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김상호, 알고보면 여린 사람 [인터뷰]

한예지 기자 2017. 3. 1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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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 김상호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막상 알고보면 굳세고 강인한 이면에 여린 감성과 따스한 속내를 지닌 김상호. 그는 사람 냄새 나는 배우였다.

3월 23일 개봉될 영화 '보통사람'(감독 김봉한·제작 트리니티 엔터테인먼트)에서 배우 김상호는 취재기자 추재진으로 분했다. 격동의 80년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묵살하고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기자다.

볼펜 꽂혀있는 흰 셔츠에 동그란 안경, 트렌치 코트에 취재 가방을 맨 차림. 평소엔 술 좋아하고 호탕한 사람이지만, 진실 앞에선 누구보다 강건한 인물이다. 그 어떤 것에도 절대 굴하지 않는 강한 신념과 정의를 가진 인물이지만 김상호는 추재진이 그저 "인간적으로, 사람처럼 다가왔다. 그가 특별하게 보일까 걱정이었다"고 했다. 추재진이란 인물이 '보통사람'에 잘 녹아들 수 있을까, 너무 특별하거나 도드라져 보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 무엇보다 추재진이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할일을 하는 기자"라고 생각했단 그였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란 설정의 추재진이 왜 기자를 택했나 싶었는데 당시 헌법 자체가 유신 헌법이었기에 법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기자를 택한 인물이란다. 이처럼 부조리한 제도와 권력에 저항하는 올곧은 인물이야 말로 정의로운 사람 아닌가. 그럼에도 김상호는 "저런 시대였기에 특별나 보이는 것 뿐"이라고 정의했다. 앞서 그는 재진이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이유가 "그러면 쪽팔리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자신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않았을 때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기자'였기에 그저 자기 일을 했을 뿐이라고 캐릭터를 정의한다. 이처럼 확신하는 김상호 역시 굳세고 꼿꼿한 추재진과 다를바 없었다.

80년대,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사회적 이슈를 조작하는 정권의 모습을 픽션과 팩션 그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타며 그려낸만큼 영화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다. 영화화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투자도 받지 못하는 그런 식이다. 이런 민감한 상황에서 가뜩이나 위험한(?) 캐릭터를 맡는 것이 부담이 되진 않았을까 싶은데 "작품을 선택할 때 속사정이 어떻다 저떻다 해도, 읽어보고 재밌으면 한다"는 쾌남 김상호다.

김상호는 추재진 기자를 연기하며 문득 부당하게 해고 된 MBC 해직 기자이자 대안언론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를 떠올렸다. 그를 생각해보니 화가 많았을 것 같았단다. 자신 또한 역할이 놓여진 상황, 그 시대의 온갖 불합리한 일들을 보며 울분이 쌓인 까닭일 터. 30년 뒤 재진은 아마 "홧병 걸려 죽지 않았겠느냐"고 하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알아야 될 것을 가리는 사람들에 대해 '숨기지 말라. 잊지 못하는 역사를 되풀이하려 하느냐'고 기자가 해야 할 일을 했을 것 같다"고 상상해본다.

추재진은 안기부에 끌려가 남산에서 고문을 당할 때도 절대 꺾임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김상호는 자신이 마치 짐승이 된 것만 같아 심적으로 힘들었단다. 신념을 꺾으려는 자들 앞에서 버텨야 하는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하는 재진의 상황이 괴로웠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를 고문하는 사람들도 죽을 것 같은 괴성을 내게 만들어야 하는 고통이 있었을 것이고 얼마나 그 모습이 지옥과도 같았겠냐고. 마치 "짐승의 시간"이었다며 "그들도 다 불쌍했다. 컷하면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 했다.

처절한 고통의 순간에도 꿋꿋한 신념을 지키는 그의 모습은 지켜보기조차 괴로웠다. 특히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도 우스갯소리를 할만큼 유쾌하고 강인해보였던 그가 실은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려 읊조리는 말들은 더욱 뼈아픈 잔상을 남겼다. 당시 했던 조롱 섞인 말은 그의 기막힌 애드리브다. 상대역 장혁 또한 해당 신을 찍고 "형, 이 대사 진짜 좋다"고 수차례 감탄했단다. 그리고 쓰러지지 않겠다고 되뇌이는 말 역시 그의 아이디어였다. 자신이 무너지면 그들에게 지는 꼴이니 끝까지 무너지지 않기 위한 각오와 저항을 담은 대사였다. 김상호는 "너무 솔직하고 직접적인 대사라 닭살이 돋지 않을까 했지만, 감독님이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시더라"고 공을 돌렸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은밀한 공작에 가담하는 동네 후배 성진 역의 손현주를 바라보는 것도 그에겐 고통이었다. 놀라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단 그는 "평범한 아버지로서는 이입이 된다. 생존하기 위해 자꾸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불쌍한 사람이다. 장혁도 불쌍한거다. 왜 시대가 사람을 불쌍하게 만드냐"고 했다.

실제 자신은 1987년, 그 암울한 봄에 시국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 채 철 모르고 놀았단 김상호다. 17세 사춘기 때 뇌에 화학반응이 일어났다며.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집이 너무 가난해 돈벌고 성공하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당시를 회상한 그는 "공장에서 일했다. 어느날 퇴근 길에 버스정류장에 또래 아이들이 가방 맨 걸 보고 부러워서 다시 학교 다니다가 결국 두 번이나 그만두고 다시 공장에 갔다"고 했다. 학력미달로 방위 복무를 하고 검정고시를 봤단 그는 "어렸을 땐 공부 안 한 걸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른들 말이 맞더라. 후회한다"고 했다. 그러다 어떻게 배우가 됐는지, 자신을 변화시킨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고. 그러나 다만 이 직업이 너무 좋단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하고 싶다. 제게 주어진 일을 정말 잘해내고 싶다. 세계 최고로 잘해내고 싶다"고 하는 그에게서 감히 가늠하기 어려운 애틋한 애정이 엿보인다.

김상호는 꾸밈없고 자유분방한 어투와 쉽고 간결한 듯 해도 깊이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소심하고 용기 없는 사람이다. 그 모습이 싫어 바꾸려다보니 지금의 제가 됐다"며 "보편적으로 즐겁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주연을 맡는 것이 배우 인생 목적은 아니라며 "그냥 지나가는 자리, 기차역 같은 자리"라고 말한다. 거창하지도 않고 미사여구로 꾸며내지 않았어도 절로 드러나는 그 삶의 단상은 진솔하고 훈훈한 향이 묻어났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영화 '보통사람'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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