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죽음 부르는 데이트 폭력②]갈수록 흉포해진 '폭력' 대체 왜?

박성환 입력 2017.03.21. 05:52 수정 2017.03.2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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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사랑싸움'…가해자 처벌 스스로 포기
가해자 전과자 비율↑…재범 우려 높아
상대방 전과 조회 가능한 '한국판 클레어법' 도입해야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스토킹, 감금, 납치, 협박, 폭행, 염산 테러, 성추행·성폭행, 언어·정서적 학대….

최근 여러 가지 유형의 데이트 폭력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연인 사이의 빗나간 애정은 목숨마저 앗아가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연인과 헤어질 때 아무 탈 없이 헤어진다는 이른바 '안전 이별'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데이트 폭력은 엄연한 범죄임에도 연인 간 '사랑싸움'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사회적 인식 역시 문제다. 이 때문에 차마 사법기관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거나 피해자 스스로 가해자 처벌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여성 가운데 절반 이상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15년 12월에 발표한 데이트 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여성 413명 중 245명(59.5%)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중 단 14명만 경찰에 신고했다.

성추행의 경우에는 총 369명 중 276명이, 성폭력은 총 56명 중 39명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성추행은 불과 4건, 성폭력은 단 1건만 경찰에 신고했다.

또 데이트 폭력 가해자 중 전과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5년부터 10년 간 연인을 대상으로 한 살인이나 성폭력 등 4가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가운데 76.6%가 전과자였고, 초범인 경우는 23%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연인을 살해한 피의자 중 35%가 '성장 시 가족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고, 36%는 '어릴 적 학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을 대상으로 데이트 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연인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집착하는 심리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인천 나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성용 과장은 "연인이라는 친밀한 관계는 자신의 연인을 소유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고, 데이트 폭력 역시 고유한 사랑 방식이라고 착각해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박 과장은 이어 "연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데이트 폭력은 1회에 그치지 않고, 여러 번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며 "데이트 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연인에 대한 불신이 곧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현장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112시스템에 데이트 폭력 코드를 신설해 출동한 경찰관이 이를 사전에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출동 경찰관이 가해자에게 경고장을 발부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놨다.

경찰의 이번 대책이 현장 대응력을 강화한다지만, 뒷북 조치라는 비판과 함께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이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후 해결이 아닌, 사전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데이트 폭력 코드 신설이나 경고장 발부 등도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실질적인 법적 지원 없이 추진되고 있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데이트 폭력은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스토킹이나 이별 범죄 등은 데이트 폭력이라는 공통 범주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이 같은 범죄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데이트 폭력 사전 예방을 위해 상대방에 대한 폭력범죄 전과를 조회할 수 있는 이른바 '한국판 클레어법'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클레어법은 지난 2009년 클레어 우드(Clare Wood)라는 영국 여성이 인터넷 연애 사이트에서 만난 남자친구의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제정됐다. 지난 2014년 3월부터 영국 전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당사자가 폭력 행사 가능성이 있는 연인의 전과기록을 조회하도록 요청하면, 경찰 및 관련 전문가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 기록 제공 여부를 결정한다.

영국은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을 위한 행동 계획의 일환으로 클레어법과 가정폭력보호명령을 시행, 데이트 폭력 사전 예방에 일정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94년 제정된 여성폭력방지법(Violence Against Women Act)에서 데이트 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의 하나로 규정했다. 이후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해왔다.

또 대학 캠퍼스 내 데이트 폭력 근절을 위해 오바마 정부는 지난 2013년 여성폭력방지법 개정을 단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캠퍼스 내에서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 성폭력, 스토킹 등의 발생 건수를 집계해 교육부에 매년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국내에서도 한국판 클레어법이 도입이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지난 4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 등 여성폭력 근절 대책을 대선 공약을 내놨다.

심 대표는 지난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3대 신종 여성 폭력인 데이트폭력과 스토킹, 디지털성범죄를 근절하겠다"며 "'스토킹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해 피해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또 "가정폭력전과공개제도(클레어법)를 도입하고, 데이트폭력은 재범률이 월등히 높은 범죄"라며 "교제 상대방의 폭력 전과를 경찰에 문의하거나, 사전에 위험성을 인지한 경찰이 잠재적 피해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도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sky0322@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