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오지마, 방사능 나와".. 설움당하는 후쿠시마 난민

김선엽 기자 2017. 3. 2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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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사고 6년.. 계속되는 고통]
청소년들 학교서 집단 따돌림.. "곧 죽겠네" 언어 폭력 시달려
성인들도 직장서 불이익 받거나 결혼 상대 찾는 데 어려움 호소
정신고통 호소한 일부 피난민들, 국가 상대 배상소송서 이기기도

"넌 후쿠시마에서 왔으니까 조금 있으면 백혈병 걸려 죽겠다."

지난 1월 12일 도쿄전력(Tepco)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판에 원고로 참석한 한 초등학생의 어머니는 "아들이 후쿠시마에서 전학을 왔다는 사실만으로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들으며 수년간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이 학생의 담임도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중학교 들어가면 죽을 수 있다"고 제자에게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직도 후쿠시마 출신이란 사실 때문에 날마다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면서 "(일본) 사회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11일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6년이 됐다. 그러나 후쿠시마를 떠나 다른 지역에 정착한 피난민들은 차별과 따돌림을 당하며 '원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보도했다.

아사히신문과 아키라 이마이 후쿠시마대 공공정책과 교수가 지난 1~2월 후쿠시마 원전 피난민 3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0% 이상이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 또는 따돌림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후쿠시마 원전 피난민은 지난 1월 기준 8만여 명이다.

특히 원전 사고와 피해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지메'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후쿠시마 피난민 중 18세 미만 어린이·청소년은 9000여 명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교육위원회가 국공립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후쿠시마 출신 학생을 대상으로 한 집단 따돌림이 44건 접수됐다.

일본 니가타현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유스케(가명·11)군은 2011년 3월 원전 사고 피해를 입은 고향 후쿠시마현을 떠나 니가타에 정착했다. 5년 동안 유스케군이 후쿠시마에서 전학 왔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원전에 관한 학급 토론에서 유스케군이 원전 사고에 대해 자세히 말하면서 그가 '후쿠시마 피난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유스케군은 학교에서 지속적인 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담임이 유스케군을 '세균'이라고 부르면서 따돌림에 합세한 사실이 지난 12월 추가로 밝혀지면서 일본 사회는 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해 11월 요코하마에 사는 한 중학생이 후쿠시마 피난민이라는 이유로 수년간 150만엔(약 1500만원)을 갈취당하는 등 괴롭힘을 당해온 사실이 일본 언론에 폭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유스케군은 현재까지 등교를 거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후쿠시마를 떠나온 성인들도 2명 중 1명꼴로 일상에서 괴롭힘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NHK가 발표한 설문 조사(타 지역으로 이주한 후쿠시마 피난민 741명 대상)에 따르면, 질문에 답한 피난민 중 45.1%(334명)가 "이주한 곳에서 괴롭힘을 당해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중 일부는 "피난민이라는 이유로 동네 행사에 끼워주지 않았다" "피난민이라며 누군가가 자동차를 망가뜨렸다" "피해 보상금을 받았으니 (새 직장에서) 일할 자격이나 급여를 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도쿄 인근 지바현으로 이주한 회사원 유키(여·32)씨는 "아직도 후쿠시마 사람들에 대한 무분별한 유언비어가 전국에 떠돌고 있어 억울하다"면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고, 결혼 상대를 찾는 게 어려워질 수 있어서 후쿠시마 출신이란 사실을 아예 숨기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군마현 마에바시 지방재판소는 군마현에 피난한 후쿠시마 출신 137명(45가구)이 "원전 사고로 생활 기반을 잃어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며 국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원고 중 62명에게 3855만엔(약 3억 9056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원전 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한 첫 법원 판결이었다. 그러나 일본 사회학자들은 "법적인 보상도 중요하지만, 원전 피해에 대한 정확한 교육과 사회의 인식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후쿠시마 피난민들의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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