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숨이 안 쉬어져'](28)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⑤기타 다양한 질환들-폐 이외 질환 판정기준 미룰 수는 없다

입력 2017. 3. 2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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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호흡기로 들어온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혈액을 타고 전신을 돈다면 간이나 뇌, 심장뿐만 아니라 콩팥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콩팥 또한 인체 유해물질과 노폐물을 걸러주는 대표적 장기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보드카의 나라다. 추운 나라인 만큼 독주를 즐긴다. 중국과 러시아처럼 아직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국가에서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밀주가 성행한다. 러시아에서도 종종 단속을 하지만 밀주는 끊이지 않는다. 러시아에서 좀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밀주를 먹고 간에 심각한 이상이 생긴 사람들이 나타났다. 밀주를 수거해 성분을 분석해보니 알코올 이외에 유해성분이 들어 있었다. 그 성분은 ‘폴리헥사메칠렌비구아니드(PHMB)’이였다. 이 물질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가장 잘 알려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형제지간이다. 싱크로율이 99%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왜 밀주에서 이 성분이 검출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성분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처럼 살균소독이나 단백질 제거 등에 널리 쓰인다. 밀주 술병을 세척하면서 살균제 성분인 PHMB를 사용했고 이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채 밀주를 담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해성 논란 일으킨 비슷한 물질들

‘’PHMB‘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인체 유해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 화학성분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약외품으로 관리하고 있는 콘택트렌즈 소독세척용 용액에 미량 들어간다. 농도는 0.00002∼0.0006% 수준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용액이 눈의 각막상피세포에 나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며 다른 성분으로 바꿀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PHMB를 원료로 사용한 ‘콘택트렌즈 관리용품’은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거친 제품이어서 기재된 용법·용량, 사용상의 주의사항에 따라 사용하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PHMB’는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도 콘택트렌즈의 살균소독과 단백질 제거 용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그 뒤 논란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일부 회사에서는 이 성분을 사용하지 않은 콘택트렌즈 용액을 즉각 내놓았다.

러시아 밀주 보드카 사건과 콘택트렌즈 소독용액 사례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PHMG가 일정 수준 이상 농도에서는 간이나 각막 따위에 유해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는 술은 소화기관을 따라 몸에 흡수돼 전신을 돌다 간에서 해독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독성을 나타낼 수 있는 데 비해 가습기 살균제는 호흡기로 들어와 이것이 모세혈관을 타고 흡수돼 간에 독성을 끼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느냐는 것이다. 국내 연구진들은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PHMG에 방사성 동위원소 꼬리표를 붙여 이 물질이 인체 장기 어디로까지 흘러 들어가는지를 살피고 있다. 그 연구 결과에 따라 PHMG의 간독성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

한국환경회의, 발암물질 없는 사회만들기 국민행동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2016년 5월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촉구하는 국민선언'을 낭독한 뒤 가습기 살균제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오랫동안 원인을 몰랐던 산모와 어린아이 집단사망을 일으킨 범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이 2011년 확인되자 영남대 조경현 교수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독성물질이 호흡기로 통해 들어왔다면 호흡기와 폐뿐만 아니라 혈액에 녹아 전신을 돌면서 다양한 장기에 독성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인간을 닮은 물고기란 별명을 지닌 제브라피시를 가지고 당뇨, 동맥경화, 혈관노화 등 질병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 물고기는 인간과 유전자 구조가 비슷해 생쥐·쥐에 이어 실험동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2012년 그는 당시 가습기 살균제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PHMG’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를 가정에서 사용하던 용량대로 넣은 물에 제브라피시를 풀어 독성을 관찰했다. 1시간 남짓 지난 뒤에 물고기들은 모두 죽었다. 죽은 제브라피시의 심장 조직을 분석한 결과, 심장 대동맥에서 콜라겐 섬유화가 급격히 진행됐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중증폐질환자의 돌연사 원인이 심장 대동맥 섬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 연구팀은 PHMG 제품을 10배 희석해 시험관에서 사람 피부세포에 처리한 결과, 세포의 절반 정도가 사멸하는 등 피부세포 노화도 촉진되고, 혈관 대식세포(大食細胞) 변형과 동맥경화 유발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대식세포는 면역을 담당하는 세포다. 이 세포에서 변형이 발생할 경우 각종 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 조 교수의 연구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호흡기와 폐질환 이외 다른 장기에서도 독성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문을 처음 연 것이었다.

