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930년대 '3대 시인' 오장환이 쓴 일본어 시 첫 발굴

최재봉 입력 2017. 3. 21. 11:56 수정 2017. 3. 2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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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1918~1951·사진)이 일본어로 쓴 시 10편이 새로 발굴되었다.

이용악·서정주와 함께 1930년대 조선 시단의 3재(三才)로 일컬어졌던 오장환의 일본어 시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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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악·서정주와 30년대 '조선 시단 3재'
1934~35년 일본 시 동인지에 게재된 10편
구마키 쓰토무 후쿠오카대 교수가 발표

[한겨레]

오장환

오장환(1918~1951·사진)이 일본어로 쓴 시 10편이 새로 발굴되었다. 이용악·서정주와 함께 1930년대 조선 시단의 3재(三才)로 일컬어졌던 오장환의 일본어 시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시단> 표지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자 구마키 쓰토무 후쿠오카대 교수는 이달 말 발행되는 <지구적 세계문학> 봄호에 오장환이 1934~35년 일본의 시 동인지 <일본시단>에 발표한 ‘첫 화학실험’ 등 시 10편을 발굴해 소개했다. 이 가운데 <일본시단> 1934년 10월호에 실린 ‘시 No. 6’와 ‘시 No. 17’은 그에 앞서 조선의 한국어 잡지 <어린이> 1934년 2월호에 실렸던 ‘바다’ 및 <조선일보> 1934년 9월5일치의 ‘사진’과 사실상 동일한 작품이고 <일본시단> 1935년 2월호에 실린 ‘포로’는 미발표 유고로 알려진 장시 ‘전쟁’의 일부이지만, 나머지는 처음 확인된 작품이다.

<일본시단>에 실린 오장환의 일본어 시.

“Ad, balloom은 재주놀이를 한다./ 오층 지붕 위에 무대를 정하고서.”(‘시 No. 11’ 전문)

“화산이 폭발하였습니다.// 사랑은 석류 열매에 등불을 켜 나는 나의 어두운 방에 데려 갑니다.”(‘시 No. 1’ 전문)

구마키 교수는 오장환의 일본어 시를 소개하면서 “넓게는 모더니즘의 영향이 뚜렷하나 좁게는 가타가나와 히라가나의 표기법이나 비유와 기호 등의 사용법에서 전반적으로 당시 모더니즘의 기수였던 이상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오장환은 10대 중반이던 1933년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무렵 휘문고보에 다니며 정지용한테서 시를 배웠다. 1935년 1월 일본 유학을 위해 휘문고보를 자퇴한 그는 도쿄 지잔중학교를 거쳐 1937년 메이지대학 전문부 문과 문예과 별과에 입학했으나 1년 만인 1938년에 그만두고 귀국했다. 돌아와서는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서 남만서점을 경영하는 한편 출판 등록을 해서 자신의 제2시집 <헌사>와 김광균의 첫 시집 <와사등>, 미당 서정주의 첫 시집 <화사집> 등을 펴내기도 했다.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한 그는 이듬해 월북했으며 1948년 12월 지병인 신장병 치료를 위해 모스크바로 떠났다가 이듬해 귀국해 소련 기행 시집 <붉은 기>를 내기도 했으나 결국 전쟁 중인 1951년에 신장병으로 숨졌다.

모더니즘으로 출발한 오장환은 “저무는 역두(驛頭)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The Last Train’)에서 보듯 낭만주의적 시풍을 거쳐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 의식으로 나아간 흥미로운 시인이다.

오장환의 마지막 시집 <붉은 기>를 발굴했으며 2002년 <오장환 전집>을 엮은 국문학자 김재용 원광대 교수는 “일제강점기 시인들 대부분이 일본어로 쓴 시가 남아 있는 반면 오장환은 그간 일본어 시를 확인할 수 없었는데, 이번 발견은 오장환이 일본어 시를 쓸 능력이 있음에도 일제 말기에 의도적으로 일어 시를 쓰지 않고 버텼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설적인 증거”라며 “특히 장시 ‘전쟁’의 지은이가 오장환이라는 사실은 그동안은 김광균 등의 증언에만 의지했었는데, 이번 ‘포로’ 발견으로 그 사실을 확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문학사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지구적 세계문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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