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숨이 안 쉬어져'](28)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⑤기타 다양한 질환들-폐 이외 질환 판정기준 미룰 수는 없다
만약 호흡기로 들어온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혈액을 타고 전신을 돈다면 간이나 뇌, 심장뿐만 아니라 콩팥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콩팥 또한 인체 유해물질과 노폐물을 걸러주는 대표적 장기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보드카의 나라다. 추운 나라인 만큼 독주를 즐긴다. 중국과 러시아처럼 아직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국가에서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밀주가 성행한다. 러시아에서도 종종 단속을 하지만 밀주는 끊이지 않는다. 러시아에서 좀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밀주를 먹고 간에 심각한 이상이 생긴 사람들이 나타났다. 밀주를 수거해 성분을 분석해보니 알코올 이외에 유해성분이 들어 있었다. 그 성분은 ‘폴리헥사메칠렌비구아니드(PHMB)’이였다. 이 물질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가장 잘 알려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형제지간이다. 싱크로율이 99%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왜 밀주에서 이 성분이 검출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성분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처럼 살균소독이나 단백질 제거 등에 널리 쓰인다. 밀주 술병을 세척하면서 살균제 성분인 PHMB를 사용했고 이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채 밀주를 담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해성 논란 일으킨 비슷한 물질들
‘’PHMB‘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인체 유해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 화학성분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약외품으로 관리하고 있는 콘택트렌즈 소독세척용 용액에 미량 들어간다. 농도는 0.00002∼0.0006% 수준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용액이 눈의 각막상피세포에 나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며 다른 성분으로 바꿀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PHMB를 원료로 사용한 ‘콘택트렌즈 관리용품’은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거친 제품이어서 기재된 용법·용량, 사용상의 주의사항에 따라 사용하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PHMB’는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도 콘택트렌즈의 살균소독과 단백질 제거 용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그 뒤 논란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일부 회사에서는 이 성분을 사용하지 않은 콘택트렌즈 용액을 즉각 내놓았다.
러시아 밀주 보드카 사건과 콘택트렌즈 소독용액 사례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PHMG가 일정 수준 이상 농도에서는 간이나 각막 따위에 유해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는 술은 소화기관을 따라 몸에 흡수돼 전신을 돌다 간에서 해독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독성을 나타낼 수 있는 데 비해 가습기 살균제는 호흡기로 들어와 이것이 모세혈관을 타고 흡수돼 간에 독성을 끼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느냐는 것이다. 국내 연구진들은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PHMG에 방사성 동위원소 꼬리표를 붙여 이 물질이 인체 장기 어디로까지 흘러 들어가는지를 살피고 있다. 그 연구 결과에 따라 PHMG의 간독성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
한국환경회의, 발암물질 없는 사회만들기 국민행동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2016년 5월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촉구하는 국민선언'을 낭독한 뒤 가습기 살균제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
오랫동안 원인을 몰랐던 산모와 어린아이 집단사망을 일으킨 범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이 2011년 확인되자 영남대 조경현 교수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독성물질이 호흡기로 통해 들어왔다면 호흡기와 폐뿐만 아니라 혈액에 녹아 전신을 돌면서 다양한 장기에 독성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인간을 닮은 물고기란 별명을 지닌 제브라피시를 가지고 당뇨, 동맥경화, 혈관노화 등 질병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 물고기는 인간과 유전자 구조가 비슷해 생쥐·쥐에 이어 실험동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2012년 그는 당시 가습기 살균제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PHMG’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를 가정에서 사용하던 용량대로 넣은 물에 제브라피시를 풀어 독성을 관찰했다. 1시간 남짓 지난 뒤에 물고기들은 모두 죽었다. 죽은 제브라피시의 심장 조직을 분석한 결과, 심장 대동맥에서 콜라겐 섬유화가 급격히 진행됐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중증폐질환자의 돌연사 원인이 심장 대동맥 섬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 연구팀은 PHMG 제품을 10배 희석해 시험관에서 사람 피부세포에 처리한 결과, 세포의 절반 정도가 사멸하는 등 피부세포 노화도 촉진되고, 혈관 대식세포(大食細胞) 변형과 동맥경화 유발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대식세포는 면역을 담당하는 세포다. 이 세포에서 변형이 발생할 경우 각종 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 조 교수의 연구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호흡기와 폐질환 이외 다른 장기에서도 독성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문을 처음 연 것이었다.
