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짜리 집 구하는 데 영혼까지 다 털렸다

2017. 3. 26. 14: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토요판]이런, 홀로!?
집 구하다 열받은 썰

[한겨레]

부동산 실장이 보여준 수많은 집들은 모두 사람이 머물고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는,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없는 곳이었다. 돈을 받기 위해 마구잡이로 지어놓은 ‘사방이 가려진 좁은 공간’일 뿐이었다. 채광과 깔끔한 화장실. 이 두 조건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집은 사치였다. 게티이미지뱅크

드디어 혜화를 떠나야 할 때가 됐다. 얼마 전 직장을 구했다. 구하고 보니 멀었다. 살고 있던 집은 인근 지역에서 유난히 저렴한 편이다. 그러나 긴 출퇴근 이동 시간, 그러면서 낭비하는 시간, 어마어마한 교통비, 누적되는 피로 때문에 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길어야 2년 단위로 계약하는 철새 처지는 언제든 떠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짐은 늘 최소로 꾸려놓는 게 습관이 됐다. 햇수로 10년 가까이 산 혜화를, 사랑해 마지않는 혜화를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8년 동안 혜화 주변의 원룸 월세는 생각보다 많이 올랐다. 관리비는 기가 막힐 정도로 뛰었다. 요즘은 월세 대신 관리비를 올리는 게 트렌드다. 월세는 세입자들에게 크게 다가오지만, 관리비 액수는 그보다 체감상 타격이 적다. 이사 갈 양평동의 원룸 보증금과 월세는 지금의 혜화와 비슷했다. 다만 보증금을 1천만원 이상 절대 받지 않는 혜화와 달리, 보증금 조절이 그나마 가능했다.

문제는 이제야 사회에 첫걸음을 뗀 20대의 내가 보증금 1천만원을 더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제는 부모도 가난하다는 사실. 부모로부터의 완벽한 독립을 위해 앞으로는 내가 월세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런 자식이 고작 얼마 되지도 않은 월급에서 그 큰 월세를 감당해야 한다고 하니 가난한 부모는 마음이 아프다. 가슴이 아픈 부모는 적금을 깨고 예금 통장의 돈을 모으고 어디선가 돈을 빌려 보증금 1천만원을 더 마련해줬다. 앞으로의 월세는 내가 내지만, 보증금을 갚기 전까진 완벽한 경제적 독립은 요원하다.

산 넘어 산…보증금은 마련했지만

어쨌든 보증금은 마련했으니 직방, 다방, 피터팬 같은 철새들 사이에서 유명한 부동산 직거래 앱과 사이트에 틈틈이 접속한다. 혜화와 다르게 대부분의 원룸들이 오피스텔처럼 정형화돼 있었다. 마치 똑같은 시공사에서 공사한 듯 틀에 찍어 만들어 놓은 듯 모두 비슷했다. 특정 매물을 쇼핑하듯 ‘찜하기’에 담아놓고 해당 매물을 가지고 있는 부동산에 연락을 했다. 그렇게 다섯 군데의 부동산을 만났다. 집을 보는 방식은 동일했다. 부동산에서 ‘실장’ 혹은 ‘과장’의 직함을 가진 사람과 한차에 타 인근 지역을 도는 식이었다. 내심 여성 중개사가 나오길 바랐고, 남성이라도 나오는 경우엔 잔뜩 긴장하기 일쑤였다. 둘이 한차에 타 있는 내내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고 한집에 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애인과 함께 올걸, 후회하다가도 애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자괴감만 남았다.

‘찜’하고 갔더니 허위매물 수두룩
“까다롭지 않다”며 보여준 방들은
반투명 화장실, 창문 5㎝ 앞 건물…
이게 사람 사는 곳인가 싶었다 관리비만 12만원 고시원 같은 방
건축물대장 보니 ‘진짜’ 고시원
업자는 높은 수수료를 요구했다
1년 뒤 이 짓을 또 해야 하나

좋은 집만 구한다면 이 정도의 불편함이야 감수할 만했다. 문제는 이런 중개 서비스에 올라온 많은 매물 중 대부분이 허위 매물이었다는 것이다. 허위 매물이란 중개업자들이 올려놓긴 했지만 이미 옛날 옛적에 나간 매물이거나 실제 사진이 아닌 다른 건물의 방, 다른 층의 방을 올려놓은 매물을 말한다. 다섯 군데의 부동산 모두 이런 식이었다. 찜해 놓은 매물 번호를 불러주면 그 방은 모두 “아깝게 얼마 전에” 나갔단다. 왜 사진이 다르냐 물으면 비슷한 구조라 올렸단다. 모바일 기술이 발전하면서 직방, 다방, 피터팬과 같은 서비스들은 상대적으로 정보와 지식에 취약한 세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오히려 세입자들을 낚기 쉬워졌다.

허위 매물에 낚였지만 이왕 먼 걸음 했으니 돌아보기로 했다. 실장이라고 소개한 한 중개 보조사는 나에게 제시한 금액 외에 어떤 조건의 방을 원하냐고 물었다. 채광, 너비, 깔끔하고 멀쩡한 화장실, 환기가 되는 화장실, 옵션, 층수, 치안, 방음, 역과 버스정류장과의 거리, 관리인 여부, 곰팡이 등등. 10년 가까이 세입자로 살아온 난 고민 없이 “채광 좋고 화장실이 손댈 수도 없을 정도만 아니면 된다”고 답했다. 실장은 별로 까다롭지 않으셔서 다행이라고 했다. 이후 실장이 내게 보여준 방들은 말 그대로 가관이었다. 모텔을 개조한 듯한 건물, 현관문을 열면 반대편 집의 현관문을 열 수 없는 좁은 복도, 반투명 벽으로 두른 화장실, 옷장이 현관에 있는 방, 창문을 여니 5㎝ 앞에 다른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 방, 공간이 비좁아 생뚱맞은 공간에 있는 냉장고, 햇빛 한줄기는커녕 습하고 음침한 방.

