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서경씨의 #오늘도_출근] 어른들은 겁이 많다?

정수현 기자 입력 2017.03.21. 10:00

"서경아, 조만간 저녁 먹을래?" 갑자기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넉살 좋고 농담도 잘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은 잘 구하지 않는 친구였다.

어떻게 지내는지 간단하게 얘기한 뒤 나는 친구의 고민을 물어봤다.

약 이 주 정도 흐르고 다시 친구에게 연락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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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서경아, 조만간 저녁 먹을래?” 갑자기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넉살 좋고 농담도 잘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은 잘 구하지 않는 친구였다.

평소답지 않은 친구의 요청에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그래. 빨리 보자”
직접 얼굴을 보고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우린 두 직장 사이 적당한 위치의 인도 식당을 예약해 퇴근 후 저녁 8시쯤 만났다.

얼핏 봤을 땐 별문제 없이 건강한 얼굴색이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간단하게 얘기한 뒤 나는 친구의 고민을 물어봤다.

“왜 무슨 일이야~. 다 말해봐”

각자 다른 성격의 회사,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가 없어 보다 자세한 묘사가 필요했다.

“우리 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어. 한 3~4명 정도 진행하는 건데 과장 한 명, 대리 한 명, 그리고 나, 후배 한 명이야. 그런데 평소 과장이나 대리와 그렇게 친하지 않았거든. 두 분은 서로 굉장히 친해. 그래서 내가 중간에서 나만 정보를 모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몇 번 살갑게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돼. 말할 때마다 스타일이 너무 달라 자꾸 부딪히려고 그래. 아마 나에 대한 이야기도 할 것 같은데 그게 좀 마음이 쓰인다.”

차분하게 설명을 마친 친구.

답답한 듯한 기분이 느껴져 자연스레 상황에 몰입됐다.

감정적으로 말하기보다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래도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넘기고 있어. 괜히 말 꺼내면 후회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 점점 그런 경험이 쌓이는 것 같아”

평소 우린 아니면 아니다, 맞으면 맞다, 시원시원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학교 생활을 할 때도 학교 일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알리는 일에 열성적이었고, 집단 간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도 솔선수범해서 대화를 즐기는 편이었다.

참는 것은 미덕이 아니고 용기가 없는 것이며, “잘못됐다”고 지적하지 않으면 올바른 방향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닌 것을 보고 넘기는 정치인, 주변 어른들을 보면서 겁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날 우린 자리에서 누구도 고개를 젓지 않았다.

약 이 주 정도 흐르고 다시 친구에게 연락을 해봤다.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응 나는 그래도 많이 괜찮아졌어. 그때 얘기해서 속이 풀리기도 한 것 같고, 그다음부터는 별로 신경이 안 쓰이더라고! 그러니깐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고 서로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 참아보길 정말 잘했어!”

한편으론 우리가 많이 변한 것 같아 씁쓸했지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학교, 동아리라는 울타리에서 낭만을 쫓던 시기를 벗어나 회사라는 공간에선 조금 삶을 대하는 자세도 바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상대에 대해 깊이 이해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이미 자기가 경험한 생각의 틀을 놓지 않는 조금 위험한 습관이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이해가 안돼도 심호흡하고 이겨내 보라는 주변 어른들의 말이 이해가 됐다.

그럼 순간적으로 죄 없는 상대와 부딪힐 일도 훗날 후회할 일도 적다. 그건 겁이 많은 것이 아니었다.

이번 주말에는 다른 친구가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다가 발견한 글인데 좋아서 공유한단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지 글로 적어봐요”

한 익명의 상담자가 잡지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직장 카운슬러가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글들이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대한, 직장생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다.

“<만일 직장에서 갈등이 생기면>

어떤 분이 직장에서 갈등이 생기면 ‘또 힘든 순간이 왔구나’ 하면서 자기를 돌아보려고 하는데 마음에 상처가 남는대요.

왜 상처가 남을까요? 갈등이 생기면 ‘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데, 이미 힘든 순간이라고 스스로 정해버렸잖아요.

갈등은 힘든 일이 아닙니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이지 힘든 일은 없습니다.”

서경씨는 웃으면서 글들을 핸드폰에 저장했다.

‘다 저장해놔야지ㅋㅋ 다음엔 내가 이 글들에 크게 공감할 날이 오겠지’

/정수현기자 value@sedaily.com

‘#오늘도_출근’은 가상인물인 32살 싱글녀 이서경 대리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우리 모두의 직장 생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