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중앙일보

[뉴스 속으로] 선관위, 투·개표소 구하느라 발동동 .. 읍소해 체육관 빌리기도

허진 입력 2017.03.25. 01:08 수정 2017.03.25. 07: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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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행사 많은 5월에 대선 치러져
투·개표소로 쓸 장소 이미 예약 잡혀
6개월 걸리던 선거 준비 두달 내 해야
'개표사무 참관단' 처음으로 운영
시·군·구별로 통합해 공개하던 개표
투표구별로 알리기로 해 일 늘어나
후보자 비방, 성적 비하, 모욕 등 기승
직원들 '감정노동' 스트레스 커져
독립기관인데 정부 소속으로 오해도
━ 조기 대선으로 비상 걸린 선거 관리
중앙선거관리위 사이버선거범죄대응센터 직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허위 사실, 특정 후보자 비방 등이 포함된 ‘가짜 뉴스’를 가려내고 있다. [사진 중앙선관위]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 선거가 당초 예정보다 7개월이나 앞당겨지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비상이 걸렸다. 정상적으로는 6개월 정도 걸리는 선거 준비 과정을 두 달 내에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투표지 분류기와 선거명부단말기 등 투표장비 점검과 개표보고망의 보안 점검 등 챙겨야 할 과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여기에다 이번 대선부터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처음으로 ‘개표사무 참관단’을 운영한다. 정당·시민단체·학회·언론단체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16명의 참관단이 선거 당일 개표뿐 아니라 개표 준비 단계에서부터 각종 기기와 현장 등을 점검하기로 한 것이다. 선관위는 또한 시·군·구별로 통합해 공개하던 개표 상황도 투표구별로 세분해 선관위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리기로 했다. 일이 더 많아진 셈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인데 특히나 1만4000여 곳의 투표소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1년 중 날씨가 가장 좋고 각종 행사도 많은 때인 5월 9일로 대선일이 잡혔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당초 각 시·군·구에 있는 ‘청소년 문화의 집’ 중 일부를 사전투표소로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전투표일이 5월 4~5일로 정해지면서 새로운 장소를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해마다 이 기간에 열리는 ‘어린이날 대축제’ 행사 때문이다. 올해만 행사를 다른 날짜로 옮겨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3일 선관위 직원들이 선거종합상황실에서 사전투표 장비와 투표함·기표대 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중앙선관위]
251곳의 개표소를 확보하는 것도 문제다. 시·군·구별로 투표함을 모두 모아 개표를 하는 만큼 개표소로 가장 적합한 곳은 체육관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체육관이 다른 행사로 선점돼 있다. 인천시 연수구 개표소로 쓰일 선학체육관은 인근 교회가 사용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다른 마땅한 장소를 찾을 길이 없던 연수구 선관위가 교회 관계자와 체육관 담당자를 찾아 읍소를 했고 결국 체육관을 빌릴 수 있었다. 인근의 인천시 남구 상황도 비슷하긴 마찬가지였다. 관내 연학초등학교 여자 농구부는 지난해 열린 제71회 전국 남녀 종별 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할 정도로 농구 실력이 뛰어나다. 올해 전국체전이 5월 27~30일 열려 5월 초엔 어린 농구 선수들이 땀 흘려 막바지 연습을 해야 할 때다. 남구 선관위는 이를 알고도 대체 장소가 마땅치 않아 학교 측에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농구단이 일주일 정도 다른 곳을 전전해야 할 처지지만 학교 측은 대선이라는 중요한 국가적 행사를 위해 흔쾌히 체육관 사용을 허락했다고 한다.

조기 대선으로 유권자의 관심이 커지면서 중앙선관위 사이버선거범죄대응센터와 전국 시·도 선관위 지도과 직원들의 ‘감정노동’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유포되는 각종 허위사실과 특정 후보자 비방, 특정 지역·성(性)에 대한 비하와 모욕, 불법 여론조사 결과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지난 1월 26일 사이버선거범죄대응센터에서 일하는 직원 A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당시 한창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부친의 선영에서 제례한 뒤 퇴주(退酒)를 음복(飮福)하는 듯한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온라인에 퍼져 ‘퇴주잔 논란’이 벌어진 때였다. 실제론 제례를 마친 후 남은 술을 마신 것이었다. A씨는 짜깁기 영상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는 네티즌에게 관련 법규를 안내한 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선관위로 출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러한 A씨의 안내에 불만을 품은 네티즌이 대화 내용을 녹취해 일방적으로 온라인 게시판 등에 유포했고, 일부 매체는 이 대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 네티즌은 그런 뒤에도 사무실에 항의 전화를 했고, A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 항의하는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그러곤 A씨에게 “청와대와 감사원에 직권남용으로 신고하는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도 했다.

