 내용도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일본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그 이후 세워진 부산 소녀상까지 합의 이행을 내세우며 이전을 요구하는 모양새이다.

일본 측의 집요한 언론 플레이 탓이었을가? 한국 측의 소극적 대응 탓이었을까? 어느새 '합의 이행 = 소녀상 이전'이라는 공식으로까지 확산됐다. 과연 그럴까? 재협상의 필요성 여부와는 별개로, 소녀상 이전이 합의 이행의 핵심 조건인지부터 짚어보자.

[정부 발표대로라면...소녀상 이전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합의사항과 관련해 소녀상 관련 부분은 한국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 포함돼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

입장에 따라 해석이 충돌한다면, 원문 그대로를 준용하면 된다. 일본 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의입장을 신뢰한다면, 소녀상 이전약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점은 정부가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면 합의도 없다고 했다. 외교적 수사로서 '이전'이 아닌 '해결'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인정해도, 한국 정부의 약속은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이전 약속'이 아닌 '해결 노력'일 뿐이다. 서울 소녀상에 한정해 정부 관계자가 '이전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히는 것은 '노력'의 범주에 포함될 뿐이다. (주목할 점은 '부산 소녀상' 관련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어떠한가?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일본 기시다 외무상이 대신 읽은 아베 수상의 입장이다. 아베 수상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의 자격임을 명시했다. 그 이후, 아베 수상과 각료들의 언행은 사죄나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사죄한 내용과 상반되는 발언을 일삼는 것은 합의를 부정한 것 아닌가? 일본 교과서의 검정 내용만 봐도 도대체 과거사를 사과한 것이 맞나 싶다.

현 시점에서, 합의 이행 촉구의 주된 대상은 차기 정부가 아니라 일본 정부여야 하는 것 아닌가?

차기 정부의 외교 정책 방향은 차기 정부가 출범 한 뒤 공식 입장을 밝히는 단계에서 해도 늦지 않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자유무역협정처럼 국회 비준을 거치지 않은, 정권 차원의 합의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면 합의 없다면...부산의 소녀상은 오히려 장려할 일 아닌가]

그럼, 소녀상 이전 요구는 정부의 위안부 합의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외교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관련 문답' 내용을 보자.



문) 소녀상 이전을 조건으로 10억엔을 받기로 하였다는 것이 사실인지?
답)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을 일괄 출연하기로 한 것은...(중략)...소녀상 이전 문제와는 무관합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소녀상을 이전하기로 합의하였거나, 소녀상 이전을 조건으로 10억엔을 받기로 하였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도...(중략)...발표한 내용 이외에 별도의 합의는 없었다는 점, 즉 소녀상 이전에 합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분명히 하였습니다.

정부의 발표를 신뢰한다면, 돈을 줬으니 소녀상을 옮기라는 일본측 주장은 부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합의내용에 존재하는 소녀상은 부산의 소녀상이 아니다.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이다. 당연하다.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은 위안부 합의 1년 뒤에 세워졌다. 과연 '합의의 정신에 따르면, 어떠한 곳에도 새로운 소녀상을 세워서는 안된다'라고 해석해도 될까?

외교부 홈페이지의 문답 코너에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에 그 해답의 실마리가 있다.


문) 향후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인지?
답)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하기로 한 것은...(중략)...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전제로, 정부 차원에 국한하여 이루어진 약속입니다. 정부는 전시 성폭력 등 보편적 가치로서 여성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에는 앞으로도 계속 적극 참여할 것입니다....(중략)...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도 금번 합의와 무관하게 지속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즉, 위안부 합의는 정부 차원의 합의일 뿐이라고 정부 스스로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는 노력도 지속하겠다고 했다.

민간 단체가 부산에 소녀상을 세운 행위는 진실을 알리는 행위인가? 아닌가? 최소한 정부가 앞장서서 이전을 요구할 명분은 없는 일 아닌가?

나신하기자 (danie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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