애초에 사람이 머물고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는,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없는 집이었다. 돈을 받기 위해 마구잡이로 지어놓은 ‘사방이 가려진 좁은 공간’일 뿐이었다. 채광과 깔끔한 화장실. 이 두 조건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집은 사치였다. 너무 어이가 없어 한번 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월세 가격대를 올려봤다. 5만원에서 10만원 정도를 올린 방도 비슷했다. 저 두 가지 조건을 멀쩡하게 충족할 수 있는 집은 여전히 없었다. 비슷비슷하게 절망적인 집을 5만원이나 더 주고 살 이유는 없었다.

결국 그나마 나머지 조건들을 그럭저럭 충족하는 실평수 3~4평 정도의 집을 계약하기로 마음먹었다. 2000(만원)에 35(만원). 그 집은 스무살 때 살았던 고시원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좁았다. 관리비도 12만원이나 한단다. 방을 둘러보며 ‘그래도 이 가격에 이만한 집이 어딨냐’고 생각했다. 이미 이 동네에 적응해버린 것이었다. 좁은 집을 더 좁게 하지만 적당한 옵션, 북동향이긴 해도 코앞에 건물은 없는 창문, 곰팡이가 조금 있긴 하지만 깔끔한 인테리어, 환기는 전혀 안 되고 좁아도 그럭저럭 깔끔한 화장실. 그런데 정말, 이만한 집이 없었다.

집을 구하는 큰 관문을 넘었더니 또다른 관문이 자리했다.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여러 장의 문서들을 보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용도, 근저당, 감정가 등. 살면서 배워본 적 없는 단어들이 눈앞에서 떠다녔다. 나름 주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전에서 내 지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근저당 9억원을 두고 실장은 이 정도 큰 건물에 이건 별거 아니라며 보통 다 이렇단다. 왜 학교는 나에게 단 한번도 이런 과정과 지식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건축물대장을 찬찬히 살펴보니 이 건물의 용도가 또 고시원이다. 고시원은 방 안에 화장실과 부엌 시설이 없어야 한다. 임대인들은 세입자를 여러명 확보할 수 있고,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주차장 면적이 주택보다 작기 때문에 용도를 불법으로 변경한다. 독서실, 고시원 같은 ‘근린생활시설’로 변경한 뒤 실제론 원룸 세입자를 받는다. 세입자는 최악의 경우 쫓겨나거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잠시 계약을 망설였지만 알고 보니 이 지역 대부분의 원룸이 고시원을 포함한 근린생활시설로 등록돼 있단다. 며칠 동안 둘러봤던 방들이 떠오르며 그중 몇 개나 불법 용도 변경일까 생각하니 물러날 데가 없다. 그래도 확정일자를 받아두면, 최악의 경우에도 내가 낸 보증금 액수는 우선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범위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제야 산을 다 넘은 줄 알았더니 불법 용도 변경은 또다른 시련을 안겨주었다. 바로 실장과의 갈등이었다. 일반 주택이나 오피스텔의 경우 중개수수료를 거래 금액의 0.4%까지 받을 수 있지만, 고시원과 같은 근린생활시설은 주택 외 건물에 해당되어 수수료가 최대 0.9%까지 올라간다. 20만원대여야 할 중개수수료 상한가가 50만원에 달했다. 서울시 소속 임대차 관련 부서에 문의를 넣었다. 관련 공무원은 상한요율이므로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협의가 결렬될 경우 부동산 쪽에서 소액재판을 청구할 수 있단다. 다만 실제 용도가 원룸이라면 0.9%에 준하는 판결이 내려질 경우는 거의 없고 주택 요율의 금액이 청구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내 얼굴은 이미 소액재판이란 단어를 들을 때부터 굳어 있었다.

“상한요율이니 협의할 수 있지 않냐” “주택만큼 바라지도 않으니 0.6% 정도로 협의하자”고 했지만 실장은 자기 수당이 깎인다며 봐달라고, 나에게 양보해달라고 했다. 나는 양보의 정의를 다시 곱씹어 보았다. 생계를 들고나오니 어쩔 도리가 없다. 밀고 당기기를 하다 결국 0.75% 정도로 반강제 협의를 봤다. 나는 협의의 정의도 다시 곱씹어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불법 용도 변경으로 건물을 신고하고 싶지만, 용도에 맞게 다시 개조하는 동안 그 건물에 거주하고 있는 수십 가구의 나 같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앉게 되면 어쩌나 싶어 그럴 수도 없다.

계약기간은 ‘겨우’ 1년

그리하여 곧 이사를 하게 됐다. 아직 관문은 남았다. 들어간 뒤부터는 인테리어며 가구 구조며 기를 쓰고 조금이라도 방이 넓어 보이도록 하기 위해 궁리해야 한다. 밖에서 창문을 열지 못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보조키도 설치해야 한다. 도어록 번호를 바꾸고 혹시나 집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없는지도 훑어야 한다. 매달 납득할 수 없는 관리비를 내며 배가 아프겠지. 집 안에 무언가가 고장날 때마다 부대낀 마음으로 관리인에게 연락을 해야 된다. 배달을 시켜 먹을 때마다 남자 신발을 내놓고 집에 누군가 함께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어쩌면 매일매일이 관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년이라는 계약 기간 뒤 집주인이 터무니없이 보증금과 월세를 올리진 않을까, 그래서 1년 뒤 이 짓을 또 해야 되는 그런 최악의 관문이 남은 건 아닐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혜화붙박이장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페이스북][카카오톡][정치BA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