A씨는 지난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그분은 대화 내용을 또다시 녹음해 공개하겠다고 했었다”며 “하지만 일방적으로 또다시 대화 녹음을 공개하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자 항의를 멈췄다”고 회고했다. A씨는 “정치 관련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은 주로 자기주장이 강한 분들”이라며 “요즘에는 갈수록 강경하게 대응하는 분들이 늘어 황당한 일도 자주 겪는다”고 토로했다.

진혜영 인천시 선관위 지도과 사무관도 “빨갱이, 첩의 자식, 성누리, 수컷, 홍어, 경북 X년 등과 같은 욕설과 성적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게시물을 업무시간 내내 보고 있으니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고 말했다.

민원인을 대하는 직원만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다. 정치적 갈등이 커지다 보니 선관위도 공격을 받곤 한다. “선관위가 누구 눈치를 본다” “누구 편을 드는 것 같다”는 식이다. 특히 선관위를 정부 소속 기관으로 착각하고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는지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선관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선관위는 과거 관권 선거와 3·15 부정선거의 아픈 역사를 겪은 후 정부의 부당한 선거 개입을 막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독립기관으로 만들어졌다”며 “선관위가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더 잘해야겠지만 선관위 조직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비판을 하는 걸 보면 씁쓸하다”고 했다.

‘아름다운 선거’는 중앙선관위 슬로건.
선관위로선 “선관위가 자유로운 선거운동을 가로막는다”는 비난에도 할 말이 적지 않다. 차태욱 중앙선관위 공보과 사무관은 “선관위는 최대한 선거운동의 자유를 보장하려고 노력하는데 많은 사람이 오해를 한다”며 “공직선거법이 엄격하게 규정돼 있기 때문에 법을 집행하는 선관위로서는 법을 따라야 할 수밖에 없는 건데, 마치 선관위가 나서서 선거운동을 막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선거구를 조정할 때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것처럼 선거와 관련한 각종 법규 개정을 추진할 때는 선관위보다는 오히려 각 정당의 이해관계 대립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거나 아예 무산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오히려 ‘풀려는 쪽’이란 게 선관위의 입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4월 총선 때까지도 금지됐던 ‘손가락 인증샷’이다. 그동안 선거법은 투표일에 투표를 마치고 엄지손가락을 세우거나 두 손가락으로 브이(V) 표시를 한 사진을 찍은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올리는 걸 금지했었다. 기호 1번이나 2번 등 특정 당 후보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지나친 규제란 지적이 많았다. 또 투표일 당일에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선거운동을 막는 것을 두고도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자 선관위가 지난해 8월 25일 개정 의견을 밝혔고, 지난달 8일 관련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S BOX] ‘개표 부정’ 의혹 막기 위해 보안 강화 … 전문가 9명으로 자문위 만들어 「대선이 끝나고 나면 어김 없이 뒤따르는 게 ‘개표 부정’ 의혹이다. 부정 선거와 관권 선거의 아픈 역사 탓에 패자를 응원했던 사람 중 일부가 제기하곤 한다. 2012년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대선 이후 검찰에 “대선 개표에 부정이 있었다”는 고발이 잇따랐고 『18대 대선 개표 부정을 고발한다』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1월엔 더불어민주당의 대선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많은 국민이 전산 개표 부정 의심을 하고 있다”고 거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선관위는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투표함이 이송될 때부터 정당에서 추천한 참관인이 동행하고 개표소에서도 4500여 명의 참관인이 개표의 모든 과정을 직접 확인한다”는 것이다. 실제 2002년 이후 제기된 개표 의혹 관련 53건의 소송에서 인용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대선의 치열함을 감안하면 올해도 이 같은 주장이 반복될 수 있다. 선관위가 보안 강화에 나선 이유다. 우선 개표 때 사용하는 투표지 분류기는 해킹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하도록 했다는 게 선관위의 설명이다. 인터넷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주요 정당과 정보기술 관련 연구기관, 시민단체와 학계가 추천한 보안 전문가 등 9명으로 ‘보안자문위원회’도 구성했다. 개표 기기의 보안 관련 문제를 점검하도록 했다. 투표지 분류기를 사용할 때 반드시 필요한 보안카드 마스터키는 선관위뿐 아니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관계자 등도 각각 봉인토록 해 어느 하나가 임의로 조작할 수 없게 했다. 」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