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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러슨은 왜 중국에 가서 사드를 입에 올리지 않았나?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입력 2017.03.20. 16:3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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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미국이 정말 '새로운 대북 접근' 하고 싶다면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일본-한국-중국 순방이 끝났다. 그는 한국에선 저녁 만찬도 하지 않았고, "일본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라고 칭한 반면에,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한미관계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언행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국내 정부 관료들과 보수 언론은 틸러슨이 중국에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사드 배치에 쐐기를 박아주길 희망했었다. 하지만 그는 중국행 비행기에서 가진 <인터네셔널저널리뷰>와의 인터뷰 및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의 기자회견에서 사드를 입에조차 올리지 않았다.

이는 국내 보수진영과의 바람과는 달리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사드 배치를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지 않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오히려 4월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정상회담에서 모종의 거래가 시도될 공산이 있다. 시진핑이 미중간의 무역 불균형과 관련해 트럼프의 체면을 살려주고 트럼프는 사드 배치를 유보하는 물밑 거래가 논의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틸러슨의 순방 기간 동안 가장 주목되는 발언은 "우리는 20년간 실패한 접근을 했다. 그것은 미국이 북한이 다른 길을 가도록 독려하기 위해 13억 5천만 달러(약 1조 5000억 원)를 제공한 기간을 포함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의 대북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오히려 늘려 왔으며, 이에 따라 "다른 접근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 18일 렉스 틸러슨(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회담 이후 기자회견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근거 없는 미국식 '퍼주기'론

하지만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참담하게 실패한 만큼, 다른 접근이야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 필요성을 '돈을 줬는데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면, 그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틸러슨이 말한 13억 5000만 달러는 대북 식량 지원과 에너지 제공으로 대부분 쓰였다. 식량 지원은 "정치와 인도적 지원은 별개"라는 미국의 외교 원칙에 따라 이뤄졌고, 이는 북한의 참혹한 식량난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데에 기여했다.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크게 줄어들었고 오바마 행정부 때에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굳이 따지자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이 기간 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또한 에너지 지원은 1994년 북미 간의 제네바 합의 및 6자회담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고, 이 역시 북핵 제어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우여곡절 끝에 진전을 이루던 북핵 협상은 2008년에 좌초되었다. 그 핵심적인 원인은 이명박 정부가 당시 합의에도 없었던 북핵 검증을 무리하게 요구하면서 합의했던 에너지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진정 '다른 접근'을 원한다면

미국이 진정으로 새로운 대북 접근을 통해 북핵 해결을 도모하고 싶다면, 지금까지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 바로 그것이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별도의 포럼"을 열자는 합의를 2005년에 했는데, 지금까지 평화포럼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한미 양국은 평화협정 논의가 비핵화의 초점을 흐릴 것이라며 거부해왔는데, 역설적으로 비핵화에 초점을 잃은 핵심적인 이유는 한미 양국의 평화협정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한반도의 현실을 볼 때, '평화체제 없는 비핵화는 맹목이고 비핵화 없는 평화체제는 공허하다'. 이에 따라 평화체제 구축 및 비핵화를 최종적인 목표로 삼고 북핵 동결과 평화협정 체결을 전환기적 중단 단계로 삼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지혜의 발신지와 주도자가 한국이었으면 좋으련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이런 능력도 의지도 보여주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차기 정부를 책임지겠다는 세력은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비핵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야 한다. 그래서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유의미한 영향을 행사해야 한다. 북한 역시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자제함으로써 대화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함은 물론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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