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총수일가 5명, 한 법정서 '어색한 만남'

신수지 기자 2017. 3. 2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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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분쟁 2년 3개월만에 모여]
신격호 총괄회장 "여기 어디냐" "왜 이런 재판 하냐" 외치기도
퇴정 명령 듣지않고 버티자 신영자·신동빈·서미경 끝내 눈물

20일 오후 2시 25분 서울중앙지법 312호 법정에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들어섰다. 휠체어에 탄 신 총괄회장은 무릎에 회색 담요가 덮여 있었고, 오른손엔 빨간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는 이날 열린 롯데그룹 총수 일가(一家)의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등에 관한 첫 공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피고인석 첫째 줄에 앉아있던 장남 신동주(63)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차남 신동빈(62) 롯데그룹 회장이 부친인 신 총괄회장의 등장을 지켜봤다. 형제는 2014년 말부터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날 두 형제는 변호사를 사이에 두고 앉아 눈길도 마주치지 않았다. 피고인석 둘째 줄엔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서미경(57)씨와 상아색 수의(囚衣)를 입은 장녀 신영자(75)씨가 앉았고, 신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과 가까운 피고인석 맨 끝에 자리했다. 롯데 경영권 분쟁 후 총수 일가가 2년 3개월여 만에 법정에서 만난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재판 출석 후 30여 분 만에 퇴장했다. 재판장이 신 총괄회장에게 "정면을 봐 달라"고 했지만, 신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일본어로 물었다. 신 총괄회장은 생년월일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도 "여기가 어디냐" "이게 무슨 일이냐"는 말을 되풀이했다. 재판장이 "피고인이 지금 재판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변호인에게 곧바로 혐의에 대한 의견을 밝혀 달라고 했다.

변호인이 의견을 밝히는 동안에도 신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에게 계속 질문을 했고, 신동빈 회장은 "누나(신영자)와 형(신동주)에게 일하지 않았는데 급여를 준 문제로 검찰이 기소를 했다"고 수차례 설명했다. 변호인이 말을 끝내자 신 총괄회장은 재판부를 향해 "롯데는 내가 만든 회사인데 왜 이런 재판을 하느냐"고 소리쳤다. 결국 재판장은 신 총괄회장에게 퇴정을 명했다. 곧바로 비서진이 피고인석으로 달려와 신 총괄회장의 혈압을 측정했다. 신 총괄회장은 나가지 않으려 버티다 마이크를 바닥에 내던지기도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신영자씨와 서미경씨는 눈물을 쏟았고, 신동빈 회장도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이날 재판에는 30년 넘게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서미경씨가 출석했다. 1977년 제1회 '미스 롯데'로 선발돼 연예인으로 활동하던 서씨는 1980년대 초 돌연 활동을 중단했고, 1983년 신 총괄회장과의 사이에 딸 신유미씨를 낳았다. 서씨는 지난해 6월 롯데그룹 수사가 시작되자 일본으로 출국해 검찰의 거듭된 소환 요구에도 응하지 않다가 지난 19일 첫 공판 출석을 위해 귀국했다. 서씨가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36년 만이라고 한다.

롯데 총수 일가는 이날 모두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미뤘다. 신 총괄회장 측 변호인은 "신 총괄회장은 고령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라며 "정책본부와 계열사가 처리한 구체적·개별적 상황에 대해 신 총괄회장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한지 살펴봐 달라"고 했다. 그간 정책본부를 총괄해 온 신동빈 회장을 사실상 겨냥한 것이다.

반면 신동빈 회장 측은 총수 일가에 수백억원대 공짜 급여를 지급하고, 영화관 매점 운영권을 서미경씨 등에게 헐값에 넘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와 관련해 모든 책임이 신 총괄회장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신동빈 회장 측은 "자식 된 도리로 참 곤혹스럽다"면서도 "신 총괄회장이 남몰래 서씨 등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려는 차원에서 직접 구체적인 지시를 모두 내렸고, 이와 관련해 신동빈 회장과는 단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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