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목소리다]2부 ⑤'괴물'이 되어버린 검찰..독점을 깨라

송윤경·고희진 기자 2017. 3. 2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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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 나라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남긴 말이다. 2009년 검찰은 ‘죽은 권력’이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여론몰이식 수사’를 벌이며 측근들을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살아있는 권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의혹 규명엔 상대적으로 무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검찰은 “사실상 국가 전체 힘과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권력”(오창익 인권연대 국장)으로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해 왔다.

■ 괴물이 된 검찰, ‘민주화의 역설’

검찰의 힘이 비대해진 것은 역설적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다. 6월 항쟁 이후 태어난 노태우 정권은 다른 독재정권들처럼 정보기관을 통한 사찰·고문으로 공작을 벌이기 어려워졌다. 최소한의 합법성을 지닌 ‘힘의 도구’가 필요했다. 이때부터 검찰이 정권의 정적 제거, 사회통제 수단으로 ‘애용’되기 시작했다. 검사 출신으로 오랫동안 인권운동을 해 온 김희수 변호사는 “검찰 세력은 민주화 이후 엄청나게 성장했다”며 이를 “민주화의 역설”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이 주요 사건 수사에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 대표적인 예는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수사다. 2014년 세계일보는 최순실씨 전 남편 정윤회씨가 소위 ‘문고리 3인방’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의 문건을 보도했다. 검찰은 수사 초점을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 대신 문건유출자 색출에만 맞췄다. 이러한 ‘그림’은 청와대가 그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문건 내용은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루머”라고 일축하고 문건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했다.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이었다.

정권과 검찰의 유착을 깨기 위해서는 청와대가 인사권을 통한 조직 장악부터 그만둬야 한다. 특히 검사 출신의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통령 인사권을 등에 업고 ‘자기사람’을 검찰 수뇌부에 심은 후 수사방향을 사실상 지시해왔다는 비판을 받은 지 오래다.

청와대의 검찰 장악은 “권력 입맛대로 검찰권을 오·남용한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로 영전하는”(서보학 경희대 교수) 패턴을 만들어냈다. 지금의 김수남 검찰총장 역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정윤회 문건 등 정치적 사건을 정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처리’해 ‘총장 후보’로 급부상했던 인물이다.

■ 권한 나누고 상호견제케 해야

청와대의 검찰 장악·통제가 사라진다고 해서 검찰개혁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괴물이 되다시피 한 검찰”(오 국장)을 수술하기 위해서는 독점적 권한을 다른 기관과 나누고 서로 견제케 할 제도가 필요하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는 오랫동안 논의돼 온 검찰개혁 대안이다. 정치적 중립성이 문제되는 고위공직자 수사·기소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설기구(공수처)에 맡기자는 것이다. 다만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공수처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자칫 대통령에게 보이지 않는 손 하나를 보태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공수처를 헌법상의 기관으로 만들고 독립적인 위원회가 공수처장을 추천하게 하는 등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힘의 배분을 위해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방안도 검찰 민주화 수단으로 꼽혀왔다. 경찰의 수사는 검찰 지휘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체포·구속·압수·수색 등의 영장청구는 오직 검찰만 할 수 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경찰에 수사권을 넘겨 검찰권력을 가볍게 하는 것만으로도 개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경찰이 나쁜 의도로 수사를 하지 않으려 할 때는 검찰에 수사개시 요구권 등의 권한을 줘 견제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기소독점권도 무너뜨려야 한다. 지금은 죄가 있어도 검찰이 기소를 않는다면 처벌이 힘들다. 검찰이 재판부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1986년 서울대 학생이던 권인숙 명지대 교수는 노동운동을 위해 위장취업을 했다가 부천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았다. 그는 불법사실을 자백했지만 사건을 키우고 싶었던 문귀동 형사는 ‘그럴듯한’ 억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고문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성고문을 인정하지 않았다. 변호사들은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은 검찰의 불기소에 대해 법원에 그 결정이 타당한지를 묻는 제도다. 6월 항쟁 이후인 1988년, 대법원은 재정신청을 받아들였고 문귀동은 결국 기소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현행법상 검찰의 ‘독점기소권’을 뚫을 수 있는 통로는 헌법소원을 제외하고는 재정신청이 유일하다. 재정신청 범위는 2007년 모든 고소사건으로 확대됐지만, 여전히 공무원의 직권남용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발사건에는 이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는 “권력형 비리의 경우 대부분 고발 형태를 띠며 재벌의 횡령·배임사건 등은 고소할 특정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모든 고발사건에 재정신청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검사장 직선제는 검찰을 정상화시킬까

검사장 직선제는 검찰을 가장 빠르게 개혁할 방안으로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교육감처럼 검사장을 직선제로 선출해 시민에 의한 통제를 강화하자는 대안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각 주 법무장관과 검사장을 주민이 직접 뽑고 있다. ‘한 사람(검찰총장) 상투만 잡고 흔들면’ 검찰 전체가 정권에 발맞추는, 중앙집권화된 검찰조직을 분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도 통한다.