조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일부가 자녀들이 정신지체를 겪거나 언어발달이 느리다고 직접 전자우편을 자신에게 보내오자 가습기 살균제가 뇌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보고 지난해 4월에는 제브라피시를 이용해 또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이 물고기들을 20마리씩 나눠 살균제 주요 성분인 PHMG와 PGH, CMIT 원액에 각각 넣은 결과 30분 만에 모두 죽었다. 죽은 제브라피시의 뇌를 해부하자 뇌에서 염증이 발견됐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제브라피시의 아가미 호흡을 통해 흡입돼 심장으로 전달되고, 심장에서 혈관을 타고 뇌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됐다. 염증은 인지기능과 감각기능, 특히 시각과 청각 등을 관장하는 중뇌에서 발견됐다. 제브라피시의 뇌는 인간의 뇌와 기능 및 구조가 유사하다. 각 성분의 농도를 10배 희석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염증 반응을 확인했다.
심장 대동맥 섬유화와 관련성 실험
애경 가습기메이트 등에 들어간 CMIT· MIT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인간의 중추신경에 독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연구는 이미 미국에서 오래전에 이뤄진 바 있다. 2002년과 2006년 미국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이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고농도에서는 신경세포가 죽고 저농도에서도 오랫동안 노출시키면 신경세포의 성장이 심각하게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자신의 연구결과와 외국의 이런 선행 연구결과를 토대로 죽은 물고기의 혈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가습기 살균제 물질들이 혈액을 따라 온몸으로 퍼져 전신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국내 다른 연구자들도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구조와 분자량 등으로 미뤄 인체 다른 여러 장기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제브라피시가 아니라 포유동물인 쥐를 대상으로 정부의 공식연구비를 받은 안전성평가연구소가 연구를 진행 중이므로 조만간에 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물론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제브라피시는 어디까지나 물고기일 뿐이다. 호흡 시스템이 인간과는 완전히 다르다. 또 제브라피시가 노출된 용량은 사람으로 치면 일상 사용량의 수천배가 될 수 있다. 제브라피시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독성이 인간의 다른 장기에서는 지금의 과학의 힘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수준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생존한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언어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도 그런 아이들을 여럿 만났다. 이것이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뇌에 끼친 독성 탓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조기사망에 따라 언어를 한창 배울 시기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인지를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자신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고 믿고 피해신고를 한 곽종미씨는 2008년과 2010년 태어난 첫째와 둘째 아이가 각각 심장 이상과 발달장애를 겪고 있다. 발달장애인이니 언어장애를 겪고 있다. 지적장애 3급을 받았다.
만약 호흡기로 들어온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혈액을 타고 전신을 돈다면 간이나 뇌, 심장뿐만 아니라 콩팥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콩팥 또한 인체 유해물질과 노폐물을 걸러주는 대표적 장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고를 해온 이들 가운데 신장 이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폐 이외 다양한 질환 호소자들을 대상으로 명확한 판정기준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깊어가고 있다. 이들이 호소하는 질환들은 너무나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호흡기질환이나 폐질환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가운데 비교적 많은 수가 호소하지만 신장질환이나 발달장애, 언어장애, 심장질환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이들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그 질환이 특이적이 아닌 한(실제로도 특이적이지 않음) 그만큼 가습기 살균제와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각 개인별 차원으로 넘어가 의학적 인과관계를 확정하려면 더욱 난감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호흡기와 폐 이외 질환에 대한 판정을 포기하거나 무한정 미룰 수는 없다. 최대한의 연구예산과 연구인력을 투입하고 이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 ‘안방의 세월호’,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병 참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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