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캠프는 왜 특전사 이력에 집착할까?..대통령 후보들의 심리학

박은하 기자 2017. 3. 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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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트라우마로 본 후보들의 심리학 ·심리학자 김태형 분석… 문재인은 ‘진심으로 정치하기 싫은 사람’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24일 공개한 출마선언 동영상에서 밝힌 출마의 변(辯)이다. 동영상 출마선언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전 민주당 후보도 한 바 있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두 동영상에서는 후보가 정견을 발표했지만, ‘더문캠’은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국내외 시민 5000명으로부터 출마선언문의 문구를 모집했고, 영상에는 이들의 모습도 담겼다. 후보자 ‘문재인’이 아니라 ‘시민 5000명’이 동영상의 주인공인 셈이다. 최근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원더박스)을 출간한 심리학자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52)은 이 동영상에서도 문 전 대표가 정치를 하는 이유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국민이 원하니까 출마하는 것이다. 등 뒤에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두고 ‘링 위에 선 고독한 복서’에 가깝다. 고독한 이유는 본인이 권투를 즐겨서 링 위에 오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의 저자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 워터박스 제공

이재명 ‘내가 행복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 “후보의 이력이나 정책만큼 심리상태가 중요하다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우리는 알아버렸다.” 김 소장이 책을 낸 이유다. 그는 <불안증폭사회>, <트라우마 한국사회> 등 2010년대 초반 IMF 외환위기 때 유년기를 보낸 청년들의 심리와 사회상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저술과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조선의 국왕 정조, 베토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심리를 분석하는 책을 썼지만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심리는 가급적 분석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심리적 상처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15년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의 의존적 심리상태를 언급한 일은 ‘최순실 게이트’ 이후 뒤늦게 화제가 됐다. 김 소장 역시 이 사건을 거치며 “공인의 심리분석 역시 검증의 한 방편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책은 자서전과 언론 인터뷰, 지인들의 평가 등을 바탕으로 했다. 가장 많은 분량이 할애된 사람은 압도적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 전 대표다. 문 전 대표는 5년 전 ‘박근혜 대항마’로서 등 떠밀려 후보로 선출됐다. 유력 대선주자로서는 이례적 케이스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국회의원 공천 등 정계입문 제의를 받았지만 자신은 정치와 맞지 않는다며 수차례 거절했고, 정계입문 후에도 “대선에서 패배하면 정계은퇴하겠다”(2012년 대선), “호남에서 지지하지 않으면 정계은퇴하겠다”(2016년 총선 전) 등 유독 ‘정계은퇴’를 자주 언급한다. ‘진심으로 정치하기 싫은 사람’.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정치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 김 소장이 본 문 전 후보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인생을 다 바치고자 했던 혁명가가 아니다. 시대가 자기한테 무언가를 요구하면 피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는 양심적인 지사나 지식인에 가깝다.”(책 77쪽) 바꿔 말하면 그는 왜 국민적 지지를 거절하지 못할까. 책은 문 전 대표가 가난했던 어린 시절 팽이를 스스로 깎아 놀려다 손가락을 다쳐도 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꾹 참았던 에피소드에 주목한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법대나 상대 진학을 권유하는 부모와 교사의 조언대로 재수를 거쳐 법학과에 진학하고, 민주화 운동으로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 것에 주목한다. 사랑받고 싶었고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던 ‘착한 아이’ 문재인이 현 대선후보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김 소장은 “문 전 후보는 싸움을 싫어한다. 계속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특전사 경력을 강조하는 것도 콤플렉스에서 비롯된다. 부당한 색깔론에 정면승부로 맞서기보다는 착한 이미지로 승부한다. 반대로 본인이 싸움을 안 하니 지지자들이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면 지지율이 항상 높을 수 없다. 국민들의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이 상황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심리학자로서 그가 던진 의문이다. 그가 보기에 문 전 대표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다. 이 시장은 지난 1월 23일 성남 중원구 상대원동의 오리엔트시계 공장에서 출마선언을 한다. 가난했던 노동자 출신임을 숨기지 않았고, 직설적인 노동자의 언어를 여전히 사용한다. 온라인 캠페인에서는 “체불임금 작살내겠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악법이 있으면 지키지 않을 사람이다. 어려운 가정사 고백은 ‘웃으며’ 했고,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비난보다는 긍정으로 받아들인다. 심리학자의 눈으로 봤을 때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된 사람이다. “사명감과 내적 동기가 일치하고, 정치인으로서 성장 가능성이 우수합니다.” 이 시장이 어머니와는 달리 사망한 아버지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한 적이 없다는 점은 책에서 찜찜한 요소로 지적된다. 아마도 어린 시절 존경의 대상은 아니었을 아버지와 아직 화해하지 못했고 어떤 심리적 상처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책에서 계속 중요하게 다뤄진다. 유년기와 청년기, 부모와의 관계는 인격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론과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명예롭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다. 인생관이 건강하다. 문 전 대표와 유사한 ‘모범생’이지만, 부모의 뜻을 거슬러본 문 전 대표와 달리 나름의 반항을 한다. 의사로서의 길을 저버리고 벤처를 창업하거나 정치에 뛰어든 일 등이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반항하지는 않는다. 일단 의대에 진학하고, 아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갖추고, 기반이 있는 상태에서 반항한다. ‘성공하는 반항’이다. 이기는 싸움만 한다.