그러나 검사장 직선제는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광철 변호사는 “실제 검사장 선거가 실시될 경우 지역 토호세력과 결탁한 금권선거가 될 가능성, 선출직 검사장이 정치인이 돼 소속검사를 도구로 삼을 가능성, 여론을 사로잡기 위해 스포츠와 같은 재판이 연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공익의 대변자.’ 법이 규정한 검찰의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 검찰은 ‘비민주적 권력’의 표상이 돼버렸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강력한 검찰권과, 검찰을 ‘소유’하려는 역대 정권의 탐욕이 만나 빚어진 결과다. 심지어 “미국·영국·독일 등 어떤 나라의 제도를 옮겨와도 지금보다는 훨씬 낫다”(오 국장)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제 가장 필요한 것은 제도설계보다 ‘의지’다.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바로 지금이 검찰 민주화의 적기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 ‘대한민국 수호’ 명분 내세워…한국 민주주의 위태롭게 한 국정원

국가정보원, 한국 민주주의가 휘청일 때면 어김없이 그 이름이 있었다. ‘대한민국 수호’ 보루를 자처하지만, 그들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 첨병이었다.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막강한 권력으로 불법 도청과 미행·감금·고문을 스스럼없이 저질렀다. 1973년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정치인 김대중을 납치했던 중정은 2013년엔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국정원이 됐다. 민주화 30년이 지났지만 국가 정보기관은 낡은 과거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국정원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1973년 8월8일 일본 도쿄 그랜드팰리스 호텔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됐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씨가 129시간 만인 13일 밤 서울 동교동 자택 앞에서 풀려난 직후 인터뷰하고 있다(위 사진). 2015년 2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된 공판을 받기 위해 보수단체 회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가운데). 2013년 11월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 및 축소은폐 의혹 규명을 위한 시민사회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댓글부대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아래). 경향신문 자료사진

■ “국정원을 해체하라”

“과거엔 국정원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고 불법 사찰이 공공연히 이뤄지는 걸 보며 내 믿음이 순진했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한 개편이나 개혁으로는 불가능하다. 해산에 가까운 조치가 필요하다.”

2004년 국정원 자체 개혁 방안으로 설치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이었던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지난 10년간 이 같은 회한을 종종 털어놨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개혁은 멈췄고 국정원 역할은 권위주의 시절로 돌아갔다는 평가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헌법재판소 사찰 의혹까지 받았다. 국정원 해체를 말하는 여론이 공공연해지는 이유다. 실제 촛불집회엔 ‘국정원 해체’가 표어로 등장했다.

국정원 개혁과 관련해서는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공통된 의견이 이미 어느 정도 존재한다. 우선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국정원법 제3조 제1항에 따라 국정원은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 작성 및 배포’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국내 보안정보’ 범위가 불확실해 국정원의 정보수집 분야가 확대됐고, 이러한 정보는 불법 정치 개입에 활용되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각 정보수사기관의 업무와 행정기관의 정보 및 보안업무를 조정’토록 한 국정원의 초월적인 정보 기획·조정 권한도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권한은 국정원을 다른 행정부처의 상급 감독기관처럼 군림하도록 만들어 각 부처의 고유한 정보수집 권한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회 정보위원회 역할 강화와 자체 수사권 폐지 역시 주요 개선책으로 꼽힌다.

■ 공작정치와 무능의 ‘9년’

구체적인 대안이 어느 정도 마련됐음에도 국정원 변화가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역대 정권이 국가 정보기관을 자신들 입맛에 맞게 이용하며 개혁을 미뤄왔다고 말한다. 국가 안보의 필요악인 정보기관이 지속적인 비판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은 국정원 역사의 후퇴기로 평가된다. 국정원 법제관으로 근무했던 이석범 변호사는 “지난 두 정부에서 국정원은 철저하게 국가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을 방기하고 반민주적 행태를 보였다. 중정·안기부로 회귀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인권 탄압의 주범이던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원훈 또한 ‘정보는 국력’으로 변경하며 정보기관의 전문성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노무현 정부도 국정원장 인사청문회를 도입하고 ‘국정원 발전위’를 통해 동백림 사건 등 과거 정보기관의 7대 의혹을 파헤쳤다. 다만 ‘삼성 X파일’ 사건으로 과거 안기부와 김대중 정부 시절 불법 도청이 사회 전면에 드러나 불신은 다시 커졌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두 정부 정책이 다음 정권으로 이어졌다면 국정원 개혁은 동력을 얻었을 것이라 평가한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개혁 조치를 중단했고 국정원의 공작정치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통해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내부의 적’ ‘종북좌파단체’라고 표현하고 압박을 지시했다. 18대 대선 기간엔 국정원 직원이 민주당 문재인 후보 비방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한 ‘국정원 댓글 부대’ 논란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는 국정원이 중국 당국의 공문서를 위조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줬다.

또 2011년 3월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인 롯데호텔에 잠입해 노트북을 뒤지다 경찰에 절도 혐의로 신고된 사건, 같은 해 12월 북한 조선중앙TV의 방송 후에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을 알게 된 것 등은 정보기관으로서 무능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송윤경·고희진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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