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빈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면 점수는 따라오겠죠"

조효성 입력 2017. 3. 2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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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금메달 따냈던 클린연기 동영상 돌려보며 단점 찾아내고 보완했죠"
"연아언니는 든든한 지원군..응원 문자·안무 지도에 예술성도 끌어올렸어요"

평창올림픽 출전권 걸린 세계선수권 앞둔 최다빈

오는 29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국제빙상연맹(ISU) 세계선수권 출전을 앞둔 최다빈이 태릉선수촌 피겨스케이팅장에서 자신의 스케이트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호영 기자]
지난달 말 일본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피겨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최다빈(17·올댓스포츠). 여자 피겨 싱글 종목의 깜짝 스타 등장에 '포스트 김연아'를 애타게 찾던 한국 피겨 팬들은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한국 사상 첫 금메달'의 새 역사를 쓴 최다빈은 잠시 한눈을 팔 틈도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출전권'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바로 오는 29일부터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국제빙상연맹(ISU) 세계선수권이다. 사실 이 대회도 '대타'다. 원래 출전할 선수였던 김나현(과천고)의 발목 부상으로 최다빈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다시 한번 '대타 신화'를 쓸 수 있을까.

최근 태릉선수촌 피겨스케이팅장에서 만난 최다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굵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매일 4시간의 빙상 훈련과 이후 체력 훈련, 스케이팅 기술 훈련과 안무를 위한 발레 교육까지 빼곡하게 스케줄이 차 있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지 한 달여. 세계선수권을 앞둔 최다빈의 얼굴에는 '금메달 환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한국에 들어온 날부터 '금메달 맛'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대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한 최다빈은 "여유도 없고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시즌이 끝나야 '아 내가 금메달을 땄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며 웃었다.

최다빈은 한마디로 '신중' 그 자체라는 것을 인터뷰 내내 느꼈다. 들뜬 모습은 전혀 없었고 차분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에 또박또박 답변을 이어갔다. 표면은 잔잔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深淵) 같은 선수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한마디 한마디 할 때에도 몇 초간 생각을 한 뒤 얘기를 할 정도다.

진지한 이유가 있다.

최다빈에게 '피겨'는 지금 17세 인생의 전부다. 흔한 '이상형' 질문에도 단호하게 "없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가수도, 음악도, 탤런트도 없다. 최다빈은 "내 머릿속에는 피겨밖에 들어 있지 않다"며 "지금까지 해오고 이룬 것보다는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더 많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은 없다"고 설명했다.

최다빈은 아시안게임에서 돌아온 뒤 자신의 '클린 연기 동영상'을 수백 번 돌려봤다. 자랑스러워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클린 연기를 한 것에 대해 기분 좋게 봤다. 하지만 처음 한 번만 그랬다. 두 번째 볼 때부터는 아쉬움이 점점 더 크게 몰려왔다."

최다빈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연기를 냉정하게 풀어냈다. 최다빈은 "에지의 강도나 깊이, 스케이팅 기술 등 자꾸 부족한 부분만 더 보이더라. 그래서 연습할 때 당시 실수 했던 부분을 고치려 계속 돌려봤다"고 말했다.

최다빈의 피겨 좌우명은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다. 인터뷰 내내 "실전에서는 연습만큼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연습을 할 때에도 실전처럼 집중한다. 자신의 피겨 세계로 푹 빠져들기 때문에 큰 대회에서도 떨지 않을 수 있었다.

빈틈없는 최다빈.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해야 할 것과 자신에 대해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목표도 명확하다. 바로 화려하고 멋진 기술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프로그램 속 단점을 하나하나 없애는 것. 트리플 점프 5종은 중학교 1학년 때 완성했다. 하지만 급하게 성공에만 집중해 잘못된 동작이 많았다. 교과서 점프로 만드는 데는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너무 '기술'에만 집중해 '예술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생겼다.

사실 최다빈의 단점은 명확하다. 바로 예술 점수. 기술 점수는 높아도 예술 점수만 보면 하위권 선수들과 비슷하다. 반대로 말하면 점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확실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최다빈은 "지금 ISU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했던 이은희 코치님과 표현력과 트랜지션에 집중하고 있어요"라며 "물론 동작 사이사이를 잘 채워야 점수가 올라가요. 스핀이나 스텝 등 점수를 올릴 부분은 아직 많은 거죠"라고 웃어 보였다.

최다빈이 묵묵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할 수 있는 이면에는 든든한 지원군도 있다. 바로 같은 소속사 선배이자 세계 피겨를 지배했던 김연아다. 최다빈은 "김연아 언니가 4대륙 하고 연달아 대회가 있어서 힘들었을 텐데 너무 수고했고 축하한다고 해주셨어요. 항상 경기 끝나면 수고했다고 문자해 주세요"라고 수줍게 웃어보였다.

직접 표현하지 않아도 김연아는 늘 힘을 준다. 지난 21일 평창동계올림픽 행사에서 "생각나는 특별한 후배가 누구냐"는 질문에 "얼마 전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에서 놀랍게도 금메달을 딴 최다빈 선수가 지금 생각나는 특별한 후배"라며 힘을 주기도 했다. 게다가 김연아가 종종 태릉을 방문해 안무를 봐주는 것도 큰 힘이 됐다.

이제 가장 큰 관문이 남았다. 세계선수권을 위해 출국을 앞두고 있는 최다빈은 "제 경기를 다 하고 오면 될 것 같아요. 올림픽 티켓 한 장을 따는 것이 목표"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최다빈에게 점수나 등수는 목표가 아니다. 목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작년 세계선수권에 처음 나가 긴장을 많이 했는데 올해는 조금 더 차분하게 연습한 만큼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 이유다.

실전처럼 몰입했던 연습, 그리고 단점을 하나하나 지워나갔던 그 시간을 고스란히 빙판에 쏟아낸다면 높은 점수와 순위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다.

올 시즌 초 골반 부상과 임파선이 붓는 등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최다빈. 하지만 지난 2월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로 쇼트프로그램을 바꾼 이후 인생이 180도 변했다. 급하게 바꿨지만 더 완벽해졌고 편안해졌다. 그리고 '대타 출전'으로 홈런을 때렸다. 마치 꿈의 나라, 비현실적인 세계라는 뜻을 담고 있는 '라라 랜드'의 여주인공과 너무 닮았다.

다른 점은 단 하나. 최다빈은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 피겨 여자 싱글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한번 화려한 비상을 앞두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치열하게 '단점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최다빈은 분명 한 달 전보다 한 발짝 더 자신의 꿈인 '클린 연기'에 다가섰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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