조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일부가 자녀들이 정신지체를 겪거나 언어발달이 느리다고 직접 전자우편을 자신에게 보내오자 가습기 살균제가 뇌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보고 지난해 4월에는 제브라피시를 이용해 또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이 물고기들을 20마리씩 나눠 살균제 주요 성분인 PHMG와 PGH, CMIT 원액에 각각 넣은 결과 30분 만에 모두 죽었다. 죽은 제브라피시의 뇌를 해부하자 뇌에서 염증이 발견됐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제브라피시의 아가미 호흡을 통해 흡입돼 심장으로 전달되고, 심장에서 혈관을 타고 뇌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됐다. 염증은 인지기능과 감각기능, 특히 시각과 청각 등을 관장하는 중뇌에서 발견됐다. 제브라피시의 뇌는 인간의 뇌와 기능 및 구조가 유사하다. 각 성분의 농도를 10배 희석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염증 반응을 확인했다.

심장 대동맥 섬유화와 관련성 실험

애경 가습기메이트 등에 들어간 CMIT· MIT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인간의 중추신경에 독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연구는 이미 미국에서 오래전에 이뤄진 바 있다. 2002년과 2006년 미국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이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고농도에서는 신경세포가 죽고 저농도에서도 오랫동안 노출시키면 신경세포의 성장이 심각하게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자신의 연구결과와 외국의 이런 선행 연구결과를 토대로 죽은 물고기의 혈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가습기 살균제 물질들이 혈액을 따라 온몸으로 퍼져 전신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국내 다른 연구자들도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구조와 분자량 등으로 미뤄 인체 다른 여러 장기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제브라피시가 아니라 포유동물인 쥐를 대상으로 정부의 공식연구비를 받은 안전성평가연구소가 연구를 진행 중이므로 조만간에 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물론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제브라피시는 어디까지나 물고기일 뿐이다. 호흡 시스템이 인간과는 완전히 다르다. 또 제브라피시가 노출된 용량은 사람으로 치면 일상 사용량의 수천배가 될 수 있다. 제브라피시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독성이 인간의 다른 장기에서는 지금의 과학의 힘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수준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생존한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언어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도 그런 아이들을 여럿 만났다. 이것이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뇌에 끼친 독성 탓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조기사망에 따라 언어를 한창 배울 시기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인지를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자신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고 믿고 피해신고를 한 곽종미씨는 2008년과 2010년 태어난 첫째와 둘째 아이가 각각 심장 이상과 발달장애를 겪고 있다. 발달장애인이니 언어장애를 겪고 있다. 지적장애 3급을 받았다.

