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쿠팡맨 '정규직 실험 3년'.. 성장통이냐 좌절이냐

성호철 기자 2017. 3. 2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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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쇼핑 기업 쿠팡은 3년 전 택배 기사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획기적 고용 실험을 시작했다. 하도급 계약을 맺고 상품 배송 한 건에 수수료를 700~800원씩 택배 기사에게 주는 다른 유통 기업과 달리, 택배 기사들을 정규직 쿠팡맨(배달 직원)으로 채용해 당일 배송 등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후 쿠팡은 고객 주문 후 쿠팡맨이 24시간 안에 제품을 배달해주는 ‘로켓 배송’을 내세워 연간 매출 1조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쿠팡의 적자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누적 기준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측은 “쿠팡맨 채용을 계속하겠다”고 밝히지만, 유통업계에서는 경영 상황이 나빠진 쿠팡이 정규직 택배 기사 체제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택배 기사를 제대로 대우해야 최상의 배송 서비스 가능”

하버드 대학 경영학 석사(MBA) 출신의 젊은 벤처인 김범석 대표는 쿠팡맨을 시작하면서 “고객을 직접 만나는 택배 기사를 제대로 대우해야 고객에게 더 친절하고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11월엔 쿠팡맨 성공을 확신한 듯 기자 간담회를 열고 “2017년 말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쿠팡맨 1만5000명을 채용하고 이 중 60%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쿠팡맨에 물류센터·고객센터 직원까지 합하면 2017년까지 3만9000명을 더 고용하겠다고 했다. 제품 배송을 외부 택배 기업에 맡겨왔던 기존 유통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내용이었다.

택배 기사 정규직 채용을 시행한 지 3년이 지난 현재 쿠팡은 택배 기사 36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3분의 1이 정규직이다. 6개월 지난 계약직 직원은 심사를 거쳐 정규직으로 바꿔준다. 직원 대우는 정규직과 계약직 간 차이가 없다. 쿠팡맨은 오전 8시에 출근하고 오후 8시에 퇴근한다. 주 5일 근무하고 연봉은 3200만~3800만원이다. 4대 보험, 연차휴가(15일), 정기 건강검진 등 복리 후생도 똑같이 지원된다.

31세 정규직 쿠팡맨 정현석씨는 “이곳은 내게 평생 직장”이라며 “휴일도 밤낮도 없이 일해봐야 차량 유지비 등 비용을 빼고 나면 월 200만~300만원을 손에 쥐는 다른 택배 기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 대우를 받는다”고 말했다. 정씨는 5년 전 전문대를 졸업하고 호텔·골프장 등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1년 반 전에 쿠팡에 입사했다. 올 1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쿠팡의 정규직 실험

쿠팡맨 배송 서비스는 회사 매출이 3년 새 5배 이상으로 급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쿠팡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 시장의 큰손인 여성 이용자의 구매가 큰 폭으로 늘었다”면서 “낯선 사람의 방문을 불편해하는 여성 고객들이 쿠팡맨을 보면 안심한다”고 말했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는 쿠팡맨은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춰 물건을 배달해주고, 집 안에서 낮잠 자는 아기와 여성들을 고려해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노크를 먼저 한다.

하지만 막대한 적자가 쿠팡맨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회사는 2015년 5261억원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작년에도 4000억~5000억원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 악화에는 연간 2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쿠팡맨 인건비(4대 보험, 복리 후생 등 포함)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쿠팡맨을 통한 직접 배송을 위해 전국 대형 물류센터 10여 곳과 각 지역에 촘촘하게 마련한 배송 거점 영업소를 운영하는 비용까지 합치면 연간 3000억~3500억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 전문가들은 쿠팡이 다른 온라인 쇼핑업체처럼 외부 택배업체에 배송을 맡기면 비용은 480억원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경쟁 업체인 티켓몬스터의 연간 물류 비용은 195억원이다. 티몬의 관계자는 “쿠팡의 거래액이 우리보다 크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쿠팡의 직접 배송 비용은 티몬의 7~8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옥션과 G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아예 배달 자체를 쇼핑몰에 입점한 판매업체에 맡긴다.

이 때문에 온라인 유통업계에서는 애초 쿠팡이 내세웠던 쿠팡맨 1만5000명 채용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현재 고용 규모를 유지하기도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온라인 쇼핑업체의 한 고위 관계자는 “택배 기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려는 시도는 높게 평가하지만 양질 서비스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결국 실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쿠팡맨을 유지하려면 매출 규모가 지금의 2~3배는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직접 배송에 따른 손실은 예상한 범위 안에 있는 ‘계획된 적자’”라고 밝혔다. 거래 규모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현금 흐름도 건전하다는 것이다. 소프트뱅크 등 해외 투자자로부터 14억달러(약 1조5500억원)를 유치한 것도 버팀목이 된다는 것이다. 쿠팡 관계자는 “미국 아마존이 10년 넘게 적자를 내면서도 온라인 시장을 장악했듯이 쿠팡도 차별화된 배송 서비스를 앞세워 국내 최대 온라인 쇼핑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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