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황영희 <3> 등록금 마련 위해 취직한 공장서 전도의 열매

정리=최기영 기자 2017. 3. 22. 00:2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신학교 3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이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출석하던 교회 목사님의 친구 분께서 내 상황을 듣고 등록금을 대신 내주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평소 장애를 딛고 신학을 공부하는 내 모습을 인상 깊게 지켜봐주던 분이었는데 새벽기도 중에 갑자기 어려움을 당한 내가 생각났다며 목사님께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그분께선 이어진 학기에도 등록금을 내주신다고 하셨지만 나는 "나보다 더 어려운 친구를 도와 달라"며 거절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범 보이자 나 따라 교회 가겠다 말해.. 장애 주신 이유, 장애인 섬기라는 뜻
황영희 선교사(오른쪽 첫 번째)가 1986년 공장 작업장에서 동료 직원들과 간식을 먹고 있다.

신학교 3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이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아버지 회사에 부도가 났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가세가 기울었다.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마당에 등록금 걱정은 사치였다. 하나님께 차마 돈 달라는 기도는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기도하고 눈물 흘리기를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당시 출석하던 교회 목사님의 친구 분께서 내 상황을 듣고 등록금을 대신 내주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평소 장애를 딛고 신학을 공부하는 내 모습을 인상 깊게 지켜봐주던 분이었는데 새벽기도 중에 갑자기 어려움을 당한 내가 생각났다며 목사님께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등록금 마감을 사흘 앞두고 온 연락이었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대학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분께선 이어진 학기에도 등록금을 내주신다고 하셨지만 나는 “나보다 더 어려운 친구를 도와 달라”며 거절했다. 물론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나는 대학생 신분을 숨기고 공장에 들어가 근로청소년 사역을 해야 했다.

공장의 첫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예쁘게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거리낌 없이 욕을 뿜어댔다. 신학교에 다니던 나로선 별천지 같은 광경이었다.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나는 공장에서 만난 친구들을 어떻게 전도할까 생각하며 사명을 갖고 일했다. 하지만 결코 녹록지 않았다. 공장 기숙사 방을 함께 쓰던 친구들에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넌지시 얘기했는데 어찌나 쌀쌀맞게 거절하던지 전도가 아니라 이 친구들과 같이 생활할 일이 더 걱정이었다.

전략을 바꿨다. 내 모습을 보고 교회를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의 아침을 깨우는 알람시계 역할을 자청했고 방 청소는 도맡아 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니 반응이 왔다.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친구들이 물어왔다. “근데 나 있지. 교회 가도 돼?”라고 말이다.

당시 매일 나이트클럽에 가는 어린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꼭 교회로 이끌고 싶었다. 그래서 볼 때마다 교회에 가자고 했지만 매번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계속 말하면 잔소리 같아 보일까봐 어느 날부턴 교회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그 친구를 위해 기도했다. 그는 한동안 교회 얘길 꺼내지 않던 내게 어느 날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나 포기하지 마.” 마음속으론 늘 내가 붙잡아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그 친구도 내 손을 잡고 교회에 다니게 됐다.

졸업할 때쯤엔 강화에 있는 그루터기학교에서 사역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면접까지 마치고 준비가 거의 끝나가던 상황이었다. 그곳에서 2년 정도 일하다가 케냐에 선교사로 갈 계획이었다. 동시에 어떤 집사님이 지역사회청소년센터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일이 뒤엉키면서 그루터기학교와 지역사회청소년센터 사역이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나는 또 다시 기도에 매달렸고 하나님은 ‘장애인 선교 사역’에 대한 응답을 주셨다. 베데스다선교회로부터 장애인 사역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나 자신이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사역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게 내 길입니까.’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내게 사람을 보내 응답을 주셨다. 알고 지내던 목사님께서 기도하다 갑자기 내 생각이 났다며 찾아오셨다. ‘요즘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셔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하나님이 왜 내게 장애를 주셨을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결심이 서는 순간이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전화:02-781-9711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