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단독]민주 '친文' 지역위, ARS인증·선거인단 개인정보 수집

유길용 입력 2017.03.26. 00:21 수정 2017.03.2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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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 선거인단 참여자들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ARS 인증번호를 수집한 정황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당의 공식 조직인 지역위원회가 특정 후보를 선전하고, 일부 지역에선 '온라인 피싱 사기'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선거인단의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서울 금천구에 거주하는 더민주 당원 A씨는 “지역구 의원인 이훈 의원 사무실 등의 이름으로 경선 참여 후 인증번호를 알려달라는 문자가 세 번이나 왔다”며 당에 해명을 요구했다. A씨가 공개한 문자 메시지는 선거인단을 신청한 뒤 인증번호를 지역위원회에 알려달라는 내용이다. 발신지는 민주당 금천구지역위원회를 겸한 이훈 의원 사무실 전화번호였다. 이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의 선거 캠프에서 조직본부 부본부장을 맡고 있다. 금천구 지역위 관계자는 “확인해 보겠다”고만 했다.

━ 지역위원회에서 '문' 지지 권유하며 인증번호 수집
지역위 사무실 번호로 당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ARS인증번호를 요구했다.
관악을 지역위원회에서도 인증번호를 전화로 알려달라는 문자 메시지가 당원들에게 보내졌다. 발신번호는 관악을 지역위의 사무실 전화번호다. 지역위 사무실 번호로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의 밴드 모임인 ‘을지문(관악을 주민이 지지하는 문재인)’ 초대 문자 메시지도 대량 발송됐다. 관악을 지역위원장인 정태호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고, 문재인 의원 정무특보를 지낸 ‘친문’ 인사다.
지역위 사무실 번호로 당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문재인 지지자들의 밴드 모임을 안내하고 ARS인증번호를 요구했다.
인천 연수을 지역위원회는 당원들에게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문재인 캠프 홈페이지를 거치도록 유도해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연수을 지역위가 지난 12일 2차 선거인단 모집을 앞두고 당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민주당의 공식 선거인단 모집 사이트 주소 아래에 "더 쉽게 신청할 수 있다"며 문재인캠프 홈페이지 주소를 첨부했다. 이 주소를 클릭해 접속하면 이름과 연락처, 주소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창이 열리고 전화걸기 버튼을 통해 선거인단 신청 ARS로 연결되게끔 했다.
━ '문캠 홈피'로 우회 접속시켜 개인정보 중간 가로채기 의혹
문재인캠프를 통해 민주당 공식 선거인단 신청 사이트에 우회 접속하도록 유도했다.
문재인 캠프 홈페이지의 개인정보 수집 사이트를 거쳐 선거인단 신청 사이트로 우회 접속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온라인에서 개인정보를 중간에 가로채는 피싱 사기와 비슷한 방식이다. 제보자는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당의 공식 사이트로 착각해 개인정보를 입력하도록 해놨다”며 “선거인단에 참여하는 사람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 링크는 선거인단 모집이 끝난 뒤 닫힌 상태다.
지역위원회 당직자가 선거인단으로 등록한 당원들에게 문재인 후보를 선전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 서초을 지역위원회에서는 지역위 당직자가 선거인단 신청자들에게 문 전 대표 지지를 부탁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당원들의 항의를 받았다. 이 관계자는 “지역위 사무국에서 운영하는 폰으로 일반 당원에게 실수로 문자가 발송됐다”고 했지만 선거인단 신청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를 해명하라는 요구에 아직 답변하지 않고 있다. 부산 서구·동구 지역위원회는 이재강 지역위원장 명의로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선거인단 신청자에게도 문자를 보내 ARS 인증번호와 개인정보(이름,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를 요구했다.
부산 서구동구 지역위원장 명의로 선거인단 신청자들에게 개인정보와 ARS 인증번호를 요구하는 문자가 발송됐다.

━ ’의사’ 지역위원장이 제약회사 직원에 "인증번호 가져와라" '갑질' 민간의 직능단체를 통한 인증번호 수집 사례들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 C씨는 “고교 동창인 다른 학교 교수로부터 민주당 선거인단에 참여해 인증번호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직업상 특정 정당 경선에 참여하기가 껄끄러워서 거절했더니 동창회 차원에서 하는 일이라며 거듭 부탁을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문재인 전 대표가 나온 경남고등학교 출신이다. 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선거인단 등록대장'을 만들었다. 현장 투표 대상자인 권리당원을 제외하고 일반 당원과 국민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ARS인증번호를 기록하도록 돼있다. 연합회가 리스트를 만든 이유와 누구에게 전달됐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광주에서는 병원을 운영하는 한 민주당 지역위원장이 제약회사 영업 담당자들에게 인증번호를 모아 오라고 요구했다는 제보가 나왔다. 제보자는 “약을 납품해야 하는 제약회사 직원 입장에선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 일종의 ‘갑질’”이라고 말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한 당원은 “역사 관련 학회에 있는 지인이 경선참여 인증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원 C씨는 “지인이 ‘문재인 팬클럽’이라면서 ARS 인증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저까지 하면 97명째라는 말도 했다. 평소에 연락을 잘 안 하던 사람이어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인증번호 수집에 나선 이들은 유독 문재인 캠프와 관련이 깊다. 문 전 대표 측은 “캠프와 관련 없는 개별적 행동”이라며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일탈로 치기에는 전국적이고 체계적이다.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당의 지역위원회가 특정 후보 편을 들고 있다는 점은 공정성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다른 예비후보들 측에서도 이를 당 조직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한 예비후보의 캠프 관계자는 “실적 확인용일 경우 당의 공식 조직을 동원해 특정 후보가 유리하도록 선거인단을 동원했다는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며 “이는 선거의 중립성이 의심받을 수 있는 문제여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후보 측 관계자는 "경선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당의 공식 조직이 사실상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을 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 '흥행 찬물' 고민하는 당 지도부…”공정성 의심 후폭풍 클 것” 온라인에선 인증번호를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나온다. 당원들 사이에는 수집한 인증번호와 개인정보를 이용해 ‘대리투표’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인증번호는 경선 선거인단 접수 과정에서 본인 확인을 위한 것일 뿐, 투표를 하려면 인증을 거친 선거인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추측은 선거인단 모집 실적을 인증하기 위한 용도란 분석이다. 할당 받은 선거인단 모집 실적 보고를 위한 것이란 추측이다. 이 경우 선거인단 모집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실적을 취합하는 수직 체계를 갖춘 조직이 존재한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민주당에는 이에 대한 당원들의 문제제기가 빗발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당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공정성 시비가 자칫 경선 흥행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서다. '적폐 청산'이란 시대적 요구를 역행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물증과 정황이 나온 이상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D의원은 “이 문제를 정리하고 가지 않으면 경선 공정성 시비가 대선 때까지 계속 갈 수 있다”며 “하지만 지금 이걸 공론화하는 것도 후폭풍이 커서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