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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노무현 불행' 끄집어낸 한국당, 보수 가치 더는 훼손 말라

입력 2017.03.21 03:04 수정 2017.03.21 22:07 댓글 0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어제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뇌물수수 의혹의 모든 진상이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은폐됐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민정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비리를 막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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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어제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뇌물수수 의혹의 모든 진상이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은폐됐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민정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비리를 막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전날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를 끄집어낸 발언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정 원내대표의 발언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출마로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주장을 사실상 되풀이한 것이다. 홍 지사는 그동안 문 전 대표를 향해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막말을 했다. 자신의 ‘성완종 게이트’ 대법원 판결이 유죄가 나오면 “노 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자살을 ‘검토’한다니, 이런 수준 낮은 언행을 하는 사람이 어제 한국당 2차 경선 컷오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홍 지사는 ‘자살’이란 표현 대신 ‘극단적 선택’으로 바꾸겠다고 했지만 “의로운 죽음이 아니었다”고 거듭 문제를 삼았다.

정 원내대표가 홍 지사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친노(친노무현) 세력을 싸잡아 비난한 것은 당이 전면에 나서 보수 대 진보의 대립 구도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물론 문 전 대표가 ‘적폐 청산’을 주장하기에 앞서 자기 쪽의 부끄러운 과거부터 되돌아보라는 정 원내대표의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자기만 깨끗한 척하며 남을 싸잡아 청산 대상으로 모는 문 전 대표와 민주당의 인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도 할 말, 안 할 말은 가려야 한다.

우리는 오늘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또 한 명의 실패한 대통령을 지켜봐야 한다. 한국당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책임을 함께 져야 할 여당이었다. 통렬한 반성을 못 하겠다면 침묵이라도 지켜야 한다. 당장 눈앞의 선거를 의식해 불행한 역사를 끄집어내는 것은 비겁하다. ‘정통 보수’를 내세우는 한국당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도덕성의 잣대로 존엄과 권위를 중시하면 보수주의 성향, 공정과 배려를 중시하면 진보주의 성향으로 구분한다. 보수라면 과거의 상처까지 들추며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천박함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