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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추적>돌아온 '원더우먼', 왜 '겨털' 논란을 겪고 있을까

문현웅 기자 2017. 3. 2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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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인기 드라마였고, 오는 6월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할 예정인 ‘원더우먼’ 주인공 원더우먼(갤 가돗 분)이 ‘겨털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들은 “영화 ‘원더 우먼’의 예고편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 원더 우먼의 겨드랑이나 다리 등이 너무 매끈하다는 논란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영화 설정 상 아마존 여전사 출신인 원더우먼이 깨끗이 제모한 게 이상하다” “여성에게 제모를 강요하는 미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세상 모든 여성에게 제모를 강요하는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다.

/인터넷 캡쳐

일단 원작 설정은 나름 충실히 따랐다

그들 지적대로 만화 설정 상 원더우먼은 아마존 여전사 출신이 맞다. 다만 순수 원주민은 아니다. 사실 애초에 사람도 아니다.

2011년 발표된 DC 코믹스 세계관에 따르면, 원더우먼은 아마존 여왕 히폴리타가 제우스와 하룻밤 동침해 태어난 아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제우스 맞다. 즉, 원더우먼이 나고 자란 곳은 아마존이지만, 태생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인 것이다.

‘털: 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다니엘라 마이어, 클라우스 마이어)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들 몸에 털이 없다고 믿었다 한다. 그리스 신화는 이집트 신화 영향을 꽤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그리스에서도 신의 몸엔 털이 없었다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 신화 내에서 직접적인 언급을 한 적은 없는듯해 확신까진 어렵지만. 하여튼 그렇다면 부계 혈통 영향으로 원더우먼 역시 애당초 털이 없었을 수도 있다.

또한 부계 혈통 문제를 떠나, 원작 만화에 첫 등장할 때부터 원더우먼 몸엔 체모랄게 없었다.

원더우먼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7월 ‘올 스타 코믹스’ 8호에서 데뷔했다. 그 시절 모습을 보자.

1941년 12월 발매된 '올 스타 코믹스' 8호./인터넷 캡쳐

이미 이때부터 체모 묘사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70년간 개근한 히로인(heroine·여성 주인공)이니만큼 그간 만화뿐 아니라 영화, TV 시리즈 등 다양한 매체에 등장했지만, 체모가 묘사됐던 적은 딱히 없었다. 일부 작품에서 체모가 묘사됐다는 말도 있었지만 확인해 보니 그렇진 않은 듯하다. 사실 서양에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모가 일반적인 사회 풍습으로 정착했다. 이 여배우 역시 제모를 했지만, 완전치 않았거나 제모 후 시간이 좀 흐르는 바람에 오해가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1976~1979년 방영된 TV 시리즈 '원더우먼'에 등장하는 원더우먼(린다 카터 분)./인터넷 캡쳐

70년 넘게 체모가 없던 캐릭터에 갑자기 겨드랑이털이나 다리털을 덧입히는 것도 적잖이 어색한 광경일 게다. 기존 설정에 충실히 따른다면, 이번 영화에서도 체모가 없는 모습으로 나오는 게 옳긴 하다.

하지만 그 원작 설정 자체가 문제일 수도

물론 원작 재현 여부를 떠나 ‘상업적 흥행 목적으로 남성 취향에 종속시킨 여성성’ 측면에서 비판받을 여지는 남아 있다. 제모에 이의를 제기한 페미니스트 진영이 지적하듯, 원더우먼의 외양은 애당초 철저히 서구 남성들 보기에 흡족한 방향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원 캐릭터 설정이 그렇게 돼 있는데 별수 있겠나 싶겠지만, 가상 캐릭터 설정은 영원불변한 게 아니다. 대표적 사례로 게임 ‘툼레이더 시리즈’ 여주인공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를 들 수 있겠다.

게임 '툼 레이더 시리즈'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 변천사./인터넷 캡쳐

첫 탄생 당시, 라라는 아름다운 얼굴과 비현실적일 정도로 굴곡진 몸매를 지닌, 남성 게이머 취향을 노린 캐릭터였다. 하지만 막상 게임이 출시되자 여성, 특히 페미니스트 진영이 남성 못지않게 라라에 열광했다. 남성 도움 없이 자신의 힘과 지능만으로 역경을 극복하는 라라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지금 보면 이게 별거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90년대 중반엔 남자 없이 뭘 해내는 가상 여성 캐릭터가 극히 드물었다. 당시엔 상당한 파격이었다.

여성 팬들은 라라를 현실 여성 모습에 가깝도록 고쳐주길 요구했다. 이들은 라라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의 상징이지, 남자들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주장했다.

여성 팬이 늘자 제작진도 이들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노출은 어느 정도 유지했지만, 몸매를 비교적 현실적인 수준으로 고쳐나갔다. 무덤 바닥을 구르고 숲을 들쑤시고 다녀도 늘상 허옇던 피부도 야생의 모험가에 걸맞게 거칠고 탄탄한 질감으로 바꿨다. 이처럼 가상 캐릭터 설정은 수요층 요구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엔 여성 게이머를 끌어들이기 위한 상업적 목적이 짙었겠지만,

언젠간 제모를 하지 않게 될지도

원더우먼 역시 캐릭터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쭉 높아진다면 라라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사실 원더우먼도 설정이 바뀐 전력이 있긴 있다. 제모와는 무관한 건이지만. 여하간 원래 원더우먼은 흙덩이 출신이었다. 여신 헤라의 가호를 받는 아마존 종족 공주로, 여왕 히폴리타가 점토 인형에 신의 가호로 생명을 불어넣어 만들었다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2011년 들어 앞서 설명한 제우스 설화로 탄생 경위가 개편된 것이다. 이미 설정이 바뀌어 본 적 있는 캐릭터니, 또 변하지 못할 이유는 달리 없을 게다.

여담이지만 이번 제모 논란 자체가 노이즈 마케팅을 위해 영화사에서 의도적으로 퍼트린 음모론이라는 설도 있긴 하다. 그저 겨드랑이털, 다리털 등 체모에 페티시즘(Fetishism·성도착증)이 있는 일부 네티즌이 던진 말이 페미니즘으로까지 번졌다는 말도 있다. 이 설들의 진위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읽는 분들께 양해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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