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3대 의제-①돌봄]민간에 맡긴 돌봄, 수익 만능에 개인 부담만 키웠다

홍진수 기자 2017. 3. 2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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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돌봄의 시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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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돌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급속히 시장화되고 있다. 남성이 생계를 부양하는 전통적 가정이 해체되면서 전업주부가 주로 담당해 온 각종 돌봄의 공백을 민간 시장이 메우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여전히 가족 책임으로 돌린 채 돌봄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시장에 맡겨진 각종 돌봄은 서비스의 질이나 가격에 대한 적절한 관리 없이 고스란히 개인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전체적인 돌봄의 로드맵을 다시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 산후조리부터 노인 요양까지 시장에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산후조리는 가정이 맡았던 역할이다. 그러나 2009년까지만 해도 정부 조사에서 빠져 있었던 산후조리원 이용률은 절반을 훌쩍 넘겨 5년 전부터 가정에서 몸조리를 하기보다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산모가 더 많아졌다. 지난해 7월10일 공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 출산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산후조리원은 임산부 10명 중 6명(59.8%)이 아이를 낳은 뒤 이용할 만큼 일반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산후조리원 617개가 영업 중이다. 그러나 이 중 공공산후조리원은 6곳에 불과하다. 단태아·2주·일반실을 기본으로 가장 싼 곳은 70만원, 가장 비싼 곳은 800만원을 받았다. 산모들은 ‘다양한’ 가격과 서비스를 시장에서 고를 수 있다. 비용은 100% 본인 부담이다.

태어난 아이를 키우는 일 역시 시장의 몫이 70% 이상이다. 0~2세까지 어린이집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어린이집 수는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그러나 2015년 기준 전체 어린이집 대비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율은 6.2%에 불과했다. 대신 민간이 72.8%를 차지했다. 국공립에서 담당하고 있는 보육아동비율도 11.4%로 10명 중 1명만이 국공립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1995년에서 2015년까지 20년간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이 전체의 26.8%에서 11.4%로 반토막 나는 사이 소규모 민간 어린이집인 가정 어린이집의 비율은 14.3%에서 23.7%로 급증했다.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 초등 저학년의 경우 정부가 지원하는 초등돌봄교실 참여율은 2016년 현재 5%가 채 되지 않는다. 그대로 ‘학원 뺑뺑이’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가족의 손길이 미치지 못할 경우에 찾는 개인간병서비스도 급성장했다. 2006년 사업체 339개와 종사자 3110명에서 2014년 사업체 3294개와 종사자 6만7287명으로, 사업체와 종사자 수가 각각 약 10배, 20배 이상으로 팽창했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2007년 시작할 때부터 정부는 ‘요양서비스’보다는 ‘일자리 창출’에 더 많은 무게를 뒀다. 2015년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장기요양기관 1만8002개 중 민간이 운영하는 곳이 1만7782개로 98.8%를 차지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은 1%를 약간 넘는 220개에 불과하다. 요양기관의 정원도 민간이 19만1611명(95.1%)으로 지자체가 설립한 기관(9832명)을 압도한다. ‘노인 돌봄’은 말 그대로 시장에 내던져졌다.

■ 수요·공급 모두 불만족 ‘민간의 한계’

한국 사회복지 영역에 시장의 문이 본격적으로 활짝 열린 것은 10년 전이다. 2007년 노인, 장애인, 산모, 아동에 대한 재가 방문 서비스에 보건복지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사회서비스 바우처’ 사업이 시작됐다. 사회복지기관들이 ‘시장 경쟁’을 통해 이용자를 유치, 이용 요금을 받아 운영하는 것이 골자였다. 당연히 수익도 창출해야 했다.

사회서비스가 관할하는 범위는 획기적으로 넓어졌다. 개인과 가족이 감당해온 아동과 장애인 그리고 노인에 대한 돌봄은 ‘사회서비스’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개인에서 사회로 나온 방향은 맞았지만, 방법은 틀렸다.

돌봄 사회서비스 시장을 민간이 장악한 데에는 정부의 방조가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급속한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 ‘찔끔 지원’으로 민간사업자들을 유인했다는 것이다. 보육도, 간병도, 요양도 민간이 주도하는 사회서비스 시장에서 급팽창한 과정은 놀랄 만큼 닮았다.

그러나 민간 비율이 압도적인 돌봄서비스 시장은 필연적인 한계가 있다.

노인요양보호사인 ㄱ씨는 12시간씩 2교대로 일하고 월급으로 150만원가량을 받는다. 시급으로 따지면 9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정부가 올해 1월부터 장기요양서비스 가격(수가)을 평균 3.86% 올렸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시설의 운영비용 등을 빼고 나면 직접 일하는 요양보호사에게 돌아오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정부는 올해 5월부터 노인요양시설이 정부로부터 받는 장기요양급여의 57.9% 이상을 인건비로 쓰도록 의무화했지만 준수 여부는 알 수 없다.

종사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서비스의 질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공급자 역할을 하지 않다 보니 시장에서 좋은 서비스를 찾아, 적절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낮은 서비스 질은 ‘시행착오’라 여길 수도 있었지만 방임과 폭행 등 사건사고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그러면서도 보육교사와 요양보호사 등 돌봄서비스 종사자들은 장시간 노동·낮은 임금이란 이중고에 시달렸다. 기관 입장에서 정부가 정해둔 수가 안에서 수익을 내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바로 ‘시장의 기능’이었다.

사회서비스 기관은 정부로부터 부분적인 재정 지원을 받고 규제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해야 한다. 어린이집과 노인장기요양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무상보육과 노인장기요양 보험제도를 시행하면서 서비스 가격도 직접 결정했다. 다만 기관 선택 결정권은 이용자에게 줬다. 정부는 구매력을 갖춘 이용자를 두고 기관이 경쟁할 것이며 이를 통해 서비스 질과 이용자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보육이나 장기요양 같은 대인 서비스, 관계적인 노동의 특징을 가지는 사회서비스에서 이 시장 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가격 경쟁으로 작동하는 시장 논리를 적용받았으나 가격은 통제되는 이상한 시장이 생긴 것이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결국은 정부가 직접 사회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며 “보육정책 20년 해보고 얻은 결론이 ‘국공립이 최고’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돌봄정책의 목표는 일자리가 아니라 ‘일상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일자리나 산업 육성 등 이상한 목표들이 돌봄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이은경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은 “한국에서는 정부가 50% 이상 책임지는 사회서비스가 아예 없다”며 “특히 노인장기요양 서비스 분야에서는 국공립 기관이 조금이라도 만들어져서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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