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한국교회, 전환점에 서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2017. 3. 2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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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무수한 사람들이 잡혀가고 다치고, 목숨까지 빼앗기며 민주화를 외치던 1980년대. 중학생이던 당시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종종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데모는 마귀들이 하는 짓”이라느니, “데모하면 우리나라도 월남처럼 망한다”느니, 혹은 “세상일에 관심 갖지 말고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라”는 따위였다. 정치적인 강요와 선동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앙이라는 명목으로 황당한 정죄도 난무했다. 축구공에 맞아 입 주변을 꿰매고 온 학생에게 “찬송 대신 유행가 부르다가 벌 받은 것”이라는 정도는 애교였다. 한 부흥사는 대학졸업을 앞둔 자녀를 잃은 자신의 교회 신도 이야기를 전하며 “건물주이면서 부활절 헌금으로 고작 5000원 낼 만큼 인색했던 대가”라고 재단했고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아멘”을 합창했다. 나라든 교회든 지도자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고 말 많은 사람은 빨갱이, 빨갱이는 사탄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가 구호처럼 등장했다. 이견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사탄으로 매도되기 일쑤이던 분위기에서 난 종종 신앙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뒤죽박죽인 상태를 맞닥뜨려야 했다.

최근 몇 달간을 달궜던 탄핵정국. 소위 태극기 집회라 불리는 탄핵반대 집회를 접하면서 예전의 그 혼란스럽고 암담한 상황이 떠올랐다. 전쟁과 산업화를 겪었던 노년층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송두리째 부정당했다는 상실감에 태극기를 들고 나온 것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집회에서 두드러지던 보수 기독교 세력은 어떻게 봐야할까. ‘권세에 복종하라’거나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성경 구절 팻말 아래로 십자가와 통성기도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이는 모습에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개신교가 사회적 물의의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왜 이렇게 희화화의 대상임을 확인시키고 조롱거리가 되기를 자처하나. 옳지 못한 대통령과 그를 무조건적으로 감싸는 정치인들을 지켜달라고 하고, 대통령이 물러나면 빨갱이 나라가 되니 기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왜 장로, 권사, 집사들이 카톡으로 주고받으며 전파하는 걸까. 그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고 신앙인가.

한국 개신교는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 독재 등을 거치며 친일, 친미를 기반으로 하고 반공정신으로 무장해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해방 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기득권과 파트너가 되어 주류의 삶을 누려왔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예수와 성경을 팔아 기득권 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중 두드러진 것은 소위 ‘매북(賣北) 마케팅’이었고 ‘마귀를 대적하라’는 성경 구절은 그 근거로 활용됐다.

얼마 전 읽었던 이사야 3장15절의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라는 구절은 가난한 자의 재산을 빼앗은 권력자를 하나님이 책망하는 내용이다. 주류 기득권층이 수없이 저질러왔던, 지금도 저질러지는 죄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주류 개신교회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젠 웬만해선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교회 내 횡령과 성폭력, 거짓말을 비롯해 온갖 사회적 지탄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세습의 욕심을 버리지 않는 대형교회의 처사에 대해서 보수 교회들은 침묵한다.

감리교 운동이 활발했던 18세기 영국에서 당시 감리교인들은 보증 없이 돈을 빌려줘도 되는 사람들로 신뢰받았다. 국내에 개신교가 전파된 초창기, 개신교는 민족·사회운동에 앞장서며 리더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물론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이름 없는 성직자와 신도들은 있다.

지난 반세기 이상 드리웠던 구질서가 무너지며 우리 사회는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빛과 소금으로 돌아갈 것인지, ‘매북 개독’으로 남을지 선택할 때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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