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정치에 나서야만 '독박육아' 끝장낸다!

2017. 3. 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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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장하나의 엄마 정치
① 연재를 시작하며

[한겨레]

제19대 국회 임기 중이던 2015년 4월18일 장하나 당시 국회의원이 태어난 지 두 달 된 딸 두리(2월11일 출생)를 재우고 있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 장하나. 두리 엄마, 환경운동연합 권력감시팀장, 전직 국회의원.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사는 건 참으로 이상하고 슬픈 경험입니다. 엄마는 가장 멋진 일인데도 가장 괄시받는 직업이 됐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 시간과 장소를 빼앗겼습니다. 20대 국회의원 평균 재산 41억원, 평균 연령 55.5살, 83%가 남성입니다. 우리 정치는 너무 노쇠하고 너무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보고 엄마의 마음으로 길을 내는, 엄마를 위한, 엄마에 의한, 엄마의 정치가 필요합니다.

2년 전 이맘때 딸 두리를 낳았습니다. (두리야 사랑한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임기 중에 출산한 국회의원은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국회의원이나마나 아이를 키운다는 건 입에서 단내가 나고 머리에서 쉰내가 나는 일이었습니다. 엄마로 산다는 것은 제 인생 최고의 행복이지만, 육아 자체는 제 인생 최악의 중노동이었으니까요.

부조리 ‘독박육아’

그래도 결국 아이는 엄마를 웃게 만들죠. 엄마를 우울하게 만드는 건 아이가 아니라 이 사회입니다. 두리를 배 안에 품었던 시간까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지난 3년을 돌이켜보니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 같습니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 그 아이가 한국인으로 자라는 과정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인지 새삼 알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처음 의심쩍었던 것은 ‘왜 나는 나이 마흔이 되도록 육아가 이토록 힘든 일인지 까마득하게 몰랐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동안 육아에 대해 배운 유일한 힌트가 있었다면, 초등학교 때 불렀던 노래 ‘어머니의 마음’ 가사가 전부입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30년 후 제 자신이 엄마가 되고 보니 한국에서 출산과 육아는 숭고한 게 아니라 황당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정말 손발이 닳고 닳는 이 일을 학교에선 왜 가르치지 않을까? 남성들은 묻지도 않는 군대 이야기를 지옥의 경험처럼 잘도 늘어놓는데, 왜 여성(동지)들은 당연한 고난인 듯 육아 분투기를 소리 높여 말하지 않는 걸까? 군인들이 입영열차 안에서 한 번 울고 이등병의 편지를 쓰면서 또 한 번 우는 줄은 알았지만, 아기 엄마들이 삼시 세끼를 굶으며 눈물만 삼키는 줄은 (엄마가 될 저조차) 꿈에도 몰랐던 거죠.

임기 중 출산한 사상 첫 국회의원
마흔 즈음에야 시작한 ‘독박육아’
한국에서 아이 낳고 키우는 일의
비인간적·비민주적인 현실 절감
손발 닳는 이 일을 교육도 외면

‘육아 노동 은폐’의 두 가지 가설
① ‘하층계급 엄마’ 착취를 위해
② 불안 이용해 시장의존 극대화
나쁜 정부와 무능한 정치의 산물
‘엄마들의 정치’로 세상을 바꾸자

저만 이상한 건가 싶어 주위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몰랐답니다. 아무도 모른다? 이거 뭔가 있구먼! 저는 두 가지 가설을 세웠습니다.

첫째. 한국 사회가 육아 노동의 존재를 은폐하는 이유는 육아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엄마’라는 하층 계급이 있고, 엄마를 착취하기 위해 가사나 육아 같은 엄마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거죠. 고상하게 ‘여자의 운명’이네, 상스럽게는 ‘여자 팔자’네, 과학을 가장해서 ‘모성본능’이네, 그런 말로 퉁치는 겁니다. 이런 ‘수작들’ 앞에서 엄마들은 ‘헌신하다 헌신짝 된다’는 격언만 곱씹게 됩니다.

둘째.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나쁜 이데올로기 때문입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든답시고 정부는 온갖 규제를 완화하고 재벌 대기업에 갖은 특혜를 줬습니다. 그 결과 경제가 살아나길 했나요? 돈이 돌긴 했나요? 사내유보금만 1천조원 가까이 쌓였습니다. 일부는 미르재단이나 케이(K)스포츠재단으로 흘러가 검은돈이 되었다죠. 2014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낙수효과의 허구성을 밝혔고, 2015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 경제에 더 이상 낙수효과는 없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가 규제 완화에 점점 집착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전경련과의 노골적인 ‘기브 앤드 테이크’(give-and-take)로밖에 안 보입니다.

