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당신이 게임을 해도 되는 이유

문현웅 기자 2017. 3. 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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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해 게임이 한창 진행 중인 컴퓨터의 전원을 순간적으로 모두 꺼 봤습니다.(모 방송사)/인터넷 캡쳐

지난 8일(현지 시각) 독일 하노버 의과대학이 ‘게임의 폭력성은 플레이어의 성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지난 4년간 적어도 하루에 2시간 이상씩은 폭력적인 게임을 꾸준히 해 온 사람들과, 같은 기간 이런 게임을 아예 하지 않았거나 가끔 손댄 이들을 모아 두 그룹을 꾸렸다. 여기서 말하는 ‘폭력적 게임’이란,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리즈’, ‘콜 오브 듀티 시리즈’, ‘배틀필드 시리즈’ 등 1인칭 슈팅 게임(First Person Shooter, FPS)이다.

아무튼 연구팀은 이 두 그룹 모두에게 ‘몸에 불을 붙인 여자’나 ‘물에 빠진 남자’ 등 자극적인 내용이 담긴 그림을 보여주며, 실험 대상자가 이런 상황에 관여한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라 주문했다. 설문조사를 통해 이들의 심리를 점검했고, 뇌 상태를 보기 위해 MRI 스캔도 병행했다.

결론은 ‘두 그룹 간 유의미한 차이 없음’ 이었다. 공격 심리 수준도 비슷했고, MRI에서 나타난 신경반응도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간 여러분이 숱하게 봐온 ‘게임이 아이를 망친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이 연구 논문 제1저자인 그레고르 박사(Dr.Gregor Szycik)는 “기존 연구들이 게임이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다 했던 건, 이들은 실험자가 게임을 한 직후 바로 조사를 진행해서다”고 했다. 자극적인 게임 장면을 보고 순간 흥분할 수는 있지만, 일시적 반응일 뿐 사람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진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팀은 이전 연구들과 차이를 두기 위해 실험 대상자들이 연구 시작 전 최소 3시간 동안은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 미국 스텟슨대 심리학과 소속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도 “우리 두뇌는 가상 현실과 실제 사건을 완전히 다르게 취급하는 것 같다”고 밝힌 바가 있다.

누명 쓴 평범한 게임들

이른바 ‘폭력적’인 게임도 이럴진대, 폭력성이 없는 게임은 문제 될 이유가 더욱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언론에서는 이런 얌전한 게임마저 ‘청소년을 해치는 폭력물’이라며 누명을 씌워 보도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지난 2001년 3월 광주광역시에서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친동생을 도끼로 살해했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언론은 ‘영웅전설 5’나 ‘이스 이터널’, ‘조선협객전’ 등 폭력적이고 잔혹한 게임에 중독된 학생이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떠들었다. 우선 ‘영웅전설 5: 바다의 함가’부터 보자.

다음은 ‘이스 2 이터널’이다. 당시 대부분 언론에서는 전작인 ‘이스 이터널’을 언급했지만, 사건이 벌어지기 3개월 전 국내에서 ‘이스 2 이터널’이 정식발매됐으니 아마 범인이 플레이했던 게임은 이것일 가능성이 크다. 적을 처치할 때 뼈와 피가 튀는 모습이 있어 잔혹성은 좀 있었지만, 공격 모션 연출이 칼이나 둔기를 휘두르는 대신 단순히 몸으로 들이받는 선에서 그쳤기 때문에 ‘폭력성’은 되려 웬만한 게임보다 덜했다.

마지막으로 온라인 게임 ‘조선협객전’이다. 영상에서 볼 수 있듯, 직접 타격과 마법으로 적을 처치한다. ‘연출을 떠나 아이들 손으로 살인과 파괴를 일삼게 하는 게임이니 잔혹하고 폭력적이다’고 말할 수 있고, 실제로 당대에 이런 식의 주장을 펼치는 이도 있었지만, 그렇게 치면 펀치머신이나 두더지 잡기 게임부터 치웠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자꾸 치다 보면 사람을 치고 싶어질 테니.

게이머들이야 엉뚱한 게임에 누명 씌웠다는 걸 바로 알았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못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글쓴이도 어머니 앞에서 ‘영웅전설 5’를 직접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서야 ‘폭력 게임’에 중독됐다는 의혹을 떨칠 수 있었다. 대신 방에 있던 컴퓨터가 공용공간인 거실로 끌려나오는 피해를 감수해야 했지만.

여하간 게이머와 게임 회사들이 “이 게임들이 폭력적이라니 양심이 있는 거냐”며 분노하자, 이후 언론은 아예 게임 이름을 밝히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사람들이 모르기만 하면 어떤 게임이건 ‘폭력적’이라 낙인찍어도 반박당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하도 이런 장난질을 쳐 대니, 이에 항의하는 ‘게임 제목 묻기 운동’이 생겨났을 정도다.

'게임 제목 묻기 운동' 페이스북 페이지./인터넷 캡쳐

별걸 다 폭력적이라고

사실 우리나라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지난 2012년 12월 미국 코네티컷 주 뉴타운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28명이 목숨을 잃은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당시 언론은 범인 애덤 랜자(Adam Lanza)가 즐겼던 폭력적 게임 중 하나로 ‘댄스 댄스 레볼루션’을 들었다. ‘댄스 댄스 레볼루션’이 뭐냐면, 여러분도 익히 아는 그 춤 게임, DDR이다.

실제로 외신에서 이 ‘댄스 댄스 레볼루션’을 폭력적 게임이라고 써대다 보니, 이걸 무작정 받아 쓴 국내 언론도 같은 실수를 범하곤 했다. 아래 사진은 실제로 당시에 우리나라 한 언론사에서 나갔던 보도다.

/인터넷 캡쳐

그런데 왜 게임이 욕을 먹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근이나 흉년 등 재앙이 있는 해가 오면 희생양(Pharmakos)이 될 사람이나 동물을 골라 폴리스 밖으로 끌어내 들판에서 돌로 쳐 죽이는 의식을 행했다. 물론 이들은 재앙의 원인이 아니었다. 단지 위정자가 비난의 화살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막고자 무고한 사람을 고기방패로 쓴 것일 뿐이다.

게임, 심지어 폭력적이지도 않은 게임에 낙인을 찍는 것도 마찬가지 논리다. 청소년이 폭력범죄를 저질렀다 쳐 보자. 정부건 교육계건 언론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 말하려면, 다른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만만한 게 무엇인가. 학부모치고 자녀 공부할 시간 잡아먹는(다 여겨지는) ‘게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렇게 희생양이 된다.

이런 정치적 농간 때문에 미국에선 총기협회가 게임을 ‘폭력적’이라 비난하는 기괴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미국총기협회(NRA) 부회장 웨인 라피에르가 이를 게임 때문에 벌어진 사고라 주장하며 “게임은 국민에게 폭력을 판매하고 퍼뜨리는 음험한 산업이다”고 한 것이다. 자아비판이 아니라, 진짜 ‘게임’을 가리키며 한 이야기다.

여하간 게임은 여러분을 폭력배로 만드는 악의 숙주가 아니었다 한다. 정부나 교육계, 언론 등이 자기반성을 할지 새 희생양을 찾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 됐건, 여러분은 게임을 해도 된다. 만일 누군가가 “나는 게임을 만날 하다 보니 현실과 가상이 헷갈리는데”라 말한다면, 그건 게임이 아니라 당신이 문제라고 말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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