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섭의 세상을 상상하는 과학] 내 몸에서 나온 세포인데.. 주인은 왜 병원인가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 2017. 3. 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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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인간의 신체 부위는 그 사람의 소유물인가? 일견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심오한 철학적 성찰을 요한다. 일례로 혈액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내 몸속의 피가 나의 소유물이라면, 그것을 사고파는 행위를 제지할 수 없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매혈(賣血)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피를 '기증'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우리는 신체 부위를 시장경제에서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최근의 생명과학 연구에서 중요한 쟁점이 된다. 기증받은 신체 부위로 얻은 연구 성과로 인해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된다면, 그 과실은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가? 정부와 기업은 생명과학에 상당한 연구비를 쏟고 있고, 이 중 상당 부분은 실험용 쥐, 인간의 세포 등 연구 재료를 조달하는 전문 업체들에 흘러들어 간다. 막대한 시장이다. 실재하는 시장이 '기증'이라는 비시장적 행위에 의존한다는 딜레마이다.

인간에 대한 생명과학 연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재료는 헬라(HeLa) 세포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세포 주인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이 세포주는 1951년부터 현재까지 수천만t 이상 배양되어 생명과학 연구에 활용됐다. 그 결과 소아마비, 암, 에이즈 등 각종 질병에 대한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국내 한 업체는 헬라 세포주를 187만원에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헬라 세포주 공여자인 흑인 여성 헨리에타의 삶을 추적한다. 그녀는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사망했지만 암세포는 예기치 않게 시험관 안에서 살아남았고, 이후 증식에 증식을 거듭했다. 여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암세포는 '불멸의 삶'을 얻었고, 나아가 상업적으로 이용되며 전 세계 실험실로 퍼져 나갔다.

그렇다면 헬라 세포주는 헨리에타의 소유물인가? 인류 복지를 위해 이바지했으니 그저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할 일인가? 미국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치료 과정에서 얻게 되는 신체 부위를 '의료 폐기물'로 정의해 헬라 세포의 상업적 활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부위는 내 것이 아니라 의료 기관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는? 팔과 다리는? 헨리에타 랙스의 이야기는 생명과학의 고도화를 목도하고 있는 오늘날 생명윤리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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