반면 우리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 구의역 참사, 삼성 백혈병 사태 등 인간의 존엄성이 한낱 돈벌이의 도구로 전락하는 참혹함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기업만을 위한 정부가 어떻게 국민의 안전과 건강과 생존을 파괴하는지 비로소 깨달은 거죠. ‘박근혜 게이트’ 때문에 지금 한국 사회는 격변의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다음 정권이 곧 ‘더 나은 세상’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내 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우겠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엄마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를 ‘호갱’ 만드는 나라

기업을 위한 정부는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인 육아·교육·의료 등 공공 정책을 시장에 전적으로 내맡깁니다. 그리고 국민들을 무지하게 만들어서 시장의존도를 극대화하죠. 제가 바로 산증인입니다. 육아에 대해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 제가 의지할 것은 인터넷 검색뿐이었습니다. 검색은 쇼핑으로 이어지더군요. 팔뚝만한 아기가 온종일 울어대면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인터넷에서 ‘이걸 써보니 도움 되더라. 저걸 사니까 해결되더라’라는 글을 발견하면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고 어느덧 제 손은 ‘결제’를 누르는 겁니다. 클릭클릭.

안도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택배를 받고 나면 ‘또 애물단지를 득템했다’는 실망과 허탈과 짜증이 밀려옵니다. 두리를 낳기 전 베이비페어에도 가봤는데, 정말 아이는 돈으로 크는구나 싶었습니다. ‘엄마는 호갱인 건가? 우리 딸은 날 때부터 호갱이 되는 건가?’ 별생각이 다 들었죠.

이 땅에 온 지 15일째 되던 날(2015년 2월25일) 두리의 작은 발.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의심할 것 없이 아이는 돈이 아니라 사랑으로 커야 합니다. 그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가 잘못된 거죠. 엄마 아빠에게는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하고, 엄마 아빠는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을 교육받아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사랑과 제대로 된 정책으로 자란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바뀌지 않습니다.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육아 공약을 훑어봤습니다. 여야 할 것 없이 대체로 훌륭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가시나요? 저는 안 믿어요. 못 믿습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대선 주자들 모두 이미 정치 경력이 오랜 분들입니다. 엄마를 위한 정치를 할 마음이 있었다면 진즉에 뭐라도 했어야죠. 어린이집에서 폭행 사건이 나면 현장 방문도 하고 긴급 대책회의도 하지만 결과가 어땠습니까? 정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최선인가요? 그 이상은 무리한 요구입니까? 지금 공약을 그때는 할 수 없었나요?

노엄 촘스키는 “파렴치하고 타락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고 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두리를 낳고 키우면서, 두리를 돌보느라 확 늙어버리신 시부모님을 보면서, 그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싸워야죠.

역사적으로 ‘엄마 착취’는 한국적 상황만은 아닙니다. 여성의 진학률과 취업률이 급증하면서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전통적 메커니즘이 오작동한 것도 세계적 현상이죠. 엄마들의 소리 없는 저항은 출산율 하락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들이 ‘나 엄마 안 해!’라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시작한 거죠. 여성(엄마)의 행복에 무관심한 각국 정부도 출산율 하락은 걱정합니다.

정치적 해법을 찾은 국가도 있습니다. 1인 외벌이가 아닌 부부 맞벌이를 전제로 국가 제도 전반을 개혁하고 부모 평등육아와 일·가정 양립 사회를 실현한 나라들은 자연스럽게 출산율이 증가했죠.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독일과 일본은 아동수당 지급과 보육서비스 확대로 출산율을 높이려다 실패한 뒤 평등육아 정책으로 전환해 출산율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독박육아를 고집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정부여! 국회여! 여성(엄마)들이 애국하려고 아이를 낳는 건 아니지만, 일단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보세요. 그러면 출산율이 올라간다잖아요. ‘가임기 여성 지도’ 따위 제발 만들지 말고요.

‘독박육아’는 나쁜 정부, 무능한 정치의 산물입니다. 문제는 정치의 실패가 정치인들만의 책임은 아니란 점입니다. 우리 엄마들 자신은 평등육아를 위해 얼마나 목소리를 냈는지요? ‘엄마는 호갱이 아니다! 육아는 국가가 책임져라!’ 얼마나 크게 외쳤던가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엄마들은 어떤 정치인을 뽑거나 뽑지 않았던가요? 정치권력자들에게 엄마들의 정치적 요구를 구체적이고 단호하게 전달한 적이 있나요?

우리 만납시다

124년 전 뉴질랜드 여성들이 세계 최초로 선거권을 갖게 된 것은 뉴질랜드 남성들이 천부인권에 따라 그들의 정치권력을 여성들과 평등하게 나누어서가 아닙니다. 여성들이 싸웠기 때문입니다. 여성 스스로가 분노하고 싸우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 글을 통해 우리 엄마들과 정치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정치라는 말이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지만 정치는 대단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여 이야기하고, 서로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으면 그것이 정치이고 정치세력화입니다. 그것이 정치 이전의 정치이고,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며, 그것이 가장 멋진 민주주의입니다.

정치에 여성(엄마)들이 나서야만 독박육아를 끝장내고 평등하고 행복한 가족공동체를 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울한 여성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의 아이들과 제 딸 두리에게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를 전해줄 수 있습니다. 저와 마음이 통하신다면, 이제 우리 만납시다.

*페이스북에 만남과 소통의 공간(https://www.facebook.com/political.mamas)을 마련했습니다. 이곳에 엄마들의 분노와 제안을 남겨주세요.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행동하며 ‘엄마의 정치’를 만들어갑시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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