만약 호흡기로 들어온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혈액을 타고 전신을 돈다면 간이나 뇌, 심장뿐만 아니라 콩팥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콩팥 또한 인체 유해물질과 노폐물을 걸러주는 대표적 장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고를 해온 이들 가운데 신장 이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폐 이외 다양한 질환 호소자들을 대상으로 명확한 판정기준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깊어가고 있다. 이들이 호소하는 질환들은 너무나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호흡기질환이나 폐질환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가운데 비교적 많은 수가 호소하지만 신장질환이나 발달장애, 언어장애, 심장질환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이들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그 질환이 특이적이 아닌 한(실제로도 특이적이지 않음) 그만큼 가습기 살균제와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각 개인별 차원으로 넘어가 의학적 인과관계를 확정하려면 더욱 난감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호흡기와 폐 이외 질환에 대한 판정을 포기하거나 무한정 미룰 수는 없다. 최대한의 연구예산과 연구인력을 투입하고 이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 ‘안방의 세월호’,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병 참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가습기 살균제 Q&A | 한국에서만 만들고 팔았다는데, 정말인가
가습기 물통에 넣어서 사용하는 방식의 가습기 살균제는 한국 외에 독일과 일본에도 있다. 독일 Beurer사의 가습기 LW110에 넣는 물살균제 ‘beurer AquaFresh’라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있고, 일본 오사카 지역에서는 ‘가습기 제균제’라는 이름의 제품(사진)을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한국과 달리 독일과 일본 제품은 독성이 강한 살균성분을 사용하지 않고, 회사와 제품의 인지도가 매우 낮아 사용자들이 적고, 아직까지 피해사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 일본과 유럽, 그리고 미주 사회는 가습기라는 전자제품을 한국처럼 흔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 역시 사용자에게 호흡독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판매와 사용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6년 5월 서울 주재 일본 언론사 기자들에게 일본에도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있다는 것을 알렸지만 일본 기자들은 일본에서는 아직 피해보고가 없다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웃나라의 비극에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지 못하는 건, 일본의 후쿠시마 참사로부터 한국 사회가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한국은 밀폐가 잘되는 아파트 거주환경, 온돌문화, 병원에서의 권유 등으로 인구의 37.4%가 가습기를 사용했고, 가정 내 가습기 보유율이 지속적으로 증가추세에 있었다. 유명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이 제품을 만들어 대대적인 신문, TV 광고로 판매해 인구의 18.1%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여기에 유럽과 달리 바이오사이드(살생물제)의 안전관리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국내 기업은 물론 유럽 기업들도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이 한국에서만 대규모로 만들어지고 소비된 것은 사실이지만 제조과정은 최소 8개 국가의 외국 기업들이 개입해 있는 국제적인 문제였다. 이 중 5개가 유럽계 기업이다. 유럽 기업이 관련된 제품으로 인한 사망자는 2016년 3월까지 신고된 제품별 사망자 193명의 67%인 129명이나 된다. 전체 판매량 719만1804개 중에서 유럽 기업이 관련된 5개 제품(옥시, 홈플러스, 엔위드, 세퓨, 헨켈)의 판매량이 485만3960개로 67%를 차지한다. 유럽은 1998년부터 바이오사이드, 즉 농약이 아닌 살생물제에 대해 판매할 국가에 제품의 안전입증을 제시해야 하는 관리지침을 시행했다. 때문에 레킷벤키저, 테스코, 헨켈 등의 유럽 기업들이 유럽에서라면 만들지도 팔지도 못했을 제품을 한국에서는 제품의 안전을 입증할 의무를 질 필요가 없어 위험한 제품 판매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명백한 ‘이중기준(double standard)’의 문제다. 다국적 기업들이 선진국과 후진국의 안전규제 차이를 악용한 것이 이중기준 또는 이중규제인데, 1984년 미국의 농약회사 유니언카바이드(다우케미컬 인수)가 인도에서 일으킨 보팔참사가 대표적인 이중기준 사례다. 석면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석면방직산업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인도네시아로 이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중기준은 공해 수출을 부르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일컫는 용어다. 선진국에서 강화되는 안전규제가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미비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환경이나 안전규정은 동일해야 함에도 수출국가에서 적용되는 규정이 수입국가에서는 적용되지 않거나 매우 느슨한 상태로 적용하는 이중성을 표현한 것이다. 문제는 공해공장을 이전하면서 자신들이 겪은 산업보건 및 환경보건상의 경험과 개선대책이 함께 전달되지 않아 수입국가에서 이러한 문제와 피해가 고스란히 반복되거나 낮은 근로조건과 규제 미비로 오히려 더 악화되는 데 있다. 공해 수출과 이중기준이란 용어는 1980년대식 용어로, 지금은 자유무역주의 또는 자본의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 더 교묘한 방법으로 공해 수출과 이중기준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대표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가습기 살균제를 한국에서만 만들고 판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위험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만들어 판 것은 현재까지는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적어도 생활화학제품의 안전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해외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없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전제도를 도입해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막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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