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후의 직장 처방전] 솔직하게 말했다가 팀장에게 완전히 찍혔어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 3. 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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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후배 녀석이 술 한 잔 사달라며 찾아왔습니다. 이런저런 안부가 오가며 술 한 병을 비울 즈음, 드디어 저를 찾아온 본론을 꺼내더군요. 이야기인즉 팀장이 자기가 낸 제안서에 대해 솔직하게 평가해달라고 해서 정말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했더니 다음날부터 자신을 ‘돌아이’ 취급하더란 겁니다. 평소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수년간 함께 일하며 어느 정도 신뢰가 쌓였다고 생각했기에 팀장의 행동이 더 충격이었다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남 눈치 안 보고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요즘 에코 세대에게는 낯선 풍경일 겁니다. 솔직하게 말하라고 해서 시킨 대로 했을 뿐인데 치사하게 해코지를 하다니, 정말 이해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그렇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직언이 상사에게 통하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거든요.

직언은 신뢰받는 직원의 특권이다

직장인이 갖춰야 할 직언의 필수 조건 첫 번째는 상사의 ‘신뢰’입니다. 한마디로 직언은 상사에게서 두터운 신임을 받는 직원만의 특권이라는 겁니다.

‘충언역이(忠言逆耳)’라는 말처럼 충언은 귀에 거슬리는 법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뾰족한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면 엄청난 신뢰가 필요하죠. 중국 법가의 고전인 ‘한비자’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괜한 충언으로 군주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칭찬하는 말로 잘 달래라는 겁니다. 현명한 군주가 아니면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바로 듣지 않을 것이고, 어리석은 군주에게 충언하는 것은 죽임을 당하는 지름길이라는 거지요.

자고로 입에 쓴 약은 몸에 이로운 약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삼킬 수 있는 법입니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하는 쓴 소리는 그저 쓰게만 들릴 뿐입니다. 상사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직언은 안 하는 게 낫습니다. 베테랑 직장인들이 직언을 꺼리는 것도 어차피 바른 말을 해봤자 통하지도 않고, 괜히 밉보여서 내쫓길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조용히 자리보전이나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겁니다.

만약 상사에게 직언을 하고 싶다면 우선 ‘감언지지(敢言之地)’를 떠올려보세요. 자신이 거리낌 없이 말해도 되는 처지와 자리인지 판단해보라는 겁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윗분의 트라우마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내용을 직언하게 되면 더 큰 화를 불러올지도 모르니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저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여러 기업에서 법무실장을 오랫동안 맡으면서 글로벌 합병이나 인허가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 껄끄러운 보고를 숱하게 많이 했지요. 얼마 전부터는 ‘한국CLO스쿨’에서 ‘사내 변호사의 리스크 관리’에 대해 강연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내 변호사는 업무상 회사의 리스크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관건은 경영자에게 가감 없이 직언 보고를 할 수 있느냐 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정확한 보고를 할 수 있느냐가 결국 회사 전체의 법적 리스크 관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제가 ‘한국CLO스쿨’에서 진행하는 사내 리스크 관리의 강연 핵심은 바로 ‘대안(alternative)’입니다. 직언의 두 번째 조건, 바로 직언과 대안은 반드시 세트로 제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직언과 대안은 세트 메뉴다

상사들이 직언을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직언의 내용이 골칫덩이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이거나, 막대한 자원이 소요되는 대규모 일이거나, 프로젝트 중단처럼 엄청난 손해가 따르는 판단을 요구하는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상사들이 직언하는 직원에게 이렇게 되묻는 겁니다. 너의 생각은 어떠냐고 말이죠. 그럴 때 우리의 대답은 어때야 할까요? 직언과 함께 솔루션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언과 대안은 비단 직장상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객이나 파트너 회사도 마찬가지지요. 글로벌 마케팅 대행 및 홈페이지 제작 기업인 ‘핸섬피쉬’가 좋은 사례일 겁니다. ‘핸섬피쉬’는 한국 클라이언트의 요청으로 뉴욕의 명성 있는 마케팅 회사와 웹사이트 및 SEO 마케팅 협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내놓은 웹사이트 시안 디자인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보통은 뉴욕 회사의 시안대로 진행했을 테지요. 자칫 명성에 밀려 망신을 당하거나 부정적인 평판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핸섬피쉬’ 김지연 대표는 자신의 판단대로 뉴욕 회사에 의견을 부드럽게 그러나 날카롭게 전달했고, 그 대안으로 ‘핸섬피쉬’가 만든 개선 디자인을 제시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얼마 후 서울을 방문한 클라이언트사의 뉴욕 지사장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들었답니다. 그 이후 한국 클라이언트사가 ‘핸섬피쉬’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핸섬피쉬’ 고객사 가운데 10년 이상 거래해온 업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견고한 직언과 실력 있는 대안으로 신의를 쌓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객과 협력사에게도 올바른 직언과 대안은 입에 삼키고픈 쓴 약인 법입니다. 가장 나쁜 직언은 고민과 갈등만 던지고 자신은 쏙 빠져나가는 겁니다. 대안 없이 문제만 지적하는 직언은 상사나 고객에게 무책임한 비난과 다를 바가 없지요. 직언을 하기에 앞서 꼭 필요한 이유를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고, 상사나 고객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자신이 있으면 그때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 현명하게 점수를 따는 방법입니다. 상사나 고객의 의중을 헤아려 듣는 상대가 탐탁해할 대안을 제시해야 비로소 직언이 가치 있게 쓰일 수 있습니다. 직언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문성후 Hoo소스 대표/미국 뉴욕주 변호사회원/<누가 오래가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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