안철수, 이기는 싸움만 하려는 ‘모범생’ ‘진짜 반항아’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다. 대구 출신 판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유복했고, 한때는 친박으로 분류됐던 보수정당 주자이지만 “어딘가 화가 나 있어” 보인다. 1975년 고교시절 친구가 교사에게 부당하게 맞았다는 이유로 합천 해인사로 가출하자, 친구를 찾아오겠다며 함께 가출한 에피소드에 주목한다. 김 소장이 본 유 의원은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차남’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조인의 길을 걷는 형에 비해 사랑과 관심의 대상에서는 후순위였고, 여기에서 그의 분노가 시작됐다. ‘권력실세’ 아래서 ‘저격수’의 길을 걸었던 정치적 행보를 설명하는 배경이다.

김 소장은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해 책에서 다뤄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조기 대선으로 책도 예정보다 앞당겨 출간된 탓이다. 민주주의와 대연정을 논하고, 현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안 지사의 심리에 대해 물어보자, 이렇게 답했다. “권력의지가 강합니다. 힘에 대한 갈망이 큽니다. 거꾸로 보면 강한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기성취와 과시에 대한 집착이 큽니다. 대학시절 운동권 서클 후배들로부터 외면당한 일을 ‘인생의 패배’로 묘사하는데 보통사람은 그 정도 일로 ‘패배’라고까지 잘 하지 않습니다.”

그는 “안 지사가 노무현 등 좋은 역할 모델을 만났을 때 무력감은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민주당의 적장자’를 강조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해석된다. 그러나 무력감이 해소되지 않을 때 선택하는 또 다른 방식의 ‘타협’이 아니냐는 의심도 던졌다. 안 지사의 저술 가운데 2008년에 출간한 <담금질> 외 충남지사 재직시절의 책은 보지 못했다는 한계도 인정했다.

책은 자서전과 언론 인터뷰와 기사를 바탕으로 했다. 안 전 대표와 유 의원에 대한 서술은 분량이 부실하다. 문 전 대표를 제외하고는 각 주자들이 정계입문 후 현실적 문제를 풀어가는 구체적 과정은 잘 언급하지 않고,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환원론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후보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를 넘어서 그가 일찌감치 천착했던 ‘트라우마 한국사회’에 정치엘리트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는 미덕이 있다. 경쟁지상의 풍토와 강한 가부장제의 압력에서 개개인에게 불안과 열등감,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고 또 이를 묻지 않고 살아가게 만드는 구조가 대선주자들의 유년기 트라우마와 심리에도 반영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책은 19대 대선을 바라보는 촛불시민들의 집단심리로 마무리한다. 김 소장이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개개인은 평등하지 않고, 하나의 존재로서 존중받지 못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치유가 돼야 통합이 가능합니다.”

‘적폐청산’과 ‘통합’이 하나의 과제라는 의미다. 과연 누가 이 사명을 감당하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선택될까.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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