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조합에 '잘리는' 건설사들..이제는 을(乙)

CBS노컷뉴스 김학일 기자 2017. 3. 23.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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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몇 년 전 만해도 아파트 재건축을 하려면 조합에서 공사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대형 건설사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요즘은 정반대이다.

돈 되는 단지가 정해져 있다 보니 수주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고, 수주를 했다고 해도 나중에 교체되는 건설사가 속출하고 있다.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재건축 단지에서 갑(甲)은 이제 건설사가 아니라 조합인 시대이다.

그러나 시공사를 다시 선정하기 까지는 매몰 비용 등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고, 이는 결국 공사 원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시공사 교체’가 반드시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서울 서초 방배 5구역 재건축 '소송전' 비화

서울 서초구의 방배 5구역 재건축 조합은 지난 18일 조합원 총회를 열고 시공계약 해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조합원 1144명 중 970명이 참석, 모두 865명이 시공사 해지에 찬성해, 90%에 가까운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였다.

조합은 지난 2014년 GS건설, 롯데건설, 포스코 건설로 구성된 프리미엄사업단을 시공사로 선정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조합 운영비 지급, 대출금에 대한 주택도시보증공사 지급보증, 사업방식 도급제 전환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결국 시공 계약을 해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해 GS 건설 등 프리미엄 사업단은 "조합의 요구 조건을 대부분 들어줬는데도 시공계약이 해지돼 당혹스럽다"며 "그 동안 빌려준 사업비 740억 원의 반환 및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합 측은 "소송을 한다는 등 겁주는 얘기는 이미 예전부터 들어왔다"며 "재건축 시행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조합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 과천 주공 1단지 재건축 '시공사 재선정에도 경쟁 격화'

과천 주공 1단지의 재건축 시공사는 오는 26일 결정된다. 돈이 될 거라는 예상으로 GS건설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의 수주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GS건설은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분양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으로 100억 원을 내놓겠다고 했고, 대우건설은 직접 미분양분을 사들이겠다고 하는 등 주민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파격적인 시공 조건이 나오고 있다.

과천 주공 1단지 재건축은 원래 포스코 건설이 맡기로 한 곳이다. 공사비와 조합 사업비 지급 등으로 갈등을 겪다가 조합 측이 올 1월 포스코 건설과의 시공 계약을 해지하고 시공사 재선정 절차에 들어갔다. 시공사 재선정에도 불구하고 재건축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형 건설사들의 수주 경쟁이 뜨거운 상황이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 장위 6구역·대치 구마을 3지구·고덕 3단지 '재협상'

성북 장위 6구역(삼성물산)과 강남 대치 구마을 3지구(대림산업), 강동 고덕 3단지(현대건설)도 시공사 교체를 추진해왔다.

다만 이들 세 지역은 최근에 시공사 교체 방침을 일단 철회하고, 재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합 측의 시공사 교체라는 카드가 공사비 등을 둘러싼 재협상을 압박한 셈이다.

◇ 재건축 갑을(甲乙)의 교체

과거에는 사실 아파트 재건축을 하려면 조합이 공사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대형 건설사에 사정을 해야 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공사로 선정됐다가 조합에 의해 ‘잘리는’ 건설사들이 속출하는 역전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흐름에는 신도시 택지지구 공급을 중단하기로 한 2014년 9.1부동산 대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택지 공급의 중단으로 아파트를 지을 땅이 부족하니 주택 건설의 주요 방향이 이미 있는 아파트를 재건축하거나 재개발하는 '도심정비사업'으로 전환됐다"며 "주요 대형건설사는 물론 과거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지방 중견 건설사까지 먹거리를 찾아 수도권 재건축 재개발 시장에 가세하다보니 수주 경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뜨거운 경쟁 속에 건설사 보다는 조합 측이 사업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형세"라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올해 시공사가 선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국의 재건축 재개발 지역은 지난해 77지역에서 10% 감소한 70개 지역으로 추산된다.

서울은 특히 방화6, 화곡1, 서초 신동아, 문정136, 방배13, 공덕1, 대조1 등 10개 지역에 불과해, 건설사들의 경쟁이 가열될 수밖에 없는 구도이다.

다만 재건축 시공사의 잇따른 교체가 과연 바람직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다. 시공사 교체에 따른 비용 증가와 사업 속도의 지체 등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사를 바꾸고 다시 선정하는 과정에는 건설사들의 출혈 경쟁으로 적지 않은 매몰비용이 들어가고, 이는 결국 공사 원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맘에 들지 않는다고 시공사를 마구 교체하다가는 사업이 지체되고 비용도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 김학일 기자] kh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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