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냄새 난다'· '미개하다'.. "한국은 차별공화국"

이창수 2017. 3. 2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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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는 웁니다 / 21일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국내 외국인 200만명 시대/"냄새가 난다" "미개하다" 등 절반 이상이 혐오표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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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온 시응하이(26·여·가명)가 겪은 한국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2015년 비전문 취업비자(E9)로 한국에 들어와 경남 밀양의 한 농장에 취업한 그는 한 달에 한두 번 쉬는 게 고작이었고, 매일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악취가 진동하는 화장실과 잠금장치가 없는 숙소 등 근로조건은 열악했다. 월급은 60만원, 80만원, 90만원 등 매달 달랐다. 그나마도 2∼3개월에 걸쳐 나눠 받았다. 다른 농장에서 ‘공용 노비’처럼 일하기도 일쑤였다. 하지만 일당은커녕 물도 못 마셨다. 화장실을 많이 간단 이유였다.

그를 포함해 4명이 꾸깃꾸깃 새우잠을 자야했던 작은 비닐하우스의 월세는 60만원. 보일러는 없었고, 비닐로 만들어진 샤워실을 이용해야 했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졌고, 영하의 날씨에도 차가운 물로 몸을 씻어야만 했다. 고용허가제 탓에 다른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항의를 해봐도 돌아오는 것은 폭언뿐이었다.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에 진정도 냈지만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증빙이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한국에서 일한 죄였다.

1966년 유엔이 매년 3월21일을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로 선포한 지 반세기가 지났고, 한국에는 200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살고 있지만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여전하다.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 외국인에 대한 혐오, 편견은 특히 뿌리가 깊다.

20일 법무부에 따르면 2005년 74만명이던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2007년 100만명을 돌파했고 지난해 200만명을 넘어섰다. 5년 내에는 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외국인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웃이지만 이들에 대한 시선과 태도는 아직도 냉랭하다.

하지만 인권위가 최근 발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를 보면, 이주민 노동자 절반 이상이 혐오표현을 겪은 적이 있으며 이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은 ‘더럽고’,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기피하고 싶은, ‘미개하고’, ‘무식하고’, ‘게으르’면서도 ‘돈을 밝히는’ 집단이었다. 또 ‘남의 나라에 와서 일자리를 빼앗는 집단’, ‘잠재적인 테러리스트’, ‘아이를 낳으러 팔려온 불쌍한 사람’이란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동남아 출신 외국인들의 처지는 더욱 딱하다. 인도에서 온 A(33)씨는 한국에서 본인을 “영국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국적에 따라 보는 눈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 ‘차별공화국’이다. 검은 피부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눈치를 보게 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온 우완(29·여)은 “회사 야유회, 회식 등은 한국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라며 “외국인과 한국인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다른 대우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이주공동행동 정영섭 활동가는 “한국인이 외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면 벌떼같이 들고 일어서지만 정작 우리사회에선 그렇지 않다”며 “이주민과 한국인 모두 동일선상에서 바라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이주노동자=잠재적 범죄자’란 시선부터 걷어야한단 목소리가 높다. 특히 도로교통법 위반 등 특별법범이 포함된 외국인 범죄 통계가 강조되면서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단 지적이다. 실제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기소된 외국인범죄 7만946건 중 죄가 비교적 가벼울 때 처해지는 약식명령이 5만7254건(80.7%)에 달했다.

노동자연대 김종환 활동가는 “언론 등에서 이주노동자의 범죄 등 부정적인 부분만 부각하면서 커뮤니티 내 두려움을 조장하고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우리사회의 문제’로 인식하고 노동계 내 외국인과 자국인 노동자의 연대 등 긍정적인 모습들을 널리 알려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지난 10년간 입법과 철회, 계류를 반복하며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2007년, 2012년 “한국이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해야 한다”며 인종차별 금지에 관한 포괄적 법률 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최근 대선을 앞두고 다시 이슈로 부상하고 있으나 외국인 외에 성정체성, 종교 등이 포함된 탓에 보수진영, 기독교계의 강한 반발에 맞닥뜨리고 있다.

한편 최근 법무부가 전국으로 확대한 ‘외국인을 위한 마을변호사’나 지자체들의 각종 ‘외국인 적응지원 정책’ 등은 긍정적인 흐름으로 평가된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존스 갈랑(52·필리핀)소장은 “차별금지법 제정 등 실효성있는 정책이 시급하다”며 “대립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평등한 대우를 바랄 뿐이다. 차별과 편견이 커질 수록 외국인 사회의 반발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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