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총수일가 5명, 한 법정서 '어색한 만남'
신격호 총괄회장 "여기 어디냐" "왜 이런 재판 하냐" 외치기도
퇴정 명령 듣지않고 버티자 신영자·신동빈·서미경 끝내 눈물
20일 오후 2시 25분 서울중앙지법 312호 법정에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들어섰다. 휠체어에 탄 신 총괄회장은 무릎에 회색 담요가 덮여 있었고, 오른손엔 빨간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는 이날 열린 롯데그룹 총수 일가(一家)의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등에 관한 첫 공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피고인석 첫째 줄에 앉아있던 장남 신동주(63)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차남 신동빈(62) 롯데그룹 회장이 부친인 신 총괄회장의 등장을 지켜봤다. 형제는 2014년 말부터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날 두 형제는 변호사를 사이에 두고 앉아 눈길도 마주치지 않았다. 피고인석 둘째 줄엔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서미경(57)씨와 상아색 수의(囚衣)를 입은 장녀 신영자(75)씨가 앉았고, 신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과 가까운 피고인석 맨 끝에 자리했다. 롯데 경영권 분쟁 후 총수 일가가 2년 3개월여 만에 법정에서 만난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재판 출석 후 30여 분 만에 퇴장했다. 재판장이 신 총괄회장에게 "정면을 봐 달라"고 했지만, 신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일본어로 물었다. 신 총괄회장은 생년월일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도 "여기가 어디냐" "이게 무슨 일이냐"는 말을 되풀이했다. 재판장이 "피고인이 지금 재판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변호인에게 곧바로 혐의에 대한 의견을 밝혀 달라고 했다.
변호인이 의견을 밝히는 동안에도 신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에게 계속 질문을 했고, 신동빈 회장은 "누나(신영자)와 형(신동주)에게 일하지 않았는데 급여를 준 문제로 검찰이 기소를 했다"고 수차례 설명했다. 변호인이 말을 끝내자 신 총괄회장은 재판부를 향해 "롯데는 내가 만든 회사인데 왜 이런 재판을 하느냐"고 소리쳤다. 결국 재판장은 신 총괄회장에게 퇴정을 명했다. 곧바로 비서진이 피고인석으로 달려와 신 총괄회장의 혈압을 측정했다. 신 총괄회장은 나가지 않으려 버티다 마이크를 바닥에 내던지기도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신영자씨와 서미경씨는 눈물을 쏟았고, 신동빈 회장도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이날 재판에는 30년 넘게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서미경씨가 출석했다. 1977년 제1회 '미스 롯데'로 선발돼 연예인으로 활동하던 서씨는 1980년대 초 돌연 활동을 중단했고, 1983년 신 총괄회장과의 사이에 딸 신유미씨를 낳았다. 서씨는 지난해 6월 롯데그룹 수사가 시작되자 일본으로 출국해 검찰의 거듭된 소환 요구에도 응하지 않다가 지난 19일 첫 공판 출석을 위해 귀국했다. 서씨가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36년 만이라고 한다.
롯데 총수 일가는 이날 모두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미뤘다. 신 총괄회장 측 변호인은 "신 총괄회장은 고령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라며 "정책본부와 계열사가 처리한 구체적·개별적 상황에 대해 신 총괄회장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한지 살펴봐 달라"고 했다. 그간 정책본부를 총괄해 온 신동빈 회장을 사실상 겨냥한 것이다.
반면 신동빈 회장 측은 총수 일가에 수백억원대 공짜 급여를 지급하고, 영화관 매점 운영권을 서미경씨 등에게 헐값에 넘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와 관련해 모든 책임이 신 총괄회장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신동빈 회장 측은 "자식 된 도리로 참 곤혹스럽다"면서도 "신 총괄회장이 남몰래 서씨 등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려는 차원에서 직접 구체적인 지시를 모두 내렸고, 이와 관련해 신동빈 회장과는 단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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