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절대 결혼 안 해

이민경 입력 2017. 3. 2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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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육아 예능’에 이어 가상 결혼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늘었다 했다. 모든 프로그램이 ‘의도’로만 만들어졌다고 볼 순 없지만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만도 없다. 최근 논란이 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제13차 인구포럼’ 보고서를 보면 심증은 굳어진다.

휴학이나 해외 연수처럼 불필요한 스펙을 쌓게 해서 채용에 불리하게 하기, 가상현실 배우자 탐색 기술을 대학에 보급하기, 하향 선택 결혼을 하도록 문화적 콘텐츠를 만들되,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진행하기.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거센 비판을 받았고, 논란을 초래한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자진 사퇴했다.

우리는 결혼을 많이 한다. 애초에 결혼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 결혼할 생각이 없는 인구가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50세 시점에서 한 차례도 결혼한 경험이 없는 인구 비율인 ‘생애미혼율’로 따지자면 한국은 2010년 기준 여성 2.8%, 남성 5.8%에 불과하다. 일본은 같은 해 여성 10.6%, 남성 20.1%, 미국은 2012년 기준 여성 17%, 남성 23%였다. 심지어 모든 나라에서 남성이 미혼으로 남는 비율이 더 높다. 그런데도 아이를 여성이 낳는다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

ⓒ정켈 그림

문제의 보고서에서도 인정하듯, 기혼자의 출산율 변화는 크지 않았다. 2015년 총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3000명 늘었고, 여성 1명의 합계출산율은 2015년 기준 1.24명으로 전년 대비 오히려 2.8% 증가했다. 비혼 인구가 늘어났다고 한들,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수가 결혼하고 결혼한 여성은 아이를 낳는다.

살아 있다면 그렇다. ‘저출생’의 원인은 20~30대 여성 인구가 절대적으로 적은 데에서 찾아야 한다. 고작 20~30년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용띠니 백말띠니 하는 이유로 태어나기 전에 낙태당하는 여자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때 죽어버린 여자아이들이 지금 출산할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이 원인을 모른 척한 건지, 모른 채 국책기관으로서 연구를 진행한 건지 둘 중 무엇이든 문제다.

또한 고학력·고소득 여성을 주원인으로 지목하기엔 고학력은 몰라도 고소득 여성이 터무니없이 적다.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가장 크며 평균의 2배다. 그러니 이들이 겨냥하는 여성의 고소득이 실제 고소득이라기보다 ‘혼자 벌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을 일컫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극소수의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결혼 시장을 대거 이탈했다는 점만은 정확히 짚었다.

여성에게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무엇’

그들을 그 집단에 속하게 한 강력한 동인 중 하나가 바로 그 ‘결혼 시장 이탈’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걸까. 한국 여성은 결혼에 대한 온갖 압박 속에 불안을 품고 자라난다. 불안은 한번 벗어나기가 어렵지 벗어난 뒤에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 발에 차이듯 널려 있는 ‘불행한 결혼’의 사례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학습시킨다. 혼자로도 완전할 수 있고, 누군가와 관계 맺고 살고 싶은 욕구를 꼭 이성애 중심의 결혼제도 안에서만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낡은’ 제도에 편입되기를 명령하기보다 제도 바깥에서 생겨나는 관계들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성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결혼이 자칫하면 여성을 어디로 몰고 갈 수 있는지 이미 알기에, 부당한 대우를 견뎌가면서까지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웬만한 여성들에게 결혼은 이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무엇’이 됐다. 그런 마당에 대책이랍시고 나온 게 ‘잉여 남성의 혼사를 위해 여성이 눈을 낮추라’는 말로 들리다니…. 차라리 남성을 결혼에 적합한 상대로 ‘개조’시키는 일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더 배우고 더 버는 여성을 부담스러워하는 남성을 그대로 두고 둘 간의 매칭이 가능하기라도 한가.

가임기 여성 지도(대한민국 출산 지도)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정책을 보면 저출산을 해결하려는 정책인지 저출산을 독려하는 정책인지 헷갈린다. 각자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두고, 그대로도 충분히 살 만하게 하라. 대책 수립은 그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민